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아바시리 번외지 북해도편 (1969) 뜻밖의 걸작. 다카쿠라 켄의 카리스마 넘치는 열연. 스포일러 있음.
홋카이도는 말하자면 일본의 알래스카다.
1960년대 홋카이도를 보니, 그야말로 스파게티웨스턴에서 나오는,
주인공이 헤메다니는 사막과 황야 그 자체다.
유빙이 바다에 떠돌고 눈 쌓인 황무지가 많고
눈덩어리 그 자체인 차갑고 예리한 산봉우리들이 여기저기 솟아있다.
야성과 잔인함과 혹독한 자연의 황활함 -
그냥 눈이 산더미처럼 쌓인 황야다. 스파게티웨스턴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방황하는 그 황야 말이다.
이 영화는 사실상 서부영화다. 눈보라를 뚫고 당도한 다카쿠라 켄이 일본도를 휘둘러서
마을의 악당들을 몰살시키는 내용이다.
그 홋카이도 북단 가혹한 곳에 유명한 형무소가 있었다. 이름이 아바시리다.
가장 악랄한 범죄자들을 가두고 죽지 못해 살라는 곳이다.
각본이 실로 훌륭하다.
다카쿠라 켄은 다리를 저는 어린 아들과 함께
홋카이도말이 끄는 썰매를 타고 눈 쌓인 황야를 건너온다.
그는 마을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술집으로 아들과 함께 들어온다.
서부영화에서 고독한 총잡이가 술집에 들어온 다음
마을사람들이 숨막히는 호기심 속에 서로 탐색하는 그 장면과 똑같다.
다카쿠라 켄은 돈이 없다. 배 고파서 라면을 먹고 싶어하는 아들에게 라면을 사주고 싶은데, 돈이 없다.
그는 자기 외투를 맡길 테니 라면을 달라고 한다.
이 엄동설한에 외투가 없다면 어떻게 사나? 미모의 술집 여주인은
그냥 라면을 줄 테니 외투는 가져가라고 한다. 추위에 질린 아이를 봐서 음식을 공짜로 주려는 것이다.
자존심 강한 다카쿠라 켄은 동정은 싫다고 한다.
척 보아도, 술집 여주인은 잘 생기고 카리스마 있는 다카쿠라
켄에게 첫 눈에 뿅 간 것이 보인다.
상당히 팽팽한 긴장을 잘 살린 장면이라서 관객들의 호기심을 붙잡아두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갑자기 스토리 전환이다. 다카쿠라 켄이 타고 온 말은, 좀처럼 보기 힘든 명마다.
마을사람들은 다카쿠라 켄더러 곧 있을 경마대회에 말을 끌고 나가달라고 애원한다.
말이 끄는 눈썰매를 타고 경주를 해달라는 것이다.
마을사람들의 생계가 달린 배를, 도박 좋아하는 선장이 날려 버렸다.
범죄집단을 끌어모아 마을을 위협하는 악덕 선주에게 말이다.
배를 못 되찾으면, 마을사람들은 악덕선주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다카쿠라 켄이 경마대회에 나가서 우승하는 것만이 이들에게 유일한 희망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경마대회로 장면 전환이다. 시간 끌거나 하는 것 없다. 경마대회 장면은
벤허의 경주장면을 연상시킨다. 아주 격렬하고 난폭하다. 장관이다.
카메라를 들고 쫓아가면서 찍는데, 현장감과 스릴이 넘친다.
다른 영화 어디에서, 홋카이도 설원을 달리는 눈썰매 경주를 보겠는가?
다카쿠라 켄은 이 경마대회에서 우승하고, 마을사람들은 구원받는다.
다른 영화 같으면 클라이맥스에 해당할, 엄청 공들이고 현장감 넘치는 장면인데,
이 영화에서는 초반 몇십분만에 나온다.
이렇게 사람들의 뒷통수를 치며 스토리 전환 다시 전환을 거듭한다.
하지만 뜬금없이 이리저리 옮겨다닌다 하는 느낌보다는,
장면을 전환하면서도 영화는 굳건하게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이 영화를 보며 지루할 틈이 없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아주 선명하다. 카리스마 있고 의리 깊은 다카쿠라 켄.
