티라노의 발톱 (1994) 걸작. 스포일러 있음. 고어 주의
지금 보아서는 티라노의 발톱을 왜 내가 걸작이라고까지 하는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다. 심지어는 바로 전해에 쥬라기공원이 나왔는데
이게 뭐냐 하는 비난도 있던데, 그렇게 말한다면 지금 우리는 어벤져스같은 영화 만들고 있는가? 티라노의 발톱은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작품이다. 거액의 돈을 들여서 티라노사우루스의 로봇을 만들어 영화에 쓴 것이다.
티라노사우루스의 표정이나 근육 움직임, 눈동자가 돌아가는 것 등을 세밀하게 재현해낸 로봇이다. 당시로서는 미국 블록버스터나 하는 줄 알았던 것을 심형래가 해낸 것이다.
그런데 이 정도로 그쳤으면 티라노의 발톱을 걸작이라고까지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영화는 굉장히 깊이가 있다. 그리고 영화적으로도 만만치 않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시작을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밤중 원시인이 피를 철철 흘리는 사람을 운반해서 어느 동굴로 간다. 동굴 앞에 그 사람을 놓은 다음 동굴 안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카메라 시점에 바뀌어서 검은 동굴 안에서 바깥을 바라본다. 사람 하나가 동굴 앞에서 손을 휘휘 저으며 자기를 부르고 있다.
그러자 다시 시점이 바뀌어서 원시인의 눈에서 동굴 안을 본다. 잔인한 눈동자가 빛난다. 그리고 실제 크기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가 동굴에서 나온다. 정신을 잃고있던 사람이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실제 크기 티라노사우루스 입안으로 그
사람이 들어간다. 원시인의 시점과 티라노사우루스의 시점이 번갈아 나오며 장면에 긴박감과 실제감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 장면의 의미는 아주 깊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절대공포의 상징이다. 그러자 인간은
그 절대공포를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하기 시작한다. 인간이 절망과 공포를 다루는 방식이다. 신앙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나 하는
것이랄까. 나중에 심형래는 인간의 몸으로 티라노사우루스를 해치움으로써 인간의 미신과 신앙을 타파한다.
그리고 인간에 의한 평등사회를 구현한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동굴 안에 모여사는 인간들이 나온다. 언어도 잘 발달되지 못해 웅웅하면서 짐승소리를 내고 원숭이처럼 서로 몸의 벌레를 잡아먹는다. 하지만 이런 짐승같은 인간들 사이에도 계급이 있다.
이 부족 우두머리는 거대한 괴물이다. 그리고 이 우두머리는 영리하게 티라노사우루스를 자기 권력 유지에 이용한다.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붙잡아다가 티라노사우루스 동굴 앞에 묶어두고 먹이로 만드는 것이다.
티라노사우루스라는 절대공포가, 독재자에 의해 정치적 억압도구로 이용되는 것이다.
티라노사우루스와 대결하지 못하는 인간의 약함과 어리석음은 그들을 굴레로 묶는 독재와 정치적 악으로 이어진다.
이 부족에서 가장 계급이 낮아서 늘 배고픈 여자는 어느날 죽을 각오를 하고 독재자의 고기를 훔쳐먹으려 한다. 독재자는 그 여자를
안죽을만큼만 팬 다음 티라노사우루스에게 바치라고 한다. 이때 구석에서 있던 평범한 심형래가 몰래 쫓아가 티라노사우르스 동굴 앞에서
그녀를 구출해낸다. (당시는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대였다. 심형래 캐릭터는 이를 상징한다.
심형래 캐릭터는 영웅이 아니다. 그는 보통사람이 어떻게 힘을 얻고 영웅이 되어 무지와 미신의 세계를 타파하는가를 상징한다.)
티라노사우루스라는 절대공포와 그것을 정치적 권력으로 연결시키는 독재자의 악이라는 공식이 분명히 나온다. 심형래는 그것을 깨려 하지만 아직 힘이 없다. 그는 그냥 발버둥만 쳐 볼 뿐이다.
하지만 이런 발버둥이 그를 나중에 각성시키고 독재자와 티라노사우루스를 죽이는 계기가 된다.
심형래와 여자는 사회라는 보호막 바깥으로 나오자, 득시글거리는 공룡들 세계에 내동댕이쳐진다. 아주 작은 공룡 하나조차 인간에게는
무시무시한 위협이다. 심형래는 지금 보아도 굉장히 역겨운 고어를 등장시키는데, 네안데르탈인이 먹던 고기를 훔쳐먹다가 그 안에서 반쯤 타버린 사람팔이 나오자 토해버리는 장면이나 거대한 쥐괴물 동굴 안에서 해골을 발견하는데 아직 달라붙은 살점은 썩고 있고 벌레가 그 위에 득시글거리는 장면 등은 충격적이다. 이런 기이하고 공포스럽고 혐오스런 세계 - 왜 이런 세계가 존재하고 왜 심형래는 이런 세계를 표류해야 하는가? 그 답은 심형래가 문명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성의 힘으로 이 세계를 이해하고 세계의 원리를 알고 이 세계를 자기 목적을 위해 개량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럴 줄 모르니, 이 세상이 그냥 공포스럽고 알 수 없고 저항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심형래는 문명이라는 것을 자각한 사람들에 의해 구원된다. 그리고 문명인처럼 세련된 매너를 가진 그들에게서 인간적인 따스함과
문명의 힘을 배운다. 심형래는 당시 원시인들은 상상도 못하던 무기인 활을 가지고 자기 동굴로 돌아간다.
