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2
  • 쓰기
  • 검색

[배우 리뷰] 2019년 박소담, 보편적 특별함을 연기하다

수위아저씨
5237 2 2

IMG_9920.JPG

 

2019년 최고의 한국 여자배우를 꼽으면서 '박소담'을 언급했다면 어떤 사람들은 "덕심이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부정할 생각은 없다. 짧은 공백을 깨고 돌아온 이 배우를 만났던 2019년은 딱 맞는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선 '귀여운 여인'처럼 유난히 반짝거렸기 때문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박소담의 필모그라피는 주·조연, 특별출연, 단역 가리지 않고 이 배우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흔적과 같다. 몇 개의 대표작이 있고 몇 개의 의미있는 작품도 있다. 몇 개의 찰떡같은 작품도 있고 몇 개의 새로운 모습도 있다. 배우로서 지내온 치열한 시간만큼 그녀의 필모그라피에는 그 흔적들이 돋보인다. 내가 '언더독'과 '기생충', '후쿠오카'를 통해 만났던 '2019년의 박소담'은 대표작이자 의미있는 작품, 찰떡같으면서 새로운 모습이 모두 혼재돼 있었다. 이 배우가 스스로 2019년을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다. 4년 된 팬 입장에서 바라본 '박소담의 2019년'은 그녀가 가야 할 긴 연기인생에서 아주 큰 변곡점이 됐다. 박소담에게 2019년은 유난히 특별한 해다. 

 

박소담의 배우인생은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렵다. 앞서 말한대로 주연과 조연, 단역을 모두 거치며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 중 주·조연작을 추리더라도 이렇다 할 특징을 잡아내기 어렵다. 그저 찾아낼 수 있는 특징은 '연기에 목이 마른 배우'였다는 점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가볍고 무거움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임했다. 누군가 "너는 이 배우를 어쩌다 좋아하게 됐나"라는 질문을 던지면 나는 "겁이 없어서"라고 대답했다. 배역을 맡고 연기하는데 두려움이 없다는 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검은 사제들'의 '영신'에게서 받은 느낌이 가장 컸지만 '사도'나 '설행-눈길을 걷다', '뷰티풀 마인드', '베테랑' 등 섣불리 공통점을 찾기 어렵고 편안하거나 부담없이 할 작품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도 한몫했다(물론 '처음이라서' 같은 작품은 썩 부담이 적어보였다). 여기에 연기 부담이 클 법한 연극무대도 과감하게 도전했다. '앙리 할아버지와 나'는 부담이 적어보였지만 '클로저'나 '렛미인'은 분명 난해하고 어려운 역할이었을 것이다(거리의 여자부터 뱀파이어까지). 연기의 공통된 방향을 찾기 어렵고 난해하거나 새로운 작품(역할)을 맡는데 주저함이 없다는 것은 분명 큰 메리트였다. 

 

가열차게 달리던 박소담은 2016년 즈음부터 지치기 시작했다. 드라마 '뷰티풀마인드'가 실패했고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도 썩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국가대표2'의 히든카드로 출연했고 '대장 김창수'에 특별출연했다. 이 시기에 박소담은 '많은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좋은 작품에 출연했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사실상 2016년 이후에는 잠깐의 휴식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2018년에는 '군산:거위를 노래하다'에서 작은 역할을 맡았고 애니메이션 '언더독'에서는 생애 첫 목소리연기를 했다('언더독'은 그 이전에 작업했다). 2015년 영화 '검은 사제들'은 그녀의 연기인생에 분명한 터닝포인트였다. 그러나 그 약빨은 빠르게 식어갔고 이 배우에게는 두 번째 터닝포인트가 필요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그녀의 연기인생에 두 번째 터닝포인트였다. 

 

"기정 역할에 왜 박소담을 캐스팅했나?"라는 물음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답변은 박소담의 팬 입장에서 썩 유쾌하진 않다. 봉 감독의 답변은 "남매로 출연하는 최우식과 닮아서"라는 것이었다. "배우에겐 외모도 능력이다"라는 전제가 붙는다면 긍정적인 얘기가 되겠지만 "봉 감독이 박소담의 연기역량을 보고 캐스팅한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는 답변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봉 감독도 만족한 모양이니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기생충'의 기정은 입체적이되 보편적이다. 기택네 가족의 무기력한 남자들에 비하면 엄마 충숙(장혜진)의 영향을 받아 강한 여자의 모습이 있다. 다만 그와 동시에 가난한 집안의 특성 때문에 무기력한 존재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 세계 안에서의 강함과 외부 세계에서의 무력함이 자연스럽게 공전해야 한다. 기정은 외부 세계에서는 이미 꺾일대로 꺽인 인물이다. 기정의 거친 언행은 이 인물이 자기 세계에서는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와 같다. 이런 모습은 거친 사회생활을 하면서 무너지지 않으려는 우리 각자의 모습과 닮아있다. 

