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 '가가멜' 1부
※ '크루엘라'를 보고 그냥 써보고 싶어서 쓰는 가가멜 이야기입니다. 복잡한 글일거라 예상은 했는데 한큐에 끝내지 못할 것 같아서 나눕니다. '스머프'와 다소 다른 부분이 있을수도 있으니 양해바랍니다. '조커'도 '배트맨' 원작과 탄생배경이 달랐으니 그러려니 하시기 바랍니다.
18세기 스헬더강 북부의 작은 마을에는 어린 앙투안이 살고 있었다. 10살의 앙투안에게는 다정한 부모님과 든든한 큰누나, 갓 태어난 막내동생까지 5명이 가족을 이루고 있었다. 앙투안의 아버지는 대장장이였다. 주로 농기구를 만들었지만 네덜란드와 독립전쟁이 한창인 요즘은 창과 검을 만든다. 독립군으로부터 일정 금화를 받고 일하는 것이었기에 살림에 큰 지장은 없었다. 더군다나 앙투안의 마을은 독립전쟁과는 동떨어진 평화로운 곳에 있었다. 그 마을은 후방 보급기지와 같은 곳이었다.
어느날, 앙투안의 마을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전방에서 전쟁이 끝나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의 끝이 반드시 평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장에 갑작스런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병사들을 모조리 집어삼켰다고 한다. 병에 걸린 병사들은 불이 없이도 온몸이 새까맣게 타들어가 피를 토하다 죽었다고 한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적과 아군 가릴 것 없이 전장에서 도망쳤으나 바람을 타고 쫓아온 병은 끝내 병사들을 집어삼켰다고 한다.
전쟁이 끝났지만 그때부터 마을에는 공포가 찾아왔다. 성직자는 마을을 지키기 위한 기도를 했고 병균을 막으려는 의도로 석회가루를 집 외벽 곳곳에 뿌리는 사람이 늘었다. 석회가루가 병균을 막는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건 단지 불안을 조금이라도 잠재우려는 의식과 같은 것이었다. 평화롭던 마을에는 갑자기 침묵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집 밖으로 움직이지 않았고 거리는 마치 죽음 직전의 새벽처럼 고요했다.
흩날린 석회가루인지 안개인지 구분이 가지 않던 어느 새벽, 앙투안의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장작을 주워오기 위해 산에 올랐다. 여느 아들이라면 짜증낼 수도 있는 새벽 심부름이지만 앙투안은 아버지를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열심히 했다. 바구니를 들고 산에 오른 앙투안은 바닥에 떨어진 마른 나무가지를 한가득 주웠다. 이 정도면 충분할거라 생각한 앙투안은 해가 완전히 뜨고 나서야 마을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산등성이에서 내려다 본 마을에는 검은 안개가 밀려오고 있었다. 앙투안은 깊은 밤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검은 안개는 전쟁터를 쑥대밭으로 만든 병균이었다는 것을. 놀란 앙투안은 들고 있던 장작과 도끼를 내려놓고 마을로 뛰어갔다. 앙투안이 마을로 뛰어간 들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앙투안 역시 마을로 뛰어가서 어떻게 할 건지, 가족들이 살아있을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그러나 앙투안은 무작정 검은 안개를 마주보며 마을로 뛰어갔다.
검은 안개가 앙투안에게 닿기 직전, 한 노인이 앙투안을 덥썩 업어 말에 태웠다. 그리고 검은 안개를 피해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앙투안은 발버둥쳤지만 노인에게 묶인채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앙투안은 그렇게 얼마간 짐승처럼 울부짖다 정신을 잃었다.
앙투안은 병균에 감염된 시체를 본 적은 없다. 마을 사람들의 말로 그들은 불에 그을린 것처럼 온몸이 검게 타들어가면서 고통스럽게 죽어갔다고 한다. 앙투안의 눈앞에 아빠와 엄마, 누나와 어린 동생이 있다. 앙투안은 가족들에게 다가가려 하는데 발을 움직일 수 없다. 그 사이 서서히 다가온 검은 안개가 가족들을 훑고 갔다. 가족들의 몸이 검게 타들어간다. 그리고 고통의 울부짖음이 메아리처럼 들린다. 피를 토하고 손톱이 부러지고 이가 부러지는 고통. 앙투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울부짖으며 그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다. 긴 시간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족들이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앙투안에게는 마치 영겁의 세월처럼 느껴진 시간이었다. 앙투안의 코 끝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그 바람은 검게 타버린 가족들도 느낀 듯 하다. 바람을 따라 재가 돼버린 가족들이 사라진다. 앙투안은 사력을 다해 가족을 붙잡으려고 기어간다. 기어가는 힘에 손톱이 부러진다. 무릎은 탈골이 될 것처럼 버티지 못하고 있다.
"앙투안!! 정신차려라"
앙투안은 꿈에서 깼다. 앙투안이 기절한 곳은 낡은 오두막이다. 오두막을 잠시 둘러본 후 앙투안은 그곳이 누구의 집인지 안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앙투안을 구한 사람은 아버지의 친구인 약초 할아버지 옌센의 집이었다. 옌센 할아버지는 포자구름을 향해 돌진하던 앙투안을 구해 산 속에 있는 자신의 오두막으로 데려온 것이다. 옌센은 정신을 차린 앙투안에게 기력을 보충할 수 있는 약초로 달인 수프를 건넸다. 앙투안은 수프를 입에 대자 쓴맛을 느끼고 내려놨다.
"남자라면 다 먹어야지. 너희 아버지도 그건 다 먹었어"
옌센 할아버지의 말은 앙투안을 자극했다. 늠름한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던 앙투안은 눈을 질끈 감고 수프를 넘겼다. 접시를 내려놓은 앙투안은 잠시 머뭇거리다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앙투안은 가족이 살아남지 못했음을 실감했다. 옌센 할아버지도 자신이 말실수한 것을 깨닫고 앙투안을 안아줬다. 앙투안은 눈물이 범벅이 된 눈으로 옌센에게 물었다. 옌센은 차마 마을에서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앙투안에게 너희 가족은 천국에서 편히 쉬고 있을거라는 말만 할 수 있었다. 앙투안은 그치지 않는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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