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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 간략후기

jimm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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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2_230147.jpg

 

부산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상과 올해의 배우상 등 4개 부문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는 등
유수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독립영화 <메기>를 프리미어 상영으로 개봉 전에 미리 보았습니다.
한 병원에서 벌어진 의문의 엑스레이에서 시작되는 믿음과 의심의 도미노를 독특한 터치로 그린 이 영화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드는 연출과 럭비공 같은 배우들의 연기로 신선한 재미를 주는 한편,
그런 낯선 요소들의 조합 혹은 연쇄작용을 보여주며 관객에게도 믿음과 의심에 대한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집니다.

 

옛날에는 수녀원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개인병원이 된 '마리아 사랑병원'에서 찍힌 엑스레이 사진 한 장은
이름 모를 누군가로 인해 까발려지며 병원을 술렁이게 하고, 간호사 윤영(이주영)은 문제의 엑스레이 사진 속
주인공이 자신과 남자친구 성원(구교환)일 거라고 믿지만 그 진실이 드러나는지 여부는 알 바가 아닙니다.
부원장 경진(문소리)도 여차저차하다 윤영을 사진 속 주인공으로 의심하게 되지만,
결국 진실이 드러나 의심이 진실로 굳어지는지 오해로 밝혀지는지 정리되는 것은 없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영화는 믿음과 불신의 이야기를 이들로부터 몇 가지 더 전개해 가지만, 마찬가지로 그 믿음과 불신이
어떤 특정한 진실로 인해 잘잘못이 따져지고 그리하여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정리되는지까지 이르지는 않습니다.
사실이 어떻든 사람과 사건과 세상을 우리가 믿는대로 판단하는 것은 바로 현실과 다름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만큼 인권에 대한 메시지가 깔려 있는 영화이지만 <메기>의 주제는 어렵지 않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얼마나 관대하게 혹은 가혹하게 대할 수 있는지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믿음'이겠기에,
영화는 이 믿음의 문제가 인간의 머리와 마음 속, 인간과 인간 사이를 어떻게 휘젓고 다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무척 자연스럽게 우리가 일상 곳곳에서 맞닥뜨리는 '인간에 대한 예의' 문제를 건드립니다.
조직의 일원으로서의 예의와 프라이버시 사이의 아찔한 경계에서 불거진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남사스러운 순간이 폭로되었을 때 잘못을 물어야 할 상대는 그 순간의 주인공들인지 그 순간을 몰래 찍은 인물인지,
애꿎은 의심을 불러오는 것은 일상을 의심의 눈초리로만 보내는 나인지 의심 살 만한 행동을 하는 상대방인지,
의심되는 행동이 결국 나의 앞에 보이지 않는다면 그 의심은 어디까지나 의심인 것으로 거둘 수 있는 것인지 등.
윤영과 성원, 경진 등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의심을 확신하거나 확신을 의심하는 식으로
각자 자신만의 '믿음의 벨트' 안에 존재하려 하지만 그 벨트가 점점 자신의 숨통을 조여온다는 건 차마 모를 겁니다.
그렇게 조여오는 숨통, 좁아지며 엉뚱한 데로 향하는 시야를 단지 자신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으로 이해하겠죠.

 

이미 발단이 되는 사건부터가 매우 신선하지만, 이후로도 영화는 뜻밖의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킵니다.
그 전개 양상은 기승전결이나 자초지종, 떡밥 회수 같은 상식적인 흐름과 거리가 있습니다.
옴니버스물이 아니고서야 대개는 하나로 귀결되는 이야기를 예상하고 또 익숙하게 여기는 관객 입장에서는
이처럼 엉뚱하게 튀고 또 순순히 한 곳으로 모아지지 않는 영화의 스토리텔링이 낯설고 불편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가설을 놓고도 그럴 수 있다며 믿는 인물들과 그 믿음을 따라
말이 안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믿음으로 관계와 세계를 쉽게 왜곡하는
인간상에 대한 매우 장난스럽고도 날카로운 비유로도 읽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자연재해를 예측하는 신통한 능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메기(천우희)는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며
기묘한 믿음에 휘둘리는 인물들을 관찰하고,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믿을 것인지 넌지시 물음을 던집니다.

 

<메기>의 엉뚱한 이야기는 일상에 밀착된 배우들의 탄력 있는 연기 덕에 더 호소력을 갖추었습니다.
이주영 배우는 당혹스런 상황들 속에서 때로 자신의 믿음에 이끌려 섣불리 감정을 토하기도 하지만
성격 참 희한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제 갈 길 가고 찾아볼 거 찾아보는,
보기 드문 뚝심을 지닌 젊은이 윤영의 모습을 실재할 것만 같은 현실적 캐릭터 묘사로 매력있게 그려냅니다.
한편 구교환 배우는 윤영의 백수 남자친구로서 줏대 없이 믿음에 나풀거리는 연약한 젊음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꿈의 제인> 때 보여준 몽환적인 마성과는 완전히 상반된 극도의 현실성이라 더 눈에 띄게 다가왔습니다.
꼰대와 기계적 프로페셔널이 결합된 사람 같았으나 윤영과의 교류로 좀 더 사람답게 변화해 가는
부원장 경진을 연기한 문소리 배우는 또 하나의 새롭고 유머러스한 캐릭터 변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해야 할 일은 더 깊게 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재빨리 빠져나오는 것"이라는
구절이 <메기>의 시작부부터 나오는데, 이것은 곧 영화의 태도이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도 통하는 듯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얻는 수많은 믿음들이 쌓여가며 점점 더 깊숙하게 만들어 가는 인식의 구덩이 속에서,
우리는 그 믿음에 몰두하려는 태도로 점점 우리의 시야를 가리는 것이 아닌지 고민해 보게 됩니다.
이따금 수면 위로 박차오르는 메기의 몸짓처럼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그것에 대해 끝까지 눈치 보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영화의 모습 또한, 이런 우리의 고민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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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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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프리미어 상영 놓쳐서 정식 개봉 기다리고 있는 작품이네요 ㅎㅎ 이미 보신 분들이 다 스토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고 하니 대체 어떨지 기대되네요
01:26
19.09.23.
jimmani 작성자
2작사
어떤 방향이든 이야기가 흘러가는 대로 두고 보는 것이 영화를 즐기는 좋은 방법이겠습니다 ㅎㅎ
07:57
19.09.23.
profile image 2등
출연진들이 우선 너무 매력적이라..안볼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저도 기다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ㅎ
10:17
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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