 

반면 '후쿠오카'의 '소담'은 특별하고 이상한 인물이다. 영화에 함께 출연한 캐릭터 '제문'은 '소담'에게 "얘 또라이네"라는 대사를 연발한다. '소담'의 이상한 언행,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모습 때문에 나온 대사다. 그렇다고 '소담'이 '통통 튀는 신세대'를 연기하는 것은 아니다. '소담'은 '제문'의 대사처럼 그냥 '이상한 애'다. '후쿠오카'는 '군산:거위를 노래하다'와 세계관을 공유한다. 두 세계가 어떻게 연결됐는지 발견하기 위해서는 꽤 깊게 영화를 이해해야 한다. 그 작업은 잠시 접어두겠다. '군산'에서 박소담은 주은을 연기했다. 군산의 한 민박집에서 아빠 이사장(정진영)과 함께 사는 주은은 약간의 자폐성향이 있다. 어릴 적 엄마가 선물해준 일본인형을 품에 안고 알 수 없는 일본어 노래를 부른다. '후쿠오카'에서 '소담'은 주은과 도플갱어처럼 등장한다(이것이 명확하게 정의내려져 있진 않다). 하나인듯 다르고 둘인듯 셋, 혹은 그 이상인 이 존재는 실체가 없는 기이함처럼 이방인의 도시를 거닐고 있다. 이는 이방인이자 경계인인 장률 감독의 정체성과 통한다. 

 

여기서 '소담'의 '또라이 같은 면'은 기정과 맞물려 매력적이다. 기정이 입체적이되 보편적인 인물이었다면 '소담'은 특별하고 예측할 수 없다. 이런 지점은 '여전히 보여줄 것이 많은' 박소담의 정체성(혹은 바램)과도 통한다. '군산'의 주은과 멍함을 공유하면서도 주은이 갖지 못한 활기와 적극성을 가지고 있다. 어수룩한 일반인들에게 휘둘렸던 주은과 어수룩한 일반인들을 휘두르고 다니는 '소담'은 분명 같지만 다르다. 주은과 '소담'은 쪼개진 두 개의 자아처럼 보인다. 그리고 장률의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두 자아 사이의 경계는 모호하다. '후쿠오카'와 '기생충'의 박소담은 너무 보편적이라 특별했거나(기정) 특별해서 더 특별한(소담) 역할을 연기했다. 이는 마치 딱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팬 입장에서야 그녀가 연기한 모든 캐릭터들이 소중하지만 이 새로운 시도들은 앞서 언급한대로 터닝포인트가 됐으며 앞으로 더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올해 박소담은 영화 '특송'과 드라마 '청춘기록'에 출연한다. 액션영화 하나에 청춘멜로 하나다. 수년전 연기열정이 불타오르던 박소담의 행보를 다시 보는 기분이라 반갑다. 다만 이번에는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좋은 작품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가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특송', '청춘기록'이 좋은 작품인지는 보면 알 것이다). 관객 입장에서 늘 믿는 이야기지만 '배우의 가치는 작품으로 결정된다'. '기생충'은 박소담의 가치를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한 작품이다. '기생충' 같은 작품이 매년 나올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기생충'은 좋은 작품의 여러 종류 중 하나다. 분명 다른 종류의 좋은 작품도 있을 것이다. 팬의 바램'으로, 나는 이 배우가 매번 좋은 작품에 나왔으면 좋겠다.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2

