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비올레타] 현대판 라푼젤이자 잔혹동화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엄마는 바쁘셨습니다.
볼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고, 그 시간 동안 최대한 엄마의 애정과 관심을 받기 위해서 꽤 많은 노력을 했었습니다.
첫째이자 아들이며, 무엇을 하든 평균 이상이었던 오빠가 가족과 친척들에게서 모든 관심을 받을 때, 그 관심이 조금이라도 저에게 향하도록 노력했었습니다. 때론 공부를 잘해서, 그림을 잘 그려서, 피아노를 잘 쳐서 칭찬과 관심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제 존재의 이유를 끊임없이 보여줘야 했습니다.
부모님은 아낌없이 사랑을 주셨지만, 좀 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어릴 때는 더 컸습니다.
늘 누군가와 비교당하면서,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해서인가.
부모님과 친구의 관심과 애정도 어릴 때부터 그냥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특히 엄마는 늘 동경의 대상이자, 사랑과 관심을 주는 존재였습니다. 물론 주고받는 애정만큼 애증도 컸고, 갈등도 컸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그것은 걱정과 관심에서 나온 표현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다.
모성애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을 산산이 부서뜨리는 영화들이 있었으니, 이번에 소개할 <비올레타>가 그중 하나입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너와 삶을 공유한 게 실수였어.
그렇지만 널 사랑하는 건 분명해.
나만큼 딸을 사랑하는 엄마는 드물어.
그건 확실해 내 사랑!
비올레타 중 한나의 대사
일그러진 모녀 관계를 너무나 생생하게 그린 영화
어두운 밤 쓸쓸히 혼자서 하늘땅 놀이를 하고 있는 어린 소녀 비올레타.
자신을 돌봐주는 할머니와 단둘이서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아이지만, 엄마는 필요할 때만 가끔씩 돌아올 뿐입니다. 오래간만에 와서도, 자신과 쏙 빼닮은 엄마의 사진을 보면서 이사진은 왜 걸어놨냐며 성질부터 부리면서 바로 나가버리는 변덕스러운 한나. 비올레타는 눈으로 엄마를 쫓지만, 엄마는 낯선 남자와 유유히 차를 타고 사라질 뿐입니다.
생활비조차 가끔씩 오는 엄마에게 의지해야 하기에, 할머니와 함께 아끼는 궁핍한 생활과 외로움을 느끼면서 한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언젠가 엄마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10까지 세자 거짓말처럼 돌아온 엄마는 새로운 연인이 선물해 준 카메라를 꺼내듭니다.
엄마를 반가워하는 딸에게는 선물이라면서 왕관을 써보라고 준 뒤에 왕관 쓴 딸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카메라로 찍어본 딸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엄마는 갑자기 낡고 어두운 자신의 작업실로 딸을 데려갑니다.
어둠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딸의 다갈색 머리를 본 엄마는 레이스가 잔뜩 달린 옷을 입히고 포즈를 취해보라고 합니다.
엄마의 관심과 애정을 받기 위해서 모델이 되는데 응한 비올레타는 엄마가 시키는 데로 포즈를 취하고, 엄마는 할머니에겐 비밀로 하자고 합니다. 그렇게 비올레타는 엄마의 작업 세계 속에 들어오게 되었고, 엄마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평범하게 친구들과 어울리던 10대 소녀였던 비올레타의 일상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놀던 소녀는 수업 시간에 엄마와의 사진 촬영 속 상황을 떠올리며, 포즈 연습을 하면서 수업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어둠과 죽음, 고딕 로리타의 이미지 속에서 점차 에로틱한 포즈를 어린 소녀에게 요구하는 한나.
사진예술가로 성공하겠다는 한나의 강한 욕망 속에서 비올레타의 하루하루는 점차 통제되기 시작합니다. 학교 수업을 듣다가도, 급하게 의상을 입혀서 사진촬영을 위해 데려가고, 친구들과 놀고 싶어도, 배가 고파도 사진 촬영 뒤에 먹어야 한다면서 자신의 뜻대로 촬영을 강행합니다.
원하는 콘셉트로 촬영을 거부하면, 딸을 어르고 달래다가 때론 협박하면서 목적을 달성합니다.
예술이라는 이름하에 점차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포즈를 더 요구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몹시 폭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특히 연기파 배우 이자벨 위페르의 신들린 연기 때문에 더 실감 나게 느껴졌습니다.
한나는 데뷔를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여는 전시회에 어린 딸을 데려가고, 기자들은 딸과 엄마에게 질문을 해댑니다.
포즈를 취할 때 무슨 생각을 해?
엄마가 말하는 거요.
뭐라고 하시는데?
슬픈 생각을 하면서 섹시하게요
어떤 게 섹시한 건데?
아름답고
어둡고 접근하기 힘들고
멀리 있는 거죠
비올레타
어떡해서든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어주고, 돈벌이의 수단으로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라는 이름의 약탈자이자 착취자.
비올레타는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고, 촬영을 거부해 보기도,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할머니는 손녀를 사랑하지만, 손녀를 지켜주기엔 너무나 무력합니다.
