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담보 - 몇 번을 울었는지 헤아릴 수 없는
가족애는 핏줄이 아닌 삶으로 형성된다
영화 중반도 안 간 시점에서 성동일이 부랑자한테서 꼬맹이를 구하는 장면부터 눈물샘이 터지기 시작. 당시 속으로 눈물이 너무 일찍 나오는데 싶었는데, 중간중간 울리는 장면들이 많아 말 그대로 몇 번이나 울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음.
다순히 신파라고 하기엔 밑바탕이 되는 설정들이 꼼꼼하고, 배우의 캐스팅과 연기가 최적화임. 특히 아역배우하고 성동일의 연기 앙상블은 최고.
설정과 관련해선, 우선 성동일이 꼬맹이를 돈 갚으라는 식으로 하루 미만으로 데려가는데, 이는 지금 이 시대에 그랬으면 사정 봐줄 거 없이 미성년 납치로 감방행임. 그래서 이 설정에 개연성을 주기 위해 여러 설정들을 덧붙임. 가령 같은 동료인 김희원이 선 넘은 거 아니냐고 계속 핀잔을 주고, 갚을돈이 소액이니까 쉽게 갚을 수 있다고 얘기하고, 또 돈 회수하는데 잘 못한다고 고용주한테 오히려 월급을 떼이는 상황이어서 우발적으로 그렇게 한 거다 등으로 최대한 메꾸기를 함.
결정적인 건 20여년 전 90년대로 그나마 그럴 수 있는 시기로 설정을 함. (서태지 등장 등을 보면 향수 유도도 있지만) 친모가 추방된 이후 오래 못 만난 것도 90년대라는 설정이 뒷받침을 함. 당시 한중수교를 한지 얼마 안된 때이자 중국이 개방을 이제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
또한 극 설정에서 현실적이면서 대조되는 요소들이 몇몇 갖춰져 있음.
일단 제목 담보만 해도 이해타산적이고 경제적이고 감성하고는 동떨어진 이 단어를 핏줄 아닌 불법체류자 자식을 친딸처럼 20년 이상을 기른 부성애가 담긴 호칭으로 이끌어냄.
후반 친아버지의 등장도 이런 대조적 관점으로 구축이 됨. 핏줄이지만 무책임하게 처자식을 버린, 그런데 이후 양꼬치집이 성공하고 귀화까지 해 화목한 과정에 좋은 아파트에서 사는 친아버지. 반면에 사채업자 출신에 변변찮은 배달업을 하고 있지만 핏줄이 아닌 아이를 친딸로 양육한 주인공. 이 구도에서 여주인공은 친부와의 만남 이후 통화로 느닷없이 그동안 계속 아저씨라 지칭하던 성동일에게 아빠라고 호칭하는 장면에서 그 의미성과 현실성이 결부되며 눈물이 나게 만듬.
신파라고 치부하엔 이렇게 설정들이 ‘핏줄이 아니지만 가족애’라는 주제에 맞춰 현실적인 반영들로 잘 구축되어 있음.
다만, 그럼에도 아빠 호칭 장면 직후 사고로 인한 막판 십년 실종 설정은 다소 무리수로 느껴져 몰입감이 다소 떨어짐. 사실 그 십년이란 게 어머니를 찾는 것이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성동일이었네로 반전식으로 깔아둔 설정이긴 한데, 이 부분은 십년이라는 구체적인 긴 시간 보단 ‘오랜 세월’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뭉뚱그리는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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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후반넘어가면서 반도 마지막 부분 20분간의 억지 신파 같이 끄는건 오히려 치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