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디네] 건축가의 시선으로 본 해석 리뷰 (스포, 테리어님 나눔)
테리어님 나눔으로 운디네를 보고왔습니다 :D
전공이 건축, 도시계획이라 관심있던 영화였는데요.
아무래도 베를린 근현대 도시개발사가 나오다보니
서울 구도심의 비슷한 곳들이 연상되기도 해서,
저는 그 이야기들이 엄청 재밌었지만 다른 분들은 좀 낯설었을듯 합니다.
배운지 하도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나...
도시개발의 역사 이야기가 남녀 주인공들의 관계에 모티브가 되는 측면이 있어
건축가의 시선으로 후기를 써봅니다. :D
(당연히 스포만땅!)
[서울에 빗대어 본 베를린에 대한 소개]
주인공이 일하는 박물관이 있는 베를린의 미테지역(Mitte=중구)은
우리나라로 치면 강북지역(종로구, 중구)과 비슷한 곳입니다.
역사가 깊은 오래된 건축물이 많은 지역이자, 동시에 재개발이 필요한 곳이죠.
다만 우리나라는 강남을 개발하면서 한양 사대문 안이 졸지에 강북이 되어버렸다면,
미테지역은 원래 동독의 서쪽끝이었는데, 통일되면서 베를린 중심부가 된 경우입니다.
베를린의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주거난이 심각해지자 서민들의 집이 필요했고,
사회주의 동독에서는 2차대전때 폭격맞은 지역을 허물고 공동임대주택을 잔뜩 지어놨지요.
(*요즘엔 그시절 주택단지들 재개발한다고 미테지역이 쌩 난리라는;; 반포~잠실이랑 비슷하죠?ㅎㅎ)
운디네는 영화에서 베를린 궁의 복원(훔볼트 포럼)을 위해 일하는 박물관의 도슨트지만,
계약직 프리랜서라 단기 임대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계속 언급하는 운터덴린덴(Unter den Linden)은 '베를린궁~브란덴부르크 문'을 잇는 유서깊은 거리 이름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경복궁~숭례문'을 잇는 광화문로(구 육조거리)를 떠올리시면 될 거 같습니다.
독일인들의 향수가 깃들어 있는 곳이지요.
참고로 베를린궁(Berlin Palace)의 가슴아픈 역사는 우리나라 경희궁과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마치 경희궁이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어 경성중학교 -> 서울고등학교가 되었다가
현재 일부 복원하면서 서울역사박물관이 된것처럼,
1918년 독일제국 빌헬름2세의 궁전은 해체후 박물관으로 사용했다가
나치시기의 철거 위기를 무사히 넘기는 듯했으나 2차대전 때 폭격당하고,
50년대 사회주의 동독에선 제국주의의 상징이라며 완전히 철거한 뒤
공화국궁을 세웠다가, 통일후 그걸 또다시 철거하고;
드디어 올해! 훔볼트 포럼이 박물관으로 쓰려고 복원을 마무리하여 2020년생으로 다시 태어난!;;;
즉, 시대의 흐름에 따라 파괴-재생을 반복해오면서 그 존재가치와 성격이 변하는 곳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광화문로 주변에 서울시립미술관(평리원-경성재판소-대법원청사), 조선총독부 건물(폭파-경복궁복원), 서울시청 구관(전면 신청사 리모델링) 등 이런 건물들이 그득그득 합니다. :D)
[주인공의 서사와 베를린궁의 관계]
'물의 정령, 운디네 설화'를 기반으로 한 여주와 남친들의 잠수-죽음, 회복의 변화과정을
습지를 개발한 베를린도시의 복원, 재생의 변화과정과 서로 엮어서 바라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서울 강북 구도심의 오래되고 멋진 건축물들의 처지를 한번 떠올려 보시길...... :D
(*신비롭고 아름답지만, 애물단지 취급받는...)
영화에서 주인공=베를린궁은 두 남친과의 만남(시대)에서 각기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데,
과거와 현남친 사이에서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내다, 과거와 함께 사라지며 그리움으로 남습니다.
궁전이란, 도시 임대주택에서의 삶(현실)과는 동떨어졌지만 간직해야할 정령(동화)같은 곳이니까요.
