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세상 두 남자의 너무 다른 사랑 방식, <사이드웨이>(2006) 리뷰
알렉산더 페인은 역시나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사이드웨이>(2006)는 와인농장 여행을 떠난 두 남자의 이야기다. 평범한 듯 서로 너무 다른 두 남자. 이혼의 아픔을 와인으로 달래는 와인 애호가이자 영어 교사인 마일즈(폴 지아매티). 성격은 아주 소심하지만 와인을 이야기할 때만큼은 생기가 넘친다. 무던하게 흘러가는 삶 속 그에게도 꿈은 있다. 자신의 소설을 출간하는 것.
마일즈의 대학시절 단짝 친구이자 정반대의 외향적 성격을 지닌 잭(토마스 헤이든 처치)은 한물간 배우이다. 대단한 외모를 지니진 않았지만 선천적인 플레이보이다. 사실 현실에서 잘생긴 플레이보이는 잘 없다. 마일즈는 자작 소설을 출판사에 보낸 후 출간 결정을 기다리고 있고, 잭은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있다. 이 둘은 총각파티 겸 와인농장으로 여행을 떠난다.
어찌 보면 별거 없는 평범한 교외 여행에 평범한 두 사람의 총각파티지만 서로 너무 다른 두 친구가 함께 하니 여행이 요란해진다. 마일즈는 골프도 치고 와인도 마시며 두 사람의 오붓한 우정 여행을 기대했지만 잭은 식당을 가도 와인농장을 가도 오로지 여자를 꼬실 생각뿐이다. 결혼을 앞둔 이 남자 골칫덩어리다. 정서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마일즈는 거부감을 느끼지만 죽마고우인 걸 어떡하겠는가. 절교할 거면 진즉에 했을 것이다.
이혼의 아픔이 있는 마일즈는 뇌를 거치지 않고 본능적으로 사랑을 하는 잭이 어쩌면 부럽다. 자신도 모르게. 잭은 결국 사고를 치고 이기적인 행동이 이어진다. 그 와중에 마일즈는 이혼한 전처의 재혼 소식을 듣는다. 기껏 찾아온 새로운 두근거림의 순간조차 소심한 성격 탓에 날려버리고 만다. 그리고 감감무소식이던 출판사에서 출판 거절 소식을 듣고 마일즈는 폭주한다. 잭과 해변에 앉아 이렇게 말한다.
반평생을 살았는데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어
난 창문에 묻은
지문 같은 존재야
하수구를 통해 바다로 흘러갈
똥 묻은 휴지 신세라고
바로 그거야, 방금 그 말
얼마나 근사해?
'바다로 흘러갈 똥 묻은 휴지'
이것이 잭의 태도다. 위로할 줄 안다. 이런 각도의 시선은 여자를 유혹할 때 큰 도움이 될 터이다. 잭은 마일즈가 도저히 이해 못 할 행동들을 하지만 다 진심이다. 멍청할지라도 교활하진 않다. 잭은 이성보단 본능에 끌려 위험이 따르는 행동을 하고 그렇게 얻어터져가며 사랑을 배운다. 자업자득. 결국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채 마일즈와 식당에 간다. 근데 거기서 여자를 또 꼬신다. 마일즈는 미칠 노릇이다. 그런 마일즈에게 잭은 말한다.
내가 이러는 게 불만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난 이걸 해야겠어
문학, 영화, 와인은 이해하면서
왜 내 성욕은 이해 못해?
맞는 말이다. 성욕이라고 해서 저급한 것은 아니다. 성욕도 사랑의 큰 일부분이다. 정신적인 것이라고 해서 더 고결할까. 문학, 와인 앞에서 고상한 척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이성이 앞서니까 가능한 일이다. 사랑 앞에서는 이성이 감정과 바통터치하고 뒤로 물러선다. 그러니 고상한 척하면 스텝이 꼬인다. 스텝이 꼬이면? 망신당할 확률이 높아진다. 결국 마일즈는 결혼을 앞둔 잭이 정신 못 차리고 여자를 꼬시려 드는 것은 못마땅해하지만 사랑 앞에선 무식할 정도로 용감한 그 태도만큼은 부러워하게 된다. 물론 절대 겉으로 티 내지 않겠지만.
이해할 수 없고 나는 행할 수 없지만 곁눈질로 계속 보게 되는 것들이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런 것들이 있다. 우리는 가질 수 없는 것, 하지 못하는 것을 욕망하고 이성으로 통제한다. 통제한다는 것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고 통제의 강도는 각자가 다를 것이다. 마일즈와 잭의 강도 차이는 극과 극이다. 두 사람의 동행이 재미있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잭을 힐난할 필요 없다. 잭이 있기에 마일즈는 사랑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백날 입으로 사랑은 용기다 떠들어도 소용없다. 백 번의 조언보다 한 번의 행동이야말로 진정한 조언이다. 잭이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말이다. 그렇다고 잭이 유난히 특별한 사람일까. 저런 사람 의외로 정말 많다. 그 사실이 좀 별로인가? 근데 세상이 원래 그렇다. 거울 속 나 자신이 늘 아름답진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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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두 캐릭터도 재밌었지만 조연이었던 산드라 오의 매력도 장난 아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