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좀비'가 좀비처럼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
나는 좀비영화를 좋아한다. 내가 처음 공포영화의 매력에 빠졌을 때 본 영화는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 영화를 '내가 본 좀비영화 중 최고'라고 말한다. 조지 로메로와 스튜어트 고든, 루치오 풀치의 좀비영화를 챙겨보던 시절만 해도 이 장르는 공포영화 중에서도 마이너 장르에 속했다. 메인프레임 공포영화야 웬 살인마가 나타나 미끈쭉쭉 잘 생긴 10, 20대 선남선녀를 썰어버리는 영화가 대세였지, 썩어 문드러진 시체가 어그적 어그적 걸어다니며 사람 뜯어먹는 영화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대체 사람들이 언제부터 좀비영화를 좋아하게 됐을까?"를 떠올려보면 대략 좀비가 뛰어다니기 시작한 때부터인 것 같다. 잭 스나이더의 '새벽의 저주'나 대니 보일의 '28일후'는 맹수처럼 격렬하게 뛰어다니는 좀비와 아포칼립스적 세계를 배경으로 이전과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현대 좀비영화들은 '사람 뜯어먹는 시체의 공포'가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세상이 끝장날 수 있다는 공포에 기인하고 있다. 좀비에 대한 정서가 변하자 좀비는 당당히 메인프레임에 입성했다.
헐리우드를 휩쓴 메인프레임 좀비들은 한국에도 당당히 입성했다. 공식적으로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는 1981년 영화 '괴시'를 언급하지만 좀비로 당당하게 천만관객 찍은 '부산행'이 한국 대표 좀비영화가 됐다. '부산행' 이전에도 우리에게는 좀비영화가 종종 있었다. KBS드라마 '전설의 고향'에 등장한 유명 에피소드인 '내 다리 내놔'도 엄밀히 말하면 좀비고 '무서운 이야기'나 '인류멸망보고서', '어느날 갑자기' 등 옴니버스 공포영화에도 좀비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2010년대 들어 극장용 장편영화로 제작된 첫 좀비영화는 2014년 영화 '좀비스쿨'이다(이전에 2006년에 만들어진 '어느날 갑자기:죽음의 숲'도 장편 좀비영화기는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라는 브랜드에 기대고 있다. '좀비스쿨'은 어떤 브랜드에 기대지 않고 만들어진 첫 좀비영화다). '좀비스쿨'은 외딴 폐교에 불량학생들 모이고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다는 뻔한 내용이다. 백윤식 배우의 둘째 아들 백서빈과 '닥터', '유나의 거리'의 하은설이 주연이다. 대사가 대단히 후지고 이야기가 뻔하지만 발랄한 재미는 있다. 이후 2016년 '부산행'이 잭팟을 터트렸고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창궐', '#살아있다', '반도' 등이 등장했다.
좀비는 본래 부두교 주술에서 비롯된 용어로 되살아난 시체를 의미한다. 이는 우리 문화권과는 무관한 공포라는 의미다. 앞서 언급한대로 '전설의 고향' 에피소드 중 '내 다리 내놔'를 좀비로 분류하곤 하는데 이는 '시체가 나를 쫓아온다'는 의미일 뿐 '시체가 나를 잡아먹으려 한다'와는 거리가 있다(좀비가 진짜 무서운 건 사람을 잡아먹어 좀비로 만든다는데 있다). 우리 문화에서는 영혼이 나타나 저주를 퍼붓는다거나 무시무시한 얼굴로 괴롭히는 게 전부다. 좀비와 우리 문화의 거리감은 귀신과 좀비만큼 멀리 떨어져있다. 이토록 먼 괴리감이 본격적으로 가까워진 것은 사실상 2000년대 이후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때는 헐리우드에서 '최초의 뛰는 좀비'인 '새벽의 저주'(2004)와 '28일후'(2003)가 흥행한 이후다. 서양문화에서는 걷는 좀비부터 시작해 오랫동안 좀비의 인프라를 쌓아오다가 메인프레임 좀비영화가 등장했다. 우리에게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나 '리애니메이터', '데드얼라이브'와 같은 고전 좀비영화의 인프라가 없다.