[개발, 변화에 대한 모티브]
초반에 주인공이 "Form Follows Function" (FFF :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읊습니다.
1920년대 모더니즘 사상의 기초(독일 바우하우스)가 되는 발언으로
건축과에서는 입학하자마자 배우는 건데, 순간 훅~! 나오니 너무 놀래서 다음 대사를 놓쳤다는;;
(*뒷 대사도 중요해보였는데...흑 ㅜㅜ, N차하시는 분들께 함 부탁드려 봅니다.ㅎ)
베를린궁은 어찌보면 형태(껍데기)는 옛모습 그대로두고, 안의 기능(내용)만 바뀌는 측면이 있기도 하고,
오히려 공화국궁이란 망가진 껍데기를 역사박물관의 기능에 맞게, 새롭게 재건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본래 FFF는 장식가득한 전통건물 싹 갈아엎고, 현대식(유리+철골) 빌딩 세우는 데 주로 쓰이는 말이지만요.)
(구)남친은 운디네의 Form을 보고 섹시하다 말하고, (현)남친은 Function을 보고 지적이다 말하죠.
(*FFF = 섹시한 제복은 지적인 도슨트라서 입는거임! ㅎㅎㅎ)
[도시개발의 역사 = 주인공들의 잠수-죽음, 재탄생]
도시란 건 완전히 파괴하고 새로 만드는 게 불가능합니다.
옛것을 간직하면서도, 도태되지 않도록 계속 변모해야하죠.
역사적 건축물들의 파괴-재생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공사중일 땐, 잠시 기능을 멈추는(심정지?)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일부 맞지않는 건축물은 아예 끝장내기도 하구요.
주인공들이 잠수하거나, 부러지거나, 심정지하는 순간들은
껍데기(Form)와 속사정(Function)을 상대에게 서로 맞춰가는 순간들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러한 시각으로 운디네의 연애사를 따라가면, 생각보다 메타포가 많이 읽히는 듯 합니다.
물은 본원의 장소(메기가 사는)이자, 변화하고(잠수/세례?) 죽는 곳(요단강, 삼도천)의 이미지가 복합적으로 있는듯 합니다.
(*원래 도시문명은 강 주변에서 생겨나지요.ㅎ)
운디네가 역사적 건축물(궁전)이라면
(구)남친은 아마 제국~동독시기를 뜻하고,
(현)남친은 통일후 복원시기를 뜻하지않을까 싶네요.
(*이름부터 요하네스, 크리스토프 느낌이 많이 다르다는... ㅎㅎㅎ)
포스터는 (현)남친의 품에 기대어 걸어가다, 다시 (구)남친을 보자 잠깐 심정지하는 순간입니다.
운디네는 초반에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날 떠난다면 (구)남친 널 죽여야한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결국 분을 삭히지 않은 상태에서 관계 정리도 하지않은 채, 다음 (현)남친을 만나게 됩니다.
수조(=베를린장벽)가 와장창 깨지면서 물폭탄+유리파편과 함께 그를 맞닥뜨리죠.
남친을 따라 들어간 물에서 여주는 잠수 도중 심정지하지만, 곧 남친이 인공호흡해서 살려냅니다.
또한 남친이 선물한 그를 닮은 잠수사 피규어 다리가 부러지지만, 주인공이 잘 이어붙여 놓지요.
마치 현대에 적응해서 살아남으려는 베를린궁처럼...
(*수조 속에 있던 피규어는 과거~미래를 잇는 기억의 조각일까요?)
운디네는 임대주택 안에서 남친이 인공호흡하며 불러줬던 "Staying Alive" (살아있어!) 노래를 흥얼거려보지만...
(현)남친이 전화로 (구)남친에 대한 미련으로 잠깐 심정지됐던 그녀를 원망하고(했다 착각?하고)
남친은 잠수 중 피규어처럼 다리가 끼어 기나긴 뇌사상태에 이릅니다.
(*오히려 남친이 과거에 잠식당해 버린거겠죠...)
각성한? 여주는 (구)남친을 영원히 잠수시킵니다. 그리곤, (현)남친을 위해 자신 또한 잠수하러 들어가죠.
덕분에? 깨어난 남친은 단기임대주택(=팍팍한 현실)을 찾아보지만 운디네를 발견하지 못하고,
(*운디네가 현실을 살았었단 흔적은 벽에 묻은 와인자국 뿐...)