엄마의 친구들은 오히려 엄마는 널 사랑하고, 예술가적 선구자라면서 옹호하기에 바쁩니다.
어떻게 하면 딸을 자극할 수 있을까, 자신의 뜻을 관철할 수 있을까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한나는 계속해서 비올레타를 카메라 앞으로 불러냅니다. 너는 이미 본능적으로 잘 아는 아이라면서 더욱 강렬한 포즈를 취하게 합니다.
이런 둘의 갈등관계는 점차 초반에 보던 다정한 모녀관계가 아닌 서로 격렬하게 소리 지르면서, 저주의 말을 퍼붓는 관계로 치닫게 됩니다. 마치 스릴러 영화를 보듯 팽팽한 긴장 관계가 연속됩니다.
그렇게 둘의 관계는 최악으로 흘러가고, 엄마로부터 정신적 학대를 당하던 비올레타는 점차 학교 내에서도 화장과 성인이 입는 의상을 입으면서 삐딱선을 타기 시작합니다.
한나의 애인이자 후원자인 예술가로 등장하는 에른스트역에 드니 라방 (레오 까락스 감독의 페르소나였던 그)
과연 비올레타는 엄마의 병적인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요?
언제나 돌봐주는 희생적인 할머니가 있었기에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었던 모녀의 관계이고, 비올레타를 엄마로부터 지켜줄 유일한 방패막입니다. 그 마지막 방패막마저 무너질 때 소녀는 어떻게 엄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요? 너무나 충격적인 이야기의 연속이지만, 복고풍 레트로 색감 & 필름 카메라 같은 느낌의 영상과 음악, 의상과 영화의 분위기는 잔혹 동화 같은 느낌입니다. 70년대 파리의 퇴폐적이면서도 아방가르드와 초현실적인 느낌을 모아놓은 듯 몽환적이면서도 신비롭게 그려졌습니다.
한나는 모든 걸 자신이 예술가적으로 성공하는데 이용합니다.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야 한다는 듯이 필사적으로. 예술가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고전 할리우드식 빈티지 의상과 신비로운 분위기로 자신을 이미지화하고 포장합니다. 남자친구인 에른스트도 애정보다는 결국 비즈니스적인 관계로 이용하고자 한 관계입니다.
영화 후반부쯤 밝혀지는 한나의 비밀 속에서 잘못된 모녀관계는 대물림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한나가 왜 그렇게나 죽음의 이미지에 집착하는지에 대해서도 밝혀집니다.
어머니를 증오하지만, 버림받고 싶지 않았던 한나는 비올레타를 자신의 곁에 묶어두고 삐뚤어진 애정을 표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과 너무나도 닮았던 어머니를 철저하게 증오하지만, 결국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던 한나는 딸에게 제대로 된 애정을 줄 수 없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트라우마로 남아버렸습니다. 단지 평범한 소녀의 삶을 살고 싶었고, 일반적인 엄마의 사랑이 필요했던 딸과 특별한 인생을 버리고 시시하게 썩고 싶은 사람은 없다며 딸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
아이도 여인도 천사도 짐승도 아닌
존재를 창조해서 세기말의 모호함을 잘 반영했다.
비올레타에 대한 잡지 기사
감독 에바 이오네스코와 그녀의 엄마인 이리나 이오네스코
감독인 에바 이오네스코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엄마이자 예술가인 이리나 이오네스코와의 실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화는 늘 영화보다 더 놀라워서, 너무나 어린 나이부터 12살까지 딸의 누드 사진과 에로틱한 포즈의 사진을 촬영했고, 동료 사진가들에게도 촬영하도록 허가했다고 합니다. 십 대의 나이에 로만스키 감독의 작품으로 데뷔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강하게 누드 촬영을 거부하고, 사람들의 시선과 친구들의 따돌림 속에서 엄마가 강요하는 포즈의 수치심을 점차 느끼고 변해가는 비올레타의 모습을 보면서 감독은 어떤 것을 느꼈을까요. 영화가 결국 자신의 가장 큰 트라우마를 드러내고 치유해가는 과정이었듯이, 현재도 어머니와 소송 중이라는 이야기도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역배우 시절 브룩 실즈 주연, 루이 말 감독의 프리티 베이비가 감독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의상이나 촬영 컵셉을 보면 딱 맞아떨어집니다.)
또한 영원한 논쟁거리가 될 예술과 표현의 자유와 한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합니다.
과연 어디까지 예술이라고 봐야 할까요. 예술과 사회적 윤리 속에서 우리는 한 번 더 고민하게 됩니다.
아름답고 예술가가 되고 싶어 하지만,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예술이라는 이름하에 제대로 된 동의 없이 이미지를 착취하고, 예술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요. 사랑의 표현이 이렇게나 삐뚤어질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찬찬히 생각해 보면서, 당연한 것 같았던 부모의 사랑도 역시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새삼 다시 깨닫게 됩니다.
