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크루엘라> 리뷰
요즘 들어서 빌런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많이 나오는 듯하네요. 정확히 말하면 기존의 스토리에서 악역 포지션이었던 캐릭터들의 탄생 배경이나 뒷이야기를 다룸으로써, 등장인물 간의 관계나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해주고 캐릭터의 내면을 깊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크루엘라’라는 캐릭터는 너무 오래전에 봤던 터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이번 <크루엘라> 개봉을 계기로 <101마리 달마시안 개> 애니메이션을 오랜만에 다시 보았고, 글렌 클로즈 주연의 실사화 영화도 처음으로 챙겨보게 되었어요.
앞선 두 시리즈에서는 ‘크루엘라’라는 인물의 재수 없고 괴팍하고 히스테릭한 부정적인 면모만을 단편적으로 그려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비교적 차분하고 인간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내면적으로 좀 더 공감해볼 만한 구실을 준 것 같아요. 모피에 집착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법과 양심에 따르지 않고 악행을 저질렀던 지난 작품들에 비하면 많이 순화된 느낌이었고, 만약 이후에도 원작 그대로의 캐릭터성을 따를 것이라면 후속작에서 더욱 악독하고 잔인해지는 계기를 보여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양모에게는 ‘에스텔라’의 인격으로서 살기를 강요받고 ‘크루엘라’의 인격이 단순히 반항아나 사고뭉치로 치부되어 억압되고, 친모에게는 태어난 순간부터 쫓겨나고 성장한 이후 다시 만나서도 경쟁 상대이자 제거 대상으로 여겨지는 등 ‘크루엘라’라는 인물은 두 어머니에게 버려진다는 것도 그녀가 독해지는 하나의 원인일 듯합니다. 그녀가 반사회성 및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이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니 자존감 형성에 중요한 어린 시절에 부모의 무시나 학대에 의한 트라우마 혹은 유전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하네요. 어린 시절에 ‘크루엘라’의 인격이 양모로부터 억눌렸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양모와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친모인 ‘바로네스’의 성격에 유사한 부분이 다수 있는 것으로 보아 모계 영향 유전일 수도 있을 듯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크루엘라’의 독창성과 천재성을 인정해주고 증폭시켜주었다는 점에서 ‘바로네스’가 주인공에게는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이란 생각도 드네요. 일례로, 비즈 드레스의 완성을 자축하기 위해 ‘바로네스’가 ‘에스텔라’와 함께 샴페인을 마시던 식당 장면은 두 사람의 은근한 신경전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말라’는 ‘바로네스’의 충고는 ‘크루엘라’의 모습을 숨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상한 점이 보이지 않도록 항상 모자를 쓰게 했던 양모와는 대조되는 태도의 대사였습니다.
출생에 얽힌 비밀은 한국 드라마에서도 단골로 쓰이는 소재라서 일부분 예상이 되고 친숙하기도 했고, 정체를 숨기기 위해 변장한 채 악당에게 복수한다는 구성과 주인공이 이중 신분을 가졌다는 특징은 히어로 무비 같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호레이스’와 ‘재스퍼’와 함께 협동하여 도둑질을 한다거나 작전을 세우고 몰래 범죄를 저지르는 등 하이스트 무비의 특성도 지녔고, 차량 추격 액션도 갖추고 있는 등 볼거리가 매우 다양한 영화였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음악과 의상이었습니다. 음악을 통해 청각적으로 즐거울 뿐만 아니라, 더 긴장되거나 흥이 돋거나 신나는 등 각 장면이 관객에게 요구하는 감정을 더욱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풍스럽고 우아한 ‘바로네스’의 의상, 자유롭고 트렌디한 ‘크루엘라’의 의상, 두 사람의 서로 다른 패션 대결을 보며 시각적인 즐거움을 한껏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70년대 런던이라는 배경을 고증했다고 하는데, 직접 접해본 것은 아니지만 시대적인 분위기에 깊숙이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고 난 직후에는 힘이 빠지며 여운이 꽤 강하고 길게 남았습니다. 비슷한 느낌을 <조커> 관람했을 당시에 받았는데, 캐릭터가 지닌 개성이 매우 독특하며, 역할을 맡은 배우가 매우 연기를 심하게 잘해서 인물에 몰입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유사한 부분도 있는 것 같네요. <조커>가 빈부격차로 인한 계급 갈등을 다루었듯이, <크루엘라>에서도 빈곤층에 속하는 ‘크루엘라’가 상류층이자 직장 상사이며 오만방자하고 뻔뻔한 ‘바로네스’라는 악인에 대항한다는 점이 닮은 듯합니다. <조커>가 약간은 꺼림칙하고 착잡한 결말을 남긴 것과는 달리, <크루엘라>는 악을 처단했다는 통쾌한 결말을 내렸다는 점이 다르기도 합니다. 따지고 보면 ‘크루엘라’는 초반에 도둑질한 것 말고는 대부분 악의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명분이 있는, 복수의 과정이었기 때문에 이번 영화에서는 악당의 면모가 보이지는 않았네요. ‘바로네스’라는 상대적으로 더 큰 악이 있었기 때문에 묻혔을 수도 있고요.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아티’라는 인물입니다. 캐릭터 자체의 성격이나 배우의 연기는 개성적이고 매력이 있는데, 포지션이 다소 애매한 느낌이었습니다. ‘재스퍼’는 ‘크루엘라’를 진심으로 도우려는 마음을 가진 캐릭터로서 주인공과 진지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호레이스’는 전형적인 개그 캐릭터의 역할도 하고, 그 외의 조연들도 각자의 구분된 임무가 있었는데, ‘아티’는 개별적인 역할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물들이 하는 임무를 조금씩 나눠서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엑스트라나 다른 조연들과 비슷한 행동이나 대사하는 것을 보고 비중 있는 단역 정도라는 생각도 들었고, ‘크루엘라’가 그의 도움을 받아 의상 디자인을 한다는 점은 도리어 그녀의 천재성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캐릭터가 가진 매력에 비해 역할이 작은 것 같아 아쉬웠고, 후속편에서는 그가 가진 개성을 좀 더 명확하게 보여줬으면 좋겠네요.
계획이 있다는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에 이어 쿠키 영상에서는 원작 애니메이션과 연결되는 듯한 장면을 보여주는데,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이어질지 매우 궁금해지네요. <101마리 달마시안 개> 원작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살려 개의 비중이 늘어날 것 같기도 합니다. 여담으로,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정주행하고 나서 이 영화를 보니, 혹시 절벽으로 떨어져 사망했다던 양모가 훗날 되돌아오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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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잘 봤습니다. 양모는.. 거기 높이가 장난이 아닌데 쉽지 않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