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스포) [레 미제라블]: 디지털 시대와 결합한 종이책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결합했다기보다도, 디지털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반복되는 종이책 속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요.
프랑스에선 2019년에 개봉했고, 국내에선 4월 15일 정식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는 라쥬 리 감독의 신작 <레 미제라블>의 제목을 보면 자연스레 1862년 최초 출간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최근 개봉한 톰 후퍼 감독의 뮤지컬 영화를 포함하여 이 작품은 수차례 영화화나 뮤지컬화가 되었고, 그렇기에 제목만 봤을 땐 이번 작품 역시 원작의 새로운 영화화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이 작품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다뤄지고 있는 이야기도 완전히 딴판이고, 시대 배경도 소설과는 달리 현대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영혼..?이라고 표현하는 게 100% 적합할진 모르겠으나, 이 영화의 주제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과 궤를 같이합니다. 실제로 영화가 빅토르 위고 소설의 글귀 중 한 부분을 텍스트 형식으로 화면에 띄우는 것으로 끝나기도 하죠.
라쥬 리 감독의 작품에선 휴대폰이 등장하고, 카메라가 달린 드론이 등장하며, 손톱만한 메모리칩 때문에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위고의 작품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신문물들이죠. 그런데 이 다름 속에서 제 이목을 끈 건 다름 아닌 똑같음이었습니다. 시대도 다르고 사람도 다른데, 폭력은 그대로며 싸움도 그대로입니다. 시대와 사람은 바뀌었지만 그 시대와 사람을 담는 사회는 결코 바뀌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리 감독이 하고 싶었던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쁜 사람도 나쁜 풀도 아닌 나쁜 농부..즉 사회 속의 부조리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았고, 도대체 영화 속 각각의 '패거리'는 정확히 무얼 위해 싸우는지도 영화가 끝을 향해갈수록 흐릿해졌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사'와 '스테판'의 눈빛을 보고 감히 제가 이 영화 속 인물들의 선악 여부를 구분짓는 건 건방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눈빛은 그저 모두가 피해자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과연 그들은 모두 무얼 위해, 누굴 위해 피를 흘리는 건지, 표면적으로는 알겠으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점점 흐릿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라쥬 리 감독의 <레 미제라블>은 공격적인 동시에 허무주의적인 느낌을 선사하는 묘한 작품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뭔가 온몸에서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톰 후퍼 감독의 <레 미제라블>을 보고 나왔을 때 뭔가 온몸의 피가 들끓는 느낌이었다면, 라쥬 리 감독의 <레 미제라블>을 보고 나왔을 땐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라쥬 리 감독의 매우 인상적인 장편 연출 데뷔작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연출한 장편치곤 굉장히 섬세하고 촘촘했으며, 무엇보다 여운이 짙게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시네마틱한 스코프 화면비가 그나마 이 무섭도록 현실적인 작품이 픽션의 세계라는 걸 일깨워주며 관객이 영화와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두고 관람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꼭 스코프 비율의 스크린 (혹은 마스킹해서 스코프 비율로 맞춰주는 스크린) 에서 관람하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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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건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건가 싶을 때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