* 한나가 비올레타에게 언급하는 예술가들과 영화배우들, 특정 이미지의 아이콘으로 소비되거나,
예술과 외설의 논란에 휩싸였던 사상가이자 예술가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작품들을 미리 보신다면 한나가 어떤 의미로 비올레타에게 전달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몰라도 분위기상 알 수 있지만, 영화보면서 저는 도대체 무슨 내용인 건지 궁금해지더라구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아역스타이자 공주님이었던 셜리 템플(천진난만한 애어른의 이미지),
팜 파탈적인 아이콘으로 데뷔작 <푸른 천사> 속에서 가수로 등장한 독일의 전설적인 스타 마를레네 디트리히
조르주 바타유 (Georges Albert Maurice Victor Bataille)
프랑스 지성인이자, 문학, 인류학, 철학, 경제, 사회학에 대한 글을 쓰는 저술가이다. 에로티시즘, 신비주의, 주권, 초월주의 등의 주제를 주로 다루는 글을 쓴다.
극중 한나가 비올레타에게 읽어보라며 건내준 책은 둘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발튀스 (Balthus)
폴란드-프랑스 현대 예술가. 그는 사춘기 소녀들의 에로틱한 이미지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세련되고 몽환적인 이미지로 유명하다.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예술계의 일반적인 관습을 거부했다.
스타일은 주로 고전적이다. 매혹적이고 불안한 소녀들의 이미지를 잘 잡아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외설적인 그림을 빼달라는 공개 민원에 시달리기도 했다.
꿈꾸는 테레즈라는 작품이 미술관에서 내려달라는 논란에 휩싸인 작품인데요.
가운데 소녀의 위치가 정측면으로 향해있는 그림입니다. 어떤 작품인지 상상이 가시나요.
딸과 촬영 도중에 이 작가의 그림같다며 이야기를 합니다.
한스 벨머(Hans Bellmer)
독일의 사진작가이자 화가이다. 폴란드의 카드비체에서 출생하였다.
처음에는 사진작가로서 출발하였으나 <인형>이라고 제목을 붙인 일련의 기분 나쁜 사진에서 명성을 얻고, 베를린을 떠나 파리로 나왔다. 초현실주의 잡지 <미노토르>에도 그 사진 한 장을 게재하였는데 귀여운 소녀가 분해되고 해체된 그림에서 큰 충격을 일으켰다고 한다. 소묘 가로서도 탁월하였으며 유채화는 별로 많이 그리지 않았으나 데생과 판화에 새로운 해부학의 영역을 개척하였다.
전시회에서 사람들이 이 사람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독일의 화가이다. 쾰른에서 출생하였으며, 초현실주의의 지도적인 인물이다.
처음에는 표현파에 속하였으나, 1919년 아르프와 함께 다다이즘을 결성하였다.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에 참가하였으며, 1949년에 파리로 이주하였다.
작품으로〈봄〉, 〈자연의 역사〉 등이 있다.
한나의 친구이자 후원자인 에른스트가 바로 이분이실지도?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분위기는 많이 달라보였는데.
* 영화 추천 리스트
에이프릴의 딸 - 무엇을 보던 상상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미첼 프랑코 감독이 선사하는 이제껏 본 적 없는 모성의 재정의. 엄마와 딸의 갈등이 서스펜스 스릴러급으로 다가오는 작품.
화이트 올랜더 - 제목처럼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독성을 지닌 화이트 올랜더처럼 아름답고 사랑하지만 위험만을 가져다주는 엄마와의 관계를 끊으려는 딸의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 - 루키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열다섯 살 나이에 출연해서 스웨덴의 평범한 시골 소년에서 한순간에 스타덤에 오른 비에른 안드레센의 이야기. 이른 나이에 특정 이미지의 아이콘이 되고 유명해지는 것에 대한 부작용을 다룬 다큐.
* 영화보시고 나서 아마 할말 많은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 분위기의 영화지만, 저는 70년대 프랑스의 아방가르드,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에 고딕 분위기 & 필름 감성이 충만한 영상과 색감만은 정말 반해버렸던 작품이었네요.
이자벨 위페르는 여기서도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마치 빙의한 듯 연기를 합니다만, 이자벨 위페르 출연작이 그렇듯이 쉽지 않은 영화같아요. 그녀의 팬이라면 놓치시질 말기를. 어떻게 저렇게 연기하지?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그리고 촬영당시 10대 소녀였던 아나마리아 바트로메이도 독보적 존재감과 매력을 뽐내며, 이자벨 위페르에게 밀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다른 분들의 리뷰를 기다리며 이만 총총.
이미지 및 정보 출처 : 다음영화, IMDB, 위키백과
쥬쥬짱
추천인 7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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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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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영화보면서 그 옛날 책받침 소녀들이 떠오르면서 살짝 안타까웠습니다.
어제 명씨네에서 예고편으로 해당영화 보고 뭔가 예고편만 보는데도 맘이 슬프더라구요..
영화 음악과 필름 감성을 잘 구현한 작품이라 맘에 드실 꺼예요.
맘이프다기 보단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헐리우드 여자 아역배우들 지금과 제작환경이 달랐던 과거를 생각해보시면,더 심각한 경우를 많이 보았고 실화보다는 많이 희석시켰습니다. 소녀가 변모하는 모습이 참 안타까워요.
라푼젤 동화랑 딱 맞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