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스포) 정순을 보고
정지혜 감독이 연출한 <정순>은 중년의 여성이 연인에게 배신당한 후 달라진 주변 환경에 대처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곧 결혼할 딸 유진을 두고 공장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 정순(김금순)은 너무나 평화로운 일상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입으로 들어온 영수(조현우)와 함께 회식을 하던 중 둘은 눈이 맞아 영수가 지내고 있는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이 둘은 공장 사람들의 눈을 피해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합니다.
정순과 회사직원들의 유일한 스트레스는 작업반장 도윤입니다. 나이도 한참 어린 도윤은 직원들을 함부로 대하고 심지어 새로운 들어온 영수도 무시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건이 발생을 합니다. 숙맥으로 자신을 대하는 도윤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어떤 영상을 보여주게 되는데 그 영상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정순이었고 도윤은 이 영상을 회사 사람뿐만 아니라 커뮤니티에 올려 그 지역사람들에게 정순의 모습이 그대로 노출됩니다.
<정순>은 최근 몇 년 동안 문제가 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를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사실 이 소재의 피해자는 대부분 젊은 여성인데 이 작품에선 중년의 여성을 피해자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른 작품과는 달리 피해자 보단 주변에서 이를 더 문제시하고 분노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결혼을 앞둔 딸이 그러죠. 갈등은 여기에서도 발생합니다. 그리고 정순은 관객과 딸에게 일갈을 하기도 합니다.
<정순>은 쉬운 용서는 쉽게 잊힌다는 것 또한 설파하고 있습니다. 정순은 모든 것을 용서합니다. 하지만 딸의 말처럼 그들은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정순 앞에서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정순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분노와 몸짓을 그들에게 보여줍니다. 이 모습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라는 생각이 드니 한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순 역의 김금순 배우는 얼마 전에 개봉했던 <울산의 별>에서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이 작품에서도 절제하는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다른 작품에선 작은 역할로 많이 접했는데 한 작품을 온전히 이끌고 나갈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정순>을 통해 다시 한 번 알게 되어 반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