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 가는 길 (1975)
이만희 감독은 말하자면 과거 한국영화감독들 중 제임스 딘같은 존재였던 듯하다. 명감독이야 많았지만
이만희 감독에 대해서는 비운의 천재라는 아우라가 있었다. 가령 이것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그 자신 거장감독이었던 김수용 감독이 헐리우드를 방문했을 때, 당시 헐리우드에서는 프렌치 커넥션의 카체이스 장면이 찍혀지고 있었다. 헐리우드 관계자는 김수용 감독이 깜짝 놀라고 감탄하기를 기대했겠지만, 김수용 감독은 속으로 '우리나라에는 이만희감독이라는 사람이 있단 말이다. 이만희 감독에게 이렇게 많은 지원을 해줘봐라. 이만희 감독은 이것보다 더 잘 찍을 거다'하고 코웃음쳤다.
가장 가까이에서 이만희 감독을 본, 그 자신이 거장감독이었던 김수용 감독만큼 이만희 감독에 대해 잘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 마의 계단, 귀로같은 영화들을 보면 김수용 감독의 평가가 수긍이 간다.
이만희 감독의 유작이 된 삼포 가는 길(1975)은 거장 이만희 감독의 유작이라는 아우라를 가지고 있던 영화였다. 말하자면, 고호의 까마귀떼들이 날아오르는 밀밭 정도 아우라랄까? 지금 이 영화를 감상하고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은 참 어렵다. 우선 이만희 감독의 그 비운의 아우라가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도 어렵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날개를 떨쳐 비상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반면, 점차 모든것을 잃고 외지로 외지로 밀려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가 새로운 것을 찾아 더 더 앞으로 나아가는 그 물결 한가운데에서 소외되고 그늘에 숨고 외로와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세대 갈등과 청년들의 힘겨움을 보는 그 첨예함으로
당시 사람들은 소외된 이들의 고통을 보았다. 이 영화에는 시대정신이 묻어있고 주인공들은 그냥 비극적인 존재들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아픈 인물들이었다.
눈밭을 해맑게 뛰어가는 세사람들은 전혀 밝은 사람들이 아니다. 여자는 백화 - 술집작부인데 말하자면 낙도같은 외진 데 술집을 돌며 몸을 파는 여자다. 돈 몇푼에 술집에 팔려왔다가 도망친 길이다. 도망쳐서 어디로 갈까? 다시 술집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녀는 잠시 자유를 만끽하며 눈밭 위를 헤메다가 자기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젊은 남자는 노영달 - 어디 한곳에 뿌리가 없는 존재다. 돌아다니며 공사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교도소에서 출소 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정씨는 늘 고향인 삼포 이야기를 한다. 이 세사람은 목적지 없는 길을 헤메고 있다. 그들이 계속 눈밭 위를 떠도는 이유는 어디 정지해 안주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 어두컴컴한 세사람의 현재와 미래를 새하얀 순결한 눈 위에서 펼쳐놓는 것은 대단한 아이디어다. 그리고 이들의 비극을 이만희 감독이 스크린에 풀어놓는 방식은 해학과 코메디다.
초로의 정씨는 늘 삼포라는 고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기억하는 삼포는 말하자면 산업화가 닿기 전의 파라다이스다. 그는 현재가 괴로울수록 삼포를 그리워한다. 정씨 역을 맡은 배우가, 우리나라 영화사 대배우 일위로 꼽힐 김진규다. 그가 맡은 최후의 메이저롤이다. 원래 신성일에게 제의가 갔는데, 신성일이 이 배역을 거절하고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한다. 김진규는 나이 들어 주연 대신 조연의 제의가 가자, 아예 영화계를 은퇴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는 사업에서 돈을 벌어 자기가 주연을 할 영화를 자기가 제작하고자 했다. 사업은 실패했고 김진규는 원하던 영화 제작을 할 수 없었다. 대배우 김진규의 마지막 롤이 삼포 가는 길의 정씨라는 사실은, 그의 커리어에 전설을 부여해준다.
