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김다미 편' 초간단 리뷰
1. 방송에 있어 '여행 리얼리티'라는 건 흔한 아이템이다. KT 시즌 오리지널로 제작되고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송된 뒤 왓챠에도 공개된 '잠적'은 그 흔한 여행 리얼리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이 다른 여행 리얼리티와 차이가 있다면 '연기하지 않는 김다미'가 출연한다는 것이다. 배우 김다미는 방송가에서는 아직 베일에 쌓인 인물이다. 연예정보프로그램을 제외하면 예능에 출연한 적도 없고 그 흔한 SNS도 가뭄에 콩나듯 게시글을 올린다. 이 배우는 그리 끼가 충만한 사람은 아닌 듯 하다. 그런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지 않는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어떨지 궁금하다
2. '잠적'은 정체성이 꽤 모호하다. 이것을 예능이라고 보기에는 웃긴 지점이 많지 않다. 다큐멘터리라고 보기에는 있는 그대로 찍었다는 인상을 주진 않는다. 무엇보다 "김다미가 잠적했다"는 발상에서 시작하는 이 프로그램이 진짜로 김다미가 잠적한 상황을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김다미가 잠적한 것은 어디까지나 설정이다. 대외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부르는 이름은 '시네마틱 로드무비'다. 일종의 페이크다큐에 가깝다고 봐야 할 듯 하다. 다만 프로그램에서 김다미가 인터뷰하는 지점은 짜여진 대사가 아니라 본인의 생각을 얘기하는 것 같다. 페이크다큐긴 하지만 그 중 30% 정도는 진심인 모양이다.
3. '잠적'은 3일 정도 사라지기로 한 김다미가 차를 끌고 거제도로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다. 김다미는 여행 내내 맛있는 것도 먹고 예쁜 숲길을 다니다 아늑한 숙소에서 노을을 보며 또 먹는다. 먹방에 예쁜 풍경에 카페에, 예쁜 건 다 때려담은 프로그램이다. 여러 먹방 중 가장 매력적인 건 맨 처음 등장하는 두부집이다. 분명 김다미 혼자 들어갔는데 두부구이와 전골을 시키는 걸 보고 거리감이 팍 생겼다. "저거 엄청 남기고 나오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김다미는 직접 뒤집어야 하는 두부에 당황하며 허둥지둥 뒤집는다. 그리고 분명 두부를 먹는데 양이 줄어들진 않는다. 이후 계산하며 나누는 대사는 "너무 많이 남겨서 죄송해요". 그리고 연예인이 다녀갔으니 싸인도 한다. 이런 것까지 찍어도 되나 싶은 걸 다 찍는다. 아마도 두부집의 이 장면이 없었다면 나는 끝까지 다 보지도 않았을 것 같다.
4. 이후 프로그램은 먹방이나 풍경을 예쁘게 찍기 위해 컷을 쪼갠다. 그러나 상황은 연결된다. 누가 봐도 먹다가 멈추고 다시 찍으면서 먹고 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프로그램은 김다미가 혼자 여행간건데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공포영화 아니다). 그 어색함에 몇 번 당황하다가 "이건 영화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나중에라도 이 프로그램을 볼 사람이 있다면 다큐멘터리나 리얼리티에 대한 생각은 버리길 바란다. 일단 김다미가 잠적했다는 것부터 리얼하지 않는다.
5. 어색한 상황들이 눈에 띄지만 나레이션은 그 모든 것들을 상쇄시킨다. '잠적'은 나레이션을 정말 잘 썼다. 상황과 감정을 설명하는 묘사는 여느 문학 못지 않게 섬세하다. 섬세하고 문학적인 묘사와 신경써서 잘 찍은 풍경이 어우러져 눈과 귀가 즐겁다. '글과 그림의 시너지 효과'를 가르치기 위한 교재가 필요하다면 이 프로그램을 틀어줘도 될 정도다. 이 훌륭한 나레이션은 김다미의 기분 좋은 비음과 어우러진다. 김다미가 읽어주는 오디오북을 상상해보자. '잠적'은 김다미의 귀여우면서 차분한 목소리와 훌륭한 문장이 어우러져서 듣는 재미가 아주 많은 프로그램이다.
6. '잠적'은 포르쉐가 제작지원을 했다. 그래서 김다미는 빨간색 포르쉐 카이엔을 타고 녹음이 우거진 거제도 숲길을 운전한다. '잠적'에서 김다미 못지 않게 비중이 큰 주인공이 바로 포르쉐다. 이 PPL은 전혀 불편하지 않고 멋있다. PPL과 프로그램이 시너지를 내는 아주 긍정적이고 모범적인 사례다. 다만 포르쉐를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프로그램 없이도 이미 구매를 할 수 있었으리라.
7. 결론: '잠적'은 김다미 편에 이어 김희애 편을 공개했다. TV 프로그램의 잔뼈가 굵은 분이기도 하지만 김희애의 목소리로 듣는 나레이션이라면 김다미와는 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다. ....이 프로그램, 매력이 있다. 다만 '다큐멘터리'나 '리얼리티'라는 단어만 머리에서 지우자.
추신) 시즌은 신세경이 주연하고 김종관 감독이 연출한 '시네마틱 리얼 다큐멘터리'인 '어나더 레코드'도 10월 중 공개한다. ...아마도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포르쉐!! 잘어울릴거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