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팬이 본 <고질라 VS. 콩>(2021)리뷰
<고질라 VS. 콩>(2021). 러닝타임을 볼거리로 꽉꽉 채웠다. 고질라와 킹콩이 서로 치고받고 싸운다는 상상만으로도 영화를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조합의 특성상 대단한 서사 혹은 완성도를 기대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상으로 만들어 낸 고층 빌딩 크기의 역대 최강 두 괴수를 등장시키고 이를 말이 좀 되게 만들려 진지 빨고 덤벼들었다간 오히려 어설퍼질 것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가볍게 볼거리와 코미디 위주로 가는 것이 낫고 이 영화도 그 흐름을 택한다.
이야기는 킹콩의 보폭처럼 아주 큰 보폭으로 빠르게 흘러간다. 보폭과 보폭 사이의 디테일은 과감히 생략하고 큰 흐름에서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인류의 존망이 걸린 문제들이 속전속결로 쉽게 결정되긴 하지만 큰 흐름. 아주 큰 흐름에서는 시퀀스와 시퀀스가 바통터치하듯 흘러가 매끄럽게 느껴진다.
다만 너무 매끈하다 보니 긴장감이 없는 것은 아쉽다. 눈앞에서 고질라와 킹콩이 저리 치열하게 싸우니 눈은 즐거운데 이상하게 긴장감이 없다. 그 이유는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방식조차도 너무 매끄러워서다. 문제가 나오면 바로 해결책이 나오고 위기가 닥치면 어김없이 누군가 나타나 바로 도와주고 식이다. 영화 내내.
스크린에 두 괴수가 동시에 등장하는 꿈같은 장면을 보는 즐거움은 말할 것도 없고, 새로운 상상력이 더해져 인간과 킹콩이 지구의 바닥 아래로 여행하는 것도 흥미롭다. 한 편의 괴수오락영화로서 킬링타임용 재미는 보장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것은 킹콩의 소비 방식이다. 고질라와 킹콩의 대결 구도지만 킹콩의 여행기에 가까운 영화다.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장식한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물에 빠져 익사할 뻔하고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고질라에게 얻어터지기도 한다. 때로 눈빛은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설정상 덩치는 커졌지만 왠지 늙어 보인다. 물론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강인함을 보여주지만 신비감은 사라졌다.
내가 기억하는 킹콩은 이런 모습이 아니다. 이야기의 중반 즈음 인간들이 위기에 빠지고 빌빌거릴 때, 쿵쿵 거리며 나타나 거대하면서도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압도적 강력함을 선보인 후 어디 모기가 물었나 식으로 츤데레한 모습을 보여주며 콧바람이나 푹푹 쐬는 모습. 그리고 정말 강력한 대상을 만났을 때가 되서야 가슴을 치며 세상이 찢어져라 포효한다. 그 짜릿함.
하지만 <고질라 VS. 콩>에서의 킹콩은 포효를 너무 많이 해서 그 값어치가 떨어지고 포효할 때마다 그 거대한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계속 치니 피를 토할 것만 같다. 또한 킹콩은 짐승처럼 싸워야 제맛인데 어벤져스의 히어로 캐릭터 마냥 도끼를 휘두른다거나 사람처럼 싸울 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특히 고질라와 싸우다 빠진 어깨를 빌딩에 부딪혀 다시 끼울 땐 <이연걸의 정무문>(1994)이 생각났다. 나중엔 깜짝 수화까지 보여주는데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감동도 사라졌다. 피터 잭슨의 <킹콩>(2005)에 등장했던 킹콩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 큰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굳이 수화까지 안 해도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볼거리는 물론이며 감성적으로 마음 깊은 곳을 휘젓는 정서까지 있었다. 감동 없는 킹콩이 달갑지 않다. 킹콩이 사랑한 앤 대로우(나오미 왓츠)를 꼬마 아이로 갈음하기엔 턱 없이 부족하다.
주저리주저리 투덜거리긴 했지만 킹콩을 다시 봐서 좋긴 했다. 고질라는 아직도 정이 안 간다. 그나저나 인간이 뭐 예쁘다고 킹콩이 저리 고생하며 우리를 위해 싸우나. 둘이 싸움 붙이고 인간은 멀리서 구경이나 하고. 마치 투계장의 닭싸움 같아 왠지 기분이 별로다. 만약 다시 리메이크 된다면 올드스쿨 느낌의 로맨스 버전 킹콩을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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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고질라팬인데 영화 쥔공이 넘 킹콩이라 킹콩팬들은 좋았겠다!!ㅜㅜ 싶었는데...ㅎㅎ
또 나름 신비감이 없어져서 아쉬울수도 있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