어찌 보면 정처없는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이지만, 소외받고 상처받은 이들이라는 동질감에 친구가 된다. 하지만 이들이 진짜 친구는 아니다. 언제라도 헤어질 수도 있는 이들이다. 헤어질 때는 주저없이 빠이빠이하고 돌아설 것이다. 소외된 이들끼리 만나 서로 상처를 보듬을지라도 이들이 소외된 이들이라는 점에는 변함없다. 이만희 감독에게는 분명 거장의 요소가 있다. 마의 계단, 귀로만 보아도 분명하다. 귀로같은 멜로물을 우리나라 영화에서 다시 본 적 없다. 세련됨도 극한에 이르면 예술이 되는구나. 하지만 그의 영화에는 그런 세련된 예술적인 스타일과 함께 대중에게 친화적이고 대중을 감동시키려 하는 뽕끼 비슷한 것도 있다. 대중을 놀라게 하고 불쾌하게 만드는 파격이나 실험같은 것이 부족하다. 당대에는 예술감독이라는 명칭으로 불렸지만, 지금 와서는 우수한 쟝르영화감독으로 불리는 이유가 이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눈을 이렇게 잘 그려낸 영화가 우리나라 영화에 다시 있을까? 이만희가 만들어낸 마력의 공간에서 이 세사람들은 끝없이 헤멘다. 그들에게는 삼포라고 하는 환상적인 유토피아 목적지가 있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아서 유토피아다. 그들도 자기들 목적지 삼포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자 공허하다는 것을 안다. 그들이 헤메는 눈 덮인 벌판은, 아름답고 순결하고 깨끗하고 준엄한 공간이지만, 그것은 악몽의 공간이다.
노영심과 백화는 사랑에 빠져, 노영심은 백화를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 실어 떠나보낸다. 백화를 고향으로 보내주는 것이 노영심이 할 수 있는 가장 절실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벡화는 노영심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기차에 탄 척 했다가 노영심이 보지 않는 사이에 기차에서 몰래 내려 사라진다. 그녀는 아마 눈밭을 혼자서 헤메든 어디 낙도로 몸을 팔러가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향에 가는 척 기차에 올라 눈물을 흘린 것이, 그녀가 노영심에게 줄 수 있었던 가장 절실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노영심과 정씨가 마침내 삼포에 다다랐을 때, 그곳은 이미 산업화에 정복된 상태였다. 아름다운 어촌마을은 사라지고 공장이 들어서 밋밋한 공장부지가 되어버렸다. 정씨도 고향을 잃은 뿌리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그 새하얀 악몽의 공간인 눈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런 영화가 이만희감독의 유작이라는 아우라를 가지고 재개봉에 재개봉을 거쳤다는 사실이 지금 보아서는 놀랍다. 당시 정부의 산업화 정책에 대놓고 비판적인 영화다. 지금도 전세계 어느 지역에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상영되고 있다는 것처럼, 꽤 오랫동안, 당시 전국 영화관 어딘가에서는 이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물론 지금과 달리, 프랜차이즈화되지 않은 영화관들이 전국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되겠지만. 이만희 감독에 대한 신화가 대중에게까지 퍼졌다는 것이며, 이 천의무봉의 영화에 천재의 손길이 분명히 느껴진다는 증거다.
P.S. 이만희 감독 신화를 상징하는 또다른 영화는 멜로영화 만추다. 지금은 사라진 영화 만추에 대해, 우리나라 영화사 최고의 걸작이라는 등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오죽하면 필름으로 보존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만추에 대해 사람들 기억들을 모아 책으로까지 냈을까? 이 장면에서 이랬다 하는 식의 증언들을 모아서 말이다. 하지만 제작자의 증언에 따르면. 잘 만든 작품이지만 단점도 분명했던 영화였다고 한다. 하지만, 만들어진 지 십년 넘게, 진지하게, 이 영화는 아마 우리나라 영화사에서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소리를 들었던 영화이니 분명 비범한 것이었으리라. 필름이 기적적으로 발굴되길 기대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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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도 좋지만 그것을 단순히 원작의 영상화에 그치지 않고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감독의 시선까지 느끼게 만든 것 또한 이만희 감독의 힘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정씨에게는 어른으로서의 자신을 투영하고 노영달에게는 당시의 연인이던 문숙 배우(백화)를 사랑하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황석영 작가도 원작은 자신이 썼어도 이 영화는 이만희 감독의 작품이라고 얘기하더군요.
정말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ㅠㅠ
익무인들 강제로 보게 하고 싶은 영화에요
매번 좋은글 올려주시는데
특별히 애정하는 영화여서 정말 감사합니다!
북한에 존재한다는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확인 했었다는) 이만희 감독의 만추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ㅠㅠ
저도 문숙의 팬입니다. 뭔가 사람의 눈을 끄는 퀄리티가 있는 배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