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영화제 - 어 히든 라이프] 간략후기
마카오영화제 둘째 날 첫번째 영화는 테렌스 맬릭 감독의 신작 <어 히든 라이프>였습니다.
올해 칸영화제와 토론토영화제에서 공개된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군대 징집을 거부한
오스트리아인 프란츠 예거슈테터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역사 드라마입니다.
역사 드라마라 한들 '영상시인'이라 불리는 테렌스 맬릭 고유의 작품 스타일을 여전히 반영하고 있습니다만,
다소 부담될 수 있는 2시간 50여분의 여정 끝에 도달하는 감동의 파장이 상당해 여운을 오랫동안 곱씹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된 오스트리아 군대는 징집되면 반드시 히틀러에 대한 충성을 맹세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인 프란츠 예거슈테터(아우구스트 딜)는 자신의 굳은 신념에 따라 군대 징집을 거부하고
나치에 의해 재차 징집된 후에도 히틀러에 대한 충성 맹세만은 한사코 거부합니다.
아내 파니(발레리 파흐너)는 그런 프란츠의 대쪽같은 의지를 묵묵히 응원하지만,
그런 프란츠의 행동으로 인해 외려 파니와 아이들까지 마을 사람들에 의해 핍박받게 됩니다.
언뜻 성경 같은 곳에서 본 것 같은 익숙한 구조의, 그러나 실존 인물에게 있었던 이 이야기를
테렌스 맬릭은 자신만의 연출 방식을 활용해 사색하고 번뇌하는 '구도자의 이야기'로 재해석합니다.
흔히 우리는 투쟁이라 하면 남들이 가만히 있을 때 나서서 무언가를 하는 이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어 히든 라이프>의 주인공인 프란츠는 반대로 무언가를 하지 않는 방식의 투쟁을 택합니다.
그러나 무언가를 함으로써 억압에 '순응'하는 다수에게 프란츠와 같이 무언가를 하지 않고 버티는 모습은
그럴싸한 투쟁이기보다는 불필요한 고집과 민폐로 공동체를 망치는 주범으로 읽히는 모양입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그는 '네가 이런다고 세상이 변할 것 같으냐'는 질문을 거듭 받습니다.
그러나 이런 질문에 프란츠는 '단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을 하지 않을 뿐'이라고 거듭 답할 뿐입니다.
테렌스 맬릭 감독은 특유의 내레이션 기법을 빌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지만
요동치는 내면을 부여잡고 필사적인 투쟁을 하고 있는 주인공의 번뇌 어린 내면을 끈질기게 탐구합니다.
테렌스 맬릭의 21세기 필모그래피를 열었던 <트리 오브 라이프>도 그렇고 그의 최근작 대부분은
실재와 관념을 넘나드는 대중없는 사색으로 관객과 평단 사이에서 호불호를 타기도 했습니다.
반면 <어 히든 라이프>는 그런 사색과 번뇌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비범한 선택을 감행하고
그로 인한 가혹한 결과에 직면해야 하는 한 인물의 여정을 따라가는 덕분에 감정이입이 비교적 쉬운 편입니다.
쉽지 않은 사색과 번뇌의 과정을 거친 끝에 결국 숭고한 존재로 거듭나는 인간과 마주하는
마지막에 이르면 이렇게 고귀한 감동을 이렇게 그저 앉아서 받아도 될 일인가 싶은 마음까지 듭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는 완전히 상반된 캐릭터를 연기했던 아우구스트 딜이 동요하지 않은 표정만큼이나
굳은 신념을 지닌 프란츠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연기하며, 아내 파니 역의 발레리 파흐너 또한 강인한 연기를 선보입니다.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영국 소설가 조지 엘리엇은 영화의 제목이 띤 의미를 상기시키며 여운을 더 깊게 남깁니다.
세상이 더 좋아지는 데 영향을 미치지만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행동들, 그저 보이지 않게 숨겨진 삶을
충실하게 살았으며 끝내는 찾는 이 없는 무덤에 뉘인 채 쉬게 된 그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그 격언을 따라 <어 히든 라이프>는 역사를 움직인 모든 조용한 영웅을 위한 영화로서 우리에게 비상한 감동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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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감동 저도 느껴보고 싶네요T_T 리뷰 잘 읽었습니다!
국내도 빨리 개봉 소식이 들려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