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단편선] 픽사의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던 귀한 시간
익무에서 좋은 기회를 주셔서 구로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하는 디즈니 픽사 단편선과 픽사 레이아웃 아티스트 션킴님의 gv를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은 단편선에서 상영된 12개의 단편 리스트입니다.
저는 이전에도 이 단편들을 전부 보았고 리스트 중에선 바운딩부터 극장에서 관람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 봤던 작품이지만 86년작부터 14년작까지 극장에서 한번에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고 또한 픽사에서 일하시는 분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경험도 쉽게 오지 않기 때문에 신청했고 감사하게도 당첨시켜주셔서 보러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12편의 단편들을 전부 살펴볼 순 없겠지만 인상깊었던 작품 위주로 몇개만 감상을 써보겠습니다.
레드의 꿈(Red's dream)
이때부터 픽사는 이미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50% 할인 태그가 붙은 빨간 외발자전거는 자전거 판매소 구석에서 과거 자신의 리즈시절을 회상하면서 아무도 없는 자신만의 무대에서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지만 그것들은 전부 지나가버린 꿈이고 현실은 여전히 두발 자전거들 사이에서 팔리지 않아 50% 할인 딱지가 붙어버린 처량한 신세입니다.
어린이들을 타켓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치고 상당히 어두운 주제와 분위기를 담고 있어서 신선했습니다. 또한 4분이라는 짧은 시간에도 40분 이상의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는 단편이라 처음 봤을 때도 이번에 다시 봤을 때도 인상깊게 다가왔습니다.
제리의 게임(Geri's game)
이때부터 픽사의 애니메이션 기술적 퀄리티는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이게 97년 작인데 토이스토리1이 95년 작이라고 gv에서 언급하시더군요. 토이스토리1을 제작하면서 인력들을 많이 뽑았고 기술적으로 발전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기에 지금 봐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비주얼이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얘기가 gv에서 나왔습니다. 이때 크레딧에 적힌 분들이 현재까지도 일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88년 작인 틴 토이를 보면 아기의 외형이나 움직임, 기저귀 모양 등이 조악합니다. 아이들이 극장에서 이걸 봤으면 울음을 터트렸을지도 모르는 다소 호러블한 비주얼인데요. 당시 기술로는 인물의 근육의 움직임, 주름 같은 것을 표현하기 상당히 어려웠다고 합니다. 반면 완전한 구형이나 직각 등을 표현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웠고 그래서 인물이 아닌 장난감을 주인공으로 한 게 아닌가 하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약 10년 만에 제리의 게임에서는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했고 얼굴의 주름 등도 나름대로 섬세하게 표현되었죠. 여러모로 이 작품은 픽사 애니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인 것 같습니다.
원 맨 밴드(One man band)
이 작품은 이번 단편선 리스트에 없는 작품들까지 통틀어서 지금까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픽사의 단편 애니입니다.
제가 느끼기로는 이 작품부터 픽사 단편 애니가 기술적으로나 스토리텔링 면에서 지금에 가장 가까워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만 디지털 상영환경으로의 전환 때문인지 바운딩까지는 뭔가 물이 빠진 탁한 채도의 색감이었다면 이 작품부터 좀 더 보기 편해진 색감을 갖춘 것 같습니다.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음악이 주요소재인 것도 마음에 들었고 어린 아이의 동전 하나 얻어보겠다고 두 사람이 피터지는 연주 대결을 펼치다 결국 최후의 승리자는 바이올린을 기깔나게 연주해서 금화 보따리를 얻은 아이인 것도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진행이라 재밌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인물들의 표정이 제리의 게임보다 더욱 풍부하게 표현되었습니다. 마지막에 동전 줄까~ 하다가 씨익 웃으며 분수대로 동전을 던져버리는 아이의 표정이 압권입니다.
이때부터 저는 픽사의 단편 애니를 기다리기 시작했고, 과장을 좀 더해서 5분~10분 이하의 단편을 보려고 장편을 보러가고 있는 것 같아요.