그를 짝사랑하면서 숨어서 돕는 미모의 술집 여주인. 악당 편에 서 있지만 선은 절대 넘지 않는 선장.
마을사람들을 돌본다 하는 가부장적인 의무를 갖고 자기 희생을 하는 젊은 선주. 흐리멍텅한 캐릭터는 하나도 없다.
그래서, 영화가 굉장히 선명하다.
마을사람들의 가부장 역할을 하며 그들을 돌보기 위해 배마저도 포기할 정도의 선주가 이 영화 선역이다.
가난에 한이 맺혀 금전적 성공에 목을 맨 범죄집단 두목이 이 선주를 노린다. 이 범죄집단이 나중에 다카쿠라 켄의
일본도에 학살당한다. "거, 그정도 가지고 일본도로 학살이라니 너무 했네"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범죄집단이 죽어도 싼 놈들이라는 빌드업을 착착 한다.
홋카이도의 거친 바다에서 살아가는 뱃사람들의 일상이나
어선들이 파도를 뚫고 물고기를 잡으려 애쓰는 고단함도 실감나게 나온다.
무늬만 홋카이도 바닷가마을이 아니라 그 장소의 현장감을 어느정도 살린다. 이것이 또 영화의 성공에 기여한다.
마지막에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범죄집단이 가부장 선주를 몰아붙인다. 선주는 마을사람들을 위해 모든것을 포기할 생각을 한다.
다카쿠라 켄은, 이 범죄집단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정도의 살인자였다.
그는 일본도를 품고 가서 범죄집단 전체를 몰살시킨다.
뭐, 이건 싸움다운 싸움도 없이 일방적인 학살이다.
시골마을에서 자기가 대단한 줄 알고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던
범죄집단은 사실 아마츄어 킬러 축에도 못 끼는 깡패들이었다.
죽는 놈들도 자기 이익을 위해 낄낄거리며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놈들이니 별로 억울할 것 없다.
자토이치 정도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다카쿠라 켄 대 범죄조직 결투장면은 현란하다.
관객들의 마음을 잘 안다. 이것저것 재거나 억제하지 않고 그냥 막 휘몰아친다.
다카쿠라 켄은 달려온 경찰들에게 칼을 넘기고 체포되어 아바시리로 떠나간다.
마을사람들이 괜히 살인에 연루되어 있다 하는 식으로 덮어쓰지 않으려면, 자기가 다 뒤집어쓰고 깔끔하게
잡혀가는 쪽이 낫다.
일본도가 나오지만, 본질적으로는 서부영화다. 서부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특히 서부영화의 걸작 셰인과 비슷하다.
과묵하고 말이 없고,
당하면 당하는 대로 묵묵히 자기 일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하는 처지에 이르자 다카쿠라 켄은 냉혹한 살인자의 모습을 드러낸다.
수갑을 차고 담담하게 걸어가는 다카쿠라 켄에게 남은 단하나 걱정은 아들이다.
미모의 술집여주인은 다카쿠라 켄에게 그의 아들을 자기 아들처럼 키우겠다고 한다.
술집여주인은 애절한 눈빛을 다카쿠라 켄에게 보내지 않는다. 애절한 눈빛은 헤어지는 사람들끼리나 나누는 것이다.
술집여주인은 강인한 눈빛을 다카쿠라 켄에게 보낸다. 이제부터 둘이 이인삼각으로
고난을 헤쳐나가자 하는 다짐이 있는 눈빛이다. 이것이 새로웠다. 북방의 냉혹한 환경에서
혼자 굳세게 살아온 북방의 여인이라 생활력 강하고 지혜롭다.
다카쿠라 켄과 여주인이라면 앞으로 잘 해낼 것이다.
(영화의 엔딩은 슬프거나 어둡지 않다. 이것도 무언가 상징하는 것이 있을 법하다.)
실로 잘 만들어진 영화다. 재미있었기도 하지만,
오락영화는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 하는 모범을 보여주는 영화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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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형무소가 주 배경은 아닌가 보네요.^^
재밌을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