  • 픽팍
    픽팍
  • golgo
    golgo

댓글 2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profile image 1등
해외에서도 단숨에 주목받는 배우고 됐는데 앞으로 행보가 기대되네요.
11:30
20.01.2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HOT [범죄도시 4] 호불호 후기 모음 2 익스트림무비 익스트림무비 2일 전08:38 13739
HOT <오펜하이머>를 보고 1 도삐 도삐 20분 전13:01 107
HOT 야마다 나오코 감독 [너의 색] 장면 공개+코멘트 5 중복걸리려나 1시간 전12:08 282
HOT <데드풀과 울버린>의 쿠키 장면은 ‘너무 충격적’? 원... 3 카란 카란 1시간 전12:06 592
HOT 마블 슈퍼 히어로 중 가장 오랜 경력 배우 1 시작 시작 1시간 전11:48 551
HOT 숫자로 알아보는 극장판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 5 중복걸리려나 1시간 전11:23 220
HOT [불금호러] 환자를 골로 보내는 명의 - 닥터 기글 4 다크맨 다크맨 2시간 전10:37 383
HOT <엑스맨> 진 그레이 역 팜케 얀센, MCU 출연 가능성 암시 4 카란 카란 1시간 전11:22 825
HOT <에이리언: 로물루스> 출연자, 제노모프가 정말 무서웠다 4 카란 카란 3시간 전09:50 930
HOT 잘만들어진 수작급 B급병맛 음악영화"워크하드:듀이 콕... 2 방랑야인 방랑야인 2시간 전11:10 329
HOT 리들리 스캇 '글래디에이터 2' 베가스 테스트시사... 4 NeoSun NeoSun 4시간 전09:02 1092
HOT 레옹 영화 관람후 큰일날뻔 했네요. 8 RockFang RockFang 2시간 전11:21 855
HOT 넷플릭스 '시티헌터' 엔딩곡 오리지널 버전과 비교 1 golgo golgo 2시간 전11:05 281
HOT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일본 블루레이 7월 ... 4 golgo golgo 2시간 전10:51 368
HOT 잭 스나이더가 슬로우 모션을 남발하는 이유 10 시작 시작 3시간 전10:13 1309
HOT 스즈키 료헤이의 스펙트럼에 놀란 어느 일본인 8 중복걸리려나 3시간 전09:59 800
HOT 호주 아리 애스터 '유전' 재개봉 포스터 2 NeoSun NeoSun 3시간 전09:32 565
HOT 그라인드스톤 엔터 R등급 호러실사 '인어공주' 첫... 4 NeoSun NeoSun 4시간 전09:06 763
HOT ‘인사이드 아웃 2‘ 메인 포스터, 개봉일 확정 4 crazylove 5시간 전08:13 1694
HOT ‘반지의 제왕’ 4K 확장 리마스터 버전 6월 해외 재개봉 예정 4 NeoSun NeoSun 5시간 전07:51 985
1134131
normal
메카곰 8분 전13:13 74
1134130
image
중복걸리려나 9분 전13:12 59
1134129
image
golgo golgo 16분 전13:05 145
1134128
image
도삐 도삐 20분 전13:01 107
1134127
normal
토루크막토 38분 전12:43 460
1134126
image
golgo golgo 1시간 전12:16 295
1134125
image
중복걸리려나 1시간 전12:16 268
1134124
image
중복걸리려나 1시간 전12:08 282
1134123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1시간 전12:06 204
1134122
image
카란 카란 1시간 전12:06 592
1134121
image
시작 시작 1시간 전12:01 224
1134120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1:51 272
1134119
image
시작 시작 1시간 전11:48 551
1134118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1시간 전11:43 164
1134117
image
중복걸리려나 1시간 전11:23 220
1134116
image
카란 카란 1시간 전11:22 825
1134115
image
RockFang RockFang 2시간 전11:21 855
1134114
image
중복걸리려나 2시간 전11:21 172
1134113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1:15 423
1134112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2시간 전11:14 160
1134111
image
방랑야인 방랑야인 2시간 전11:10 329
1134110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2시간 전11:06 269
1134109
normal
golgo golgo 2시간 전11:05 281
1134108
image
golgo golgo 2시간 전10:51 368
1134107
file
중복걸리려나 2시간 전10:51 244
1134106
image
다크맨 다크맨 2시간 전10:37 383
1134105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0:26 300
1134104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0:21 316
1134103
image
시작 시작 3시간 전10:13 1309
1134102
normal
NeoSun NeoSun 3시간 전10:08 208
1134101
image
golgo golgo 3시간 전10:07 708
1134100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3시간 전10:06 270
1134099
normal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3시간 전10:01 367
1134098
image
중복걸리려나 3시간 전09:59 800
1134097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09:53 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