바뀐 도슨트는 운디네가 일시적인 프리랜서였다는 걸 알려줍니다.
(*그녀의 강의는 주로 임대주택 부동산의 현실적인 이야기들이죠.)
남친은 한동안 여주를 잊고 살아가다가, 아이(=미래)가 생기자 그리움에 다시 잠수를...
어랏? 남친이 또 죽나? 싶은 순간에 그가 들고 올라온 '다리를 이어붙인 잠수사 피규어'...
운디네의 흔적들이 잔뜩 묻은 그 피규어는 곧 태어날 아기의 장난감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더군요.
(*아마도 그는 어떻게든 "Staying Alive" 해나가겠지요. 어항속의 두 모아이 석상처럼... 아이에게 옛날옛적 이야기를 들려주며...)
+ 개인적으로 운디네는 로맨스물이라기 보다는 베를린이라는 역사도시의 근현대 개발사에 대한 애환을 표현하는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 서양에서 잠수는 세례(baptism)를 은유하곤 합니다. 즉, 물은 도시 태동의 젖줄, 근원지이자 변화하기 위해 들어가는 문이기도 하지요.
(*이제보니 피규어는 기억의 조각이자, 미래를 여는 열쇠같기도 ㅎ)
+ 산업 잠수사라는 남주의 직업이 참 독특하군요. 잠수장면에 꼬로록 소리가 그득해서 제가 물속에 있는 것마냥 참 이색적인 체험이었습니다.
(*습지를 개발하려고 물 막아놓은 댐을 관리하는 직업인 것도 의미가 있을듯...)
+ 메기는 구남친 죽이고 현남친의 삶을 이어나가게 한 뒤, 정령이 되라며 운디네를 꼬드기는 제국 전 습지(근본)의 존재였을까요?
(*군터란 이름을 찾아보니 니벨룽겐 전설 속 독일 영웅이라는군요.)
+ 현남친 호아킨 피닉스 닮지 않았나요? 인중의 수술흉터와 다크서클, 묘한 분위기까지 내내 그생각이 나더라는...
+ 여주인공은 이쁘기도 하지만, 묘하게 요오~~물의 분위기가 납니다. ㅋㅋ
+ 좋은 영화 볼수 있게 나눔해주신 테리어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_ _)
*운디네 리뷰 2탄은 요기에! ㅎㅎ
https://extmovie.com/movietalk/61720401
*페촐트 감독의 다른 작품 후기는 요기!
[페촐트 기획전] 6편을 보고난 짧은 단평(스포)
[페촐트 기획전] 주인공 이름에 담긴 뜻 (어원 검색 Tip)
[운디네] 건축가의 시선으로 본 해석 리뷰(스포)1
[운디네] 건축가의 시선으로 본 해석 리뷰(스포)2
[피닉스] 나즈막히 말하다 묵직하게 한방 때리는...(스포)1
Nashira
추천인 68
댓글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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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영화가 건축,도시에 관심있어야... 좀더 쉽게 읽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ㅎㅎ
아! 기억났어요. 어디갔어 버나뎃 후기글에서 댓글 달아주셨던 분이군요 ㅋㅋㅋ
건축의 재건과 운디네의 운명 (물로 회귀)를 엮은 건 알지만 상세한 것은 잘 모르니 막연히 감만 가지고 있었는데 멋진 후기 감사합니다.
앞으로 건축과 관련된 영화 앞으로 기대하겠습니다. 마리오 보타, 이타미 준의 바다, 안도 타다오같은 다큐영화 후기도 잘 쓰셨을 것 같아요.
버나뎃이 올해 제 최애 영화였지요. :D ㅎㅎ
으아아아.... 어렸을때 공부했던 저(눔의?) 건축가들! 숙제받는 느낌이에요. ㅋㅋㅋㅋㅋ
(*최근엔 밀덕시리즈 도장깨기 하고 있었는데...큽)
축 쳐지는 로맨스물 안좋아해서 고민중이었다가, 테리어님 나눔덕에 전공과 관련있을테니 그래도 함 보러 가자! 맘먹었어요.
생각보다 재밌어서 놓쳤으면 큰일날뻔 했네요 ^^; 감사드려요!!
