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반교: 디텐션' 초간단 리뷰
1. '반교:디텐션'에 대해 최소한의 정보는 있었지만 정작 영화를 보고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니, 이놈들은 이런 소재를 가지고 게임까지 만들었단 말이야?". 우리나라로 따지면 1987년 6월 항쟁이 게임으로 나온거나 다름없는 느낌이었다. 워낙 놀라워서 게임에 대해서도 검색해보니 영화와 큰 차이가 없었다(정작 영화에 게임처럼 연출된 부분이 일부 보였다). 이런 비범함에 놀라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허우샤오시엔의 나라인가". 대만영화에 큰 관심이 없었고 특히 허우샤오시엔과 에드워드양 등 대만 대표 시네아스트와는 담을 쌓고 살았기 때문에 당연히 대만 근현대사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 '반교:디텐션'은 장르영화의 탈을 뒤집어 쓴만큼 가볍게 즐기면 될 일이지만 어떤 욕심이 생겨서 나는 이 시대의 기원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2. 영화의 배경은 1962년이다. 이 시대를 이해하려면 약 16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1947년 있었던 '2.28 사건'은 대만 현대사에서 가장 끔찍한 학살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5.18광주항쟁에 4.3사건, 노근리 양민학살을 섞은 것 같은 사건이다. 정부에 의해 무자비하게 자행된 사건으로 현재까지도 구체적인 사망자 수조차 파악이 되지 않은 광범위한 사건이다. 2.28 사건 이후 외성인과 본성인의 갈등은 더욱 격해졌고 약 2년뒤인 1949년 대만에는 계엄령이 선포된다. 이 계엄령은 1987년까지 이어진다. 계엄령 기간 중 대만 국민들은 2.28 사건에 대한 언급조차 할 수 없었다. 사건을 역사 속에 묻어버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일부 지식인들은 숨어서 이를 연구하고 공부했을 것이다. '2.28 사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를 보면 된다.
3. 그렇다면 16년전 일어난 사건과 '반교:디텐션'의 배경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1962년은 당연히 계엄령의 한 가운데 있는 시기다. 영화에서처럼 군인이 학교에 막 쳐들어오고 선생님을 체포해 무차별로 죽일 수 있는 시대다. 그리고 1962년의 고등학생들이 영화의 주인공인 것도 중요한 의미다. 주요 등장인물인 팡루이신(왕정)과 웨이중팅(증경화)은 대략 1945~1947년 사이에 태어났다. 이는 일제치하에서 벗어난 다음부터 '2.28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해다. 그나마 편한할 수도 있었지만 중국 내륙에서 불거진 국공내전의 물자조달로 경제가 피폐해진 시기였다. 대만의 역사에서 이들은 가장 어렵고 고통스런 시기를 견딘 세대들이다. 대만 근현대사의 가장 큰 트라우마를 드러내기에는 적절한 세대들이다. 그렇다면 '반교:디텐션'의 공포는 대만 역사의 트라우마로 향한다. 이들은 1962년 현재의 트라우마에 쫓기는 것이 아니라 1947년 이후 현재(1962년)까지, 다시 말해 태어나서 한평생 자신들을 괴롭히던 트라우마와 싸우는 것이다.
4. '반교:디텐션'은 트라우마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영화의 주요 화두는 웨이중팅이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에 있다. 고통스런 역사가 묻히지 않고 후세에 기억되게 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실제로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된 이후 '2.28 사건'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아마도 노년이 된 웨이중팅 역시 그 연구에 참여했을 것이다. 정작 마지막 장면에서 웨이중팅이 전하는 편지에는 다소 허무한 내용이 담겨져 있지만 그 편지는 한 시대를 기억하는 시발점이 된다. 이 마지막 장면은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된 뒤로부터 30여년이 지난 '현재'다. 역사의 흔적인 추이화고등학교는 매각을 앞두고 있고 이제 대만에는 '2.28사건'과 그 이후 대만의 정치사를 기억할 세대가 많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 시대에서 전해지는 편지는 웨이중팅이 다음 세대인 관객에게 "그 시절을 기억해달라"며 전하는 메시지일 수 있다. 결국 이 영화와 원작이 되는 게임 모두 현재의 세대들에게 전하는 역사의 한자락이다(밀레니얼 세대에게 메시지를 전하기에는 게임만한 것이 없다).
5. 앞서 언급한대로 우리의 근현대사도 대만 못지 않게(혹은 그보다 더) 처참하다. 기억해야 할 아픈 사건이 많고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할 역사도 많다. 그것에 대한 방법론적 고민을 이 콘텐츠(영화+게임)는 던지고 있다. 영화는 극장에서 관객이 체험하도록 유도하지만 여기에는 이야기와 연출에 수동적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한계가 따른다. 반면 게임은 능동적으로 사건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스토리를 쫓아가야 하는 호러게임은 더욱 그렇다. 이 콘텐츠는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택했다(물론 게임이 재미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역사에 대해 지나치게 무거운 태도를 취할 때가 있다. 사건의 당사자들이 생존하고 있고 그들이 겪은 아픔에 대한 공감능력이 높아서 그럴 수 있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을 콘텐츠로 가공하는데 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런 우리나라 정서에 '반교:디텐션'은 신선한 충격이 될 수 있다. 역사에 공감하는 태도만 유지할 수 있다면 조금은 과감해져도 좋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다음 세대에 대해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 중 하나는 역사를 효과적이고 정확하게 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뿐 아니라 소설, 만화, 게임, 음악 등 여러 매체를 활용한 아이디어를 강구해야 한다.
6. 결론: '공포영화'로써 매력을 따지자면 '별로 안 무서운 영화'지만 '역사적 사건을 후세에 어떻게 전하는가'로 생각해보면 대단히 효율적이고 잘 만든 콘텐츠다. 이것은 우리나라 대중문화도 충분히 배워야 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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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교 영향 받아서 위안부 소재 게임 만들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내러티브가 게임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워낙 탄탄하게 잘 만든 게임 원작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