그는 괴물인 독재자를 죽이고 부족사람들을 해방시킬 것이다. 계급을 혁파하고 평등사회를 구현할 것이다.
이 이후 벌어지는 롤러코스터같은 액션장면들이 바로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활 하나를 메고 돌아온 심형래는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카리스마를 가진다. 굳은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이 동굴을 지배하는 계급사회의 모순,
인간의 무지가 어떻게 독재자에게 이용되어 억압의 도구로 이용되는지 이해한다.
심형래가 무시무시한 괴물인 독재자와 싸우는 장면은 상당히 스릴 있다. 아이들 영화라서 진지한 장면인데도 웃음이 나온다 하는
것이 아니라 섬찟한 느낌이 들며 스릴이 느껴진다. 심형래가 거대한 독재자 가슴팍에 화살 두대를 꽂아넣자
저 무기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숨죽이며 놀라는 장면은 상당한 감동을 준다. 독재자조차도 자기가 죽어가기는 죽어가는데 도대체
이것이 뭔지 모르며 죽어간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어선 안된다. 저 독재자를 만든 인간의 무지와 공포라는 것을 없애지 않는 한, 같은 일은 반복될 것이다.
심형래는 저 검은 동굴 안에 있는 절대공포 티라노사우루스를 죽이지 않고서는 이 공포사회를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는 성큼성큼 횃불 하나를 들고 동굴로 간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숨죽이며 심형래를 멀찍이서 따라온다.
심형래는 어떤 의미로 보아도 대단한 영웅이다. 티라노사우루스를 노려보는 굉장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그리고 횃불을 티라노사우루스의 동굴에 던져넣는다. 티라노사우루스가 괴로워하자 사람들은 깨닫는다. 저것도 그냥 동물이었구나.
우리가 저것을 다치게 할 수 있구나. 사람들은 앞다투어 동굴 앞에 와서 횃불을 안에 던져넣고 티라노사우루스는 불구덩이 안에서
죽어간다.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와 절대공포에서 해방된다.
이 영화의 마지막 몇십분 동안의 감동과 스릴, 공포를 주는 장면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어디 도망갈 데도 없는 벼랑 위에서
심형래가 티라노사우루스와 혼자 대결하는 장면은 명장면이다. 굉장히 서늘하고 섬찟하다. 심형래는 인간을 얽매고 억압시키던
무지와 절대공포를 영원히 무찌르려 싸운다. 그는 위대한 보통사람을 상징하는 존재다.
심형래가 의도하든 그렇지 않았든 이 장면들은 한국 현대사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은, 심형래와 부족 동료들이 서로 고기를 나누어먹으며 즐거워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검은 동굴 안은 이제
화톳불로 환해지고 사람들에게는 관용과 이해, 사랑이라는 것이 생겼다.
당시에도 걸작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걸작이라 생각한다. 영화가 완벽하기 때문에 걸작이냐? 그것은 아니다.
하지만 충격적이며 에너지가 넘치는 장면이 있다.
아주 정직하게 시대를 담고 있다. 시대의 의미를 묻고 있다. 그리고 시나리오는 노골적으로 정치적이다. 심형래의 연기는
마지막 몇십분 동안 절대공포와 혼자 맞짱을 뜨는 장면에서는 최고다. (당시 시대정신을 고스란히 상징한다는 점에서나,
특촬영화로서 가지는 대표성이나, 그 장면이 가지는 비장함과 처절함에서나, 영화사에 남을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당시로서는 거액을 들여 만든
티라노사우루스 로봇은 거대한 위압감에 피부며 움직이는 근육이며 낼름거리는 혓바닥이며 상당히 공포를 준다. 카메라도
티라노사우루스 정면에서 아래에서 위를 보는 식으로 찍으면서 티라노사우르스의 위압감과 공포를 잘 살렸다.
이것은 티라노사우루스와 맞짱 뜨는 심형래 시점에서 티라노사우루스가 보이는 장면이기도 하다.
추천인 10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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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티라노의 발톱 좋아합니다. 오늘 추억 보정하고 다시 보았는데, 역시 과거 느꼈던 그 감정이
시간이 지나도 느껴지더군요. 이 영화는 재발견되어 높이 평가 받을 날이 올 것 같습니다.

다들 라이온킹 볼때 티라노의 발톱 관람하고...
몇년 후
다들 미이라 볼때 용가리 봤던 기억이...ㅋㅋㅋ


사정을 알면 알 수록 씁쓸해져서 좋게 보긴 힘든 영화.
조혜련이었나요? 화장실도 못 가서 누운채 방뇨했던 일화는 웃으며 말하지만 처참한 얘기였죠.

공룡 쮸쮸 입니다. 둘다 유재석이 나오는 공통점

공룡 관련 영화중에서 꽤 재밌게 봤습니다. 심형래는 갠적으로 이걸 실사화 해주지
와! 티라노의 발톱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인데 넘 반가운 글입니다. 흥미롭게 잘읽었습니다 ㅎㅎ
시행착오 영화여서 제작비가 엄청 들었더군요. 원시인 틀니 제작 비용만 해도 굉장히 비싸다고 ㅎㅎ 요상한 원시어를 하는데 스토리가 이해되는것도 재미나고 개그맨들 찾는 재미도 ㅎㅎ
익무 전신 호러시절.. 심야상영회로 다같이 보던 추억이 +_+
좋은글 잘읽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