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짐승들] 한줄 카피 + 간단 리뷰
돈가방을 가지려는 자, 그 핏값을 견뎌라
이 작품은 참 특이하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지만 정작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물건, 바로 돈가방이다. 중만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태영, 미란, 연희 등등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또 어우러지는데, 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관객들이 집중하게 되는 포인트는 돈가방의 행방이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앞서 나온 인물이 재등장해도 우리의 관심은 그저 '그래서 돈가방이 왜 거기있는건데?', '그래서 돈가방이 어디로 가는건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스토리 자체의 매력은 감독의 역량보다는 훌륭한 원작 작가, 소네 케이스케의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짐승들'의 스토리는 마치 잡히는대로 놓는 퍼즐맞추기 같은 작품이다. 맞추기 쉬운 가장자리 조각부터 시작해서 점점 안으로 파고드는게 아니라, 중구난방으로 두서없이 조각들을 놓다보니 어느샌가 윤곽이 나오고 큰 그림이 완성되는. 가지런히 정렬해놓고 보면 시시하지만 그것을 약간의 변주와 뒤죽박죽을 통해 매력있게 만드는, 독특한 느낌의 이야기다. 이 스토리를 담은 '소설'은 정말 재미있을 것이다(아직 원작 도서를 정독하지 못했다ㅠ).
그러나 그 매력있는 텍스트를 어떻게 매력있는 영상으로 옮길지는 김용훈 감독의 역량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 감독, 범상치 않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단순히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인데도 생소한 앵글, 범상치 않은 배경, 심상치 않은 음악을 통해 말 그대로 '느낌있는' 장면으로 만들었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정말 꽉 찼다. 이렇게 많은 인물들과 많은 사건들을 빡빡하게 다루다보면 관객들이 숨을 돌릴만한 느슨한 컷을 중간중간 넣을 법도 한데, 어느 한 장면 허투루 넘어가지 않고 관객의 눈과 귀와 심장을 끌어당긴다. 각 챕터의 배경화면은 또 어떠한가. 관객의 눈을 끌어당기는 그 몽환적인 이미지는 영화의 엔딩에 도달하는 순간 아!, 하고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은 또 어떠한가. 감독은 그 많은 인물과 사건들을 놔두고 오프닝과 엔딩컷을 영화의 진짜 주인공인 돈가방으로 장식했다. 그것도 화면 한가득 꽉 채워서. 돈가방이 어둠으로 들어가는 오프닝과 빛으로 나가는 엔딩으로 빚어낸 수미상관의 아름다움이란.
이 영화가 정말 장편 '데뷔작'인지 의심된다. 간만에 차기작이 기대되는 감독, 흥행을 응원하고 싶은 작품을 만났는데 하필 시국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미지, 들려주는 사운드는 마틴 스콜세지 옹의 말마따나 작은 화면으로 보면 안되는데 말이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 재개봉이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이다.
그 핏값을 견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