이처럼 기반이 없는 것은 아시아권도 마찬가지다. 일본이나 태국, 홍콩, 대만 등도 좀비와는 거리가 먼 문화다. 이런 아시아 문화에서 좀비들의 특징은 좀비가 도구화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반도'가 개봉했을 때 가장 크게 쏟아진 불만들은 "좀비가 안 보인다"는 점이다. 애시당초 이 영화는 '부산행'의 속편이었지, '부산행'에 이은 좀비영화는 아니었다. 좀비가 안 나와도 상관은 없었지만 어설프게 나와서 더 불만이 쏟아졌다. 서양 좀비영화의 경우 좀비로 뭘 하거나 좀비와 인간을 대립시켜 뭔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인간의 갈등을 보여주기 위해 갈등없는 좀비를 대립시킨다. '시체들의 새벽'이나 '죽음의 날' 역시 자본과 계급으로 갈등하는 인간에 대비시켜 평화롭고 갈등없이 사람을 뜯어먹는 좀비를 보여준다. 이는 '리애니메이터'나 '데드 얼라이브'도 마찬가지다. 좀비를 활용해 기괴함을 극대화시키거나 좀비로 웃겨버리는 식이다. 좀비영화에서 좀비가 존재감이 있어야 한다는 식은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극적효과를 극대화시킬 때 좀비를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시체들의 새벽'을 리메이크한 '새벽의 저주'나 '28일후'도 사실은 이 같은 면에서 다소 미흡하긴 하지만 좀비로 인한 아포칼립스 분위기를 극대화시켜 좀비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좀비영화가 메인프레임에 올라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영화에서는 좀비가 대뜸 아무런 계기도 없이 메인프레임에 올라섰다. '부산행'이 천만관객을 동원했지만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 하다. 사실은 '부산행' 역시 좀비를 도구로 쓰는 영화다. '부산행'은 한 열차에 올라탄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이 좀비에 대응해 폐쇄공간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다. 그 안에서 인간들의 갈등을 보여주고 탐욕스런 인간도 보여주지만 이는 좀비와 대립을 이루진 않는다. 차라리 넷플릭스 '킹덤'이라면 유교적인 조선시대에 이국적 문화인 좀비가 등장해 독특한 시너지 효과를 내는 재미가 있다. 이는 좀비영화의 정체성을 가장 잘 이해한 이야기다. 연상호 감독의 '서울역' 역시 인간성의 밑바닥을 보여주기 위해 좀비를 활용한다. 좀비를 만족스럽게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좀비보다 더 나쁜 인간들이 등장해 새삼 평화로운 좀비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살아있다'도 좀비를 활용한 몇몇 장치가 있긴 했지만 큰 메시지에 좀비가 기여했다고 보긴 어렵다(오히려 영화의 메시지는 코로나19 시대에 근간하고 있다). '반도'는...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좀비는 여러모로 활용가치가 많은 캐릭터다. 무리 지어 다닐 때 가장 무서운 놈들이며 오직 한 가지 "보이면 먹는다"는 생각만 한다('아이엠어히어로'나 '#살아있다'에서는 좀비가 인간일 때 버릇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 있는데 좀비 정체성에 어긋난다). 살아있는 인간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최소한 동족끼리 죽이진 않는다. 조지 로메로는 '인간의 탐욕을 비추는 거울'로 좀비를 활용했다. 스튜어트 고든과 브라이언 유즈나는 "어차피 죽은 시체 아니냐"며 좀비로 온갖 장난질을 했다. 그리고 심지어 피터 잭슨은 좀비로 웃겼다(에드가 라이트의 '새벽의 황당한 저주'도 이루지 못한 업적이다). 서양 좀비영화의 경우 성공한 메인프레임 영화 외에 온갖 잡스런 마이너 영화들이 많다. 그들은 "우린 어차피 마이너야"라며 좀비로 할 수 있는 잡스럽고 엽기적인 시도들을 한다. 그들 중 일부는 부천영화제를 포함한 전 세계 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하고 다른 일부는 "이건 메모리카드 낭비"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들이 어느 위치로 향하건 공통점은 좀비로 별 짓 다 했다는 점이다.
매니아들 사이에서 호평받는 좀비영화인 '데드 스노우'는 좀비로 별 짓 다 한 대표적인 영화다. 영화를 만든 토미 위르콜라는 마이너에서 시작해 헐리우드로 향해서 '월요일이 사라졌다', '헨젤과 그레텔: 마녀사냥꾼' 등 독특한 영화를 만들었다. 한국의 좀비영화들은 상업영화나 독립영화 가릴 것 없이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최근 부천영화제에서 '좀비크러쉬: 헤이리'를 보고 바로 다음 회차에 '냠냠'을 보면서 우리 좀비영화의 문제점이 확연히 보였다. 얼굴에 대충 시체분장하고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좀비에 그치지 않고 좀 더 또라이같은 좀비가 필요하다. 한국 좀비영화의 지향점은 '월드워Z'가 아니라 '데드 스노우'가 돼야 한다. '좀비영화에서도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좀비영화는 좀비를 가지고 사람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비를 충분히 가지고 노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우리에겐 아직 그게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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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좋아하는 좀비영화입니다.
설정이 무척이나 골 때리죠.
주인공 일행이 내려친 둔기에 좀비군단의 눌어버린 볼살이나 팔이 뚝떨어져 나가는 하드코어한 수위의 r등급 좀비물도 국내에서 보고싶은데 아무래도 정서상으론(?) 그렇게까지 막나가는건 만들기 어려울듯싶더군요.. 현대의 여러 서브컬쳐나 여러 문화권 베이스와 결합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좀비물도 보고싶고
서양의 좀비vs동양의 강시도 뭐 이런거도 ㅎㅎ..
말씀대로 독립영화쪽에서 저예산내에서 아이디어를 꽉 채워서 좀비물과(or저예산의 b급 크리쳐물 등) 다양한 장르와 스토리로 결합하는 영화적인 실험들이 더 필요할것같아요 한번은 정신줄 놓고 앞뒤안가리면서 폭주하는 장르물만드는 코리안-피터잭슨,스튜어트 고든이 등장하면 좋겠네요
저는 좀비의 로맨스를 다룬 웜바디스를 좋아해요~
좀비를 도구로 쓰지 않는 영화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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