1회차 볼 때 졸았던터라 안 그래도 배경지식 좀 쌓고서
2회차 보러 가려고 했는데 도움 많이 되겠네요ㅠ 감사합니다!
전 갑자기 넘 놀래서 대사를 못들었다는;;;
아무튼 알겠습니다! 나중에 보러갔을 때 주의깊게 들어볼게요
나중에 vod 나오면 한번 더 보긴 할텐데... 오래걸릴듯 하여ㅎㅎㅎ
ㅎㅎㅎㅎ 익무생활 중에 제 전공이 도움되는 날이 올줄이야 :D
서울의 강북 구도심을 생각하면서 보시면 더 와닿으실 거에요. :D
추천 누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ㅎㅎㅎ 부디 재미나게 읽으시길!
(영화보기전에 리뷰 절대 안읽거든요 ㅎㅎ 이해해주세요)
영화보다 더 각 잡고 읽어야할 심도있는 리뷰네요
다시 정독하겠습니다 👍
꼭 전공이 아니어도 관심갖고있으면 좋은 분야에요 ^^
특히 여행다닐때! ㅎㅎ (요즘은 못가지만...ㅜㅜ)
궁전(역사적 전통건축)이란 유물은 현대를 살아가는데 있어 그저... 근간을 이루는 기억의 한조각으로만 남게되는 존재죠.
결국은 물로 돌아가야하는... 특히나 과거 영광의 시대에 집착하면 생명을 연장하기 어려운 존재기도 하구요.
동시에 미래를 잘 살아가려면 그런 전통들을 잘 딛고 일어설 수 밖에 없다는걸 표현하는거 같았어요 ^^ (요즘보면 관광지가 되려 도시를 먹여살리기도 하는ㅎ)
안그래도 베를린과 관련된 점이 궁금했는데 너무 감사해요!!
전공분야 짬밥을 활용해서 좀더 검색하다보니 ㅎㅎㅎ 즐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도움이 됐다니 뿌듯합니다 ㅎㅎㅎㅎ
언젠가 다시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오겠죠...ㅠㅠ
오! 댓글까지 ㅎㅎㅎ 재미나게 있으셨길 바래요 ^^
베를린 만큼이나 서울 도시계획의 역사도 참 서글프답니다.
(습지였던 잠실 석촌호수엔 메기가 살지도? ㅋ)
물,의 이미지와 연결되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상세한 리뷰 감사합니다!
서울도 만만치않게 아픈역사가 많은곳이니 같이 떠올려보심 좋을듯합니다.
재미나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부디 도움이 되셨길... ㅎㅎㅎ
앗... 왠지 2탄이 끝이 아닐까 싶다는...
기차의 쓰임새가 꽤 재밌어보이긴 한데... 요건 vod가 나와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듯 하네요. ㅎㅎ
기차 진행방향을 씬마다 다르게 잡았다던가... 플랫폼에서 따라잡는다거나... 두기차가 크로스한다던가... 소음으로 통화내용을 막는다던가... 기차역으로 가는길에 마주친다던가 등등...
뭔가 사이사이에 기차가 끊임없이 나오더라구요. ^^ ㅎㅎㅎ
글을 올렸을 때 영화를 보지않아서 꾹 참고있다가 오늘에서야 영화를 보고나서 읽게되네요.
프란츠 로고스키는 <인 디 아일>에서도 독일 통일 이후의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나왔는데 <운디네>에서도 비슷한 포지션으로 나오네요. 현 독일을 상징하는 배우군요.😂
전 처음본 배우라 호아킨 피닉스 진짜 많이 닮았구나!라고 내내 신기해하면서 봤어요. ^^;
심오하네요~
저도 건축사 강의 들었을 때 필기했던 FFF가 영화에 나와서 신기해했던 기억이 나네요ㅎㅎㅎ
로맨스물이라기보다는 근현대 개발사에 대한 애환이 담긴 것 같다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독일 시민들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이야기들을 나눴을지 새삼 궁금해지네요~
건축이나 근현대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더 재밌게 봤을듯 합니다. ㅎㅎㅎ
저도 독일반응이 궁금해지더라구요... :)
저도 감사합니다 ^^
도움 되었다니 뿌듯합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