라 루나(La Luna)
이번 단편선 gv 오픈 채팅방에서 라 루나를 가장 좋아하시는 분들이 제일 많았습니다. 그만큼 색감이나 달과 별의 표현이 정말 아름다웠던 작품이죠.
주제가 선명하거나 특정 가치를 담고 있진 않고 달은 왜 보름달에서 초승달이 될까를 동화적인 상상력으로 표현해낸 작품인데 비주얼 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분들이 좋아하실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루카 감독님의 단편작으로도 유명한데, 저는 루카를 볼 때 라 루나 감독님인걸 알고 있다가 잠시 잊고 있었는데 루카가 베스파를 타고 바다 위를 나는 상상을 하는 장면이나 줄리아의 도움으로 천체망원경으로 별과 행성을 보면서 토성의 고리를 뛰는 상상을 하는 장면에서 라 루나의 향기가 물씬 느껴졌습니다. 그만큼 두 작품 다 감독님 특유의 감성과 캐릭터 디자인이 진하게 표현된 것 같아요. 최근 루카를 보고 라 루나를 다시 보니 라 루나의 주인공 아빠가 루카의 줄리아 아빠와 비슷하게 보이고, 주인공과 루카도 비슷하게 보이더라고요. 달과 별의 색감과 표현은 물론이고요. 할아버지와 아빠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현존하는 언어는 아니지만 이탈리아어를 뭉게서 발음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새로 발견한 디테일들이 있어서 재밌었네요.
그리고 어디선가 물을 표현하는 게 돈이 제일 많이 든다고 들었는데, 바운딩에서의 연못 표현, 라 루나에서의 바다 표현에서 점점 발전하는 물의 표현을 느낄 수 있어서 그것도 하나의 재미였네요. 디즈니이긴 하지만 가장 최근작 중 하나인 겨울왕국2에서 파도 표현과 물로 된 말이 정말 실사 뺨치게 잘 나와서 디자이너들의 손목과 시간과 체력이 얼마나 갈려나갔을까 생각하면서 봤던 기억도 다시 났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다시 한번 좋은 기회 주신 익무 감사합니다!
추천인 8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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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가 빨강을 좋아하나봐요. 레드의 꿈, 터닝 레드처럼 아예 빨강이 주제인 것도 있고 인크레더블 레드 수트, 메리다의 진저 헤어, 빨간색의 라이트닝 맥퀸 등등...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요ㅎㅎ
꼭 봐야겠네요^^ 순전히 제 뇌내망상에 따르면 픽사의 빨강 애호에는 애니메이션적 느낌 물씬 풍기는 단편영화 <빨간 풍선>(1956) 영향도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ㅎㅎ 그 영화에 <업> 연상시키는 이미지도 있고 그래서인지 괜히 그런 생각이 드네요😅
작품마다 개성도 달라서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욯ㅎ
약 30년 동안 발전하는 픽사의 역사를 1시간 동안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ㅎㅎ
<제리의 게임>은 확실히 대작을 완성한 자신감이 엿보였고 덩어리 진 느낌이 덜해 진짜 기술적으로도 연출적으로도 성장했다는게 느껴졌어요. 주름이나 불거진 손가락처럼 나이대를 바로 알 만한 특징적인 요소가 많고 다소 딱딱한 근육의 움직임 때문에라도 아이나 청년층보다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어서도 노인을 고른 거 아닐까 하기도 했어요 ㅎ
<원 맨 밴드>는 단편에도 쿠키가 달려 있는게 좋았어요 ㅎㅎ
제리의 게임 노인을 주인공으로 고른 이유 말씀해주신 게 공감이 가네요. 원 맨 밴드부터였나 n초씩 쿠키가 계속 등장하는데 재밌죠ㅎ
레드의 꿈은 그날 비가와서 묘하게 잘어울렸어요. ㅎ
제 최애는 파란우산, 라루나지만...
원맨밴드 때 관객들 반응이 넘 재밌어서 그 기분을 두고두고 기억할 거 같네요. ^^
추억삼아 씨네마톡 기록해둔거 추천드려봅니다.
https://extmovie.com/movietalk/66551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