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단평
스포있어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하 그대들)은 뭔가 불균질한 작품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오랜시간 검증된 세계적인 거장이 풀어낸 이야기치고는 전반과 후반의 밸런스가 맞지 않습니다. 현실세계에서 이세계로 진입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중반은 다소 늘어지며, 후반은 조급하게 마무리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대들>은 주인공 마히토의 설명에 거의 전반을 소비합니다. 일제 패망직전, 공습으로 엄마를 잃고, 아버지는 부인이 죽고 나자 얼마 안가 처제와 재혼합니다. 마히토는 아버지를 따라 아버지의 회사와 엄마의 친정이 있는 시골로 내려갑니다. 그는 엄마를 죽인 세상도 싫고, 이모와 결혼해 임신까지 시킨 부도덕한 아버지도 싫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리고 무력한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죠. 그런 그가 할 수 있는 저항이라고는 자해뿐입니다. 예, 여기까지가 초반부 전개죠.
그의 초기작 <천공의 성 라퓨타>의 초반부와 비교해볼까요? 갑자기 하늘에서 소녀가 뚝 떨어지고, 공장에서 일하는 소년이 그녀를 받아내는데 그 과정에서 그 캐릭터들에 대해 별 설명이 없습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소녀는 초고대문명의 후손이자 라퓨타의 공주란게 조금씩 밝혀지지만, 여전히 소년은 착하다, 씩씩하다, 코난급 체력을 갖고 있다... 이 정도에서 더 추가되는 설정이 없어요.
이렇듯 하야오 옹의 다른 작품에서도 이렇게 주인공 서사를, 그것도 전반에 꼼꼼하게 제시한 경우는 없다시피 합니다. 이건 뭘 의미할까요?
전반부 마히토가 바라본 세상과 그가 맞닥뜨린 현실은 지금을 살아가는 하야오옹의 현실인식입니다. <그대들>의 마히토가 하야오옹의 자전적인 캐릭터인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전작 <바람이 분다>부터 이번 작품까지 2번에 걸쳐 일제패망의 시기를 그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겠죠. 그는 작금의 상황을 미쳐돌아가던 일본 제국주의 말기와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추악한 과거를 덮고 제국주의 시절을 그리워하며 사방에 혐오만을 퍼뜨리는 극우 정치인들, 그들에게 부역하는 부도덕한 관료와 경제인들, 그리고 자민당 일당독재로 표현되는 카르텔 치하에서 이제는 희망을 잃고 무기력해진 국민들.
타고난 반골 하야오옹은 작품의 전반적인 밸런스를 망가뜨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전적인 서사를 전반에 걸쳐 시간을 들여 전개함으로서 관객들에게 이 작품의 제목 그대로 "이 비틀리고 타락한 세상에서 그대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대들만의 탑을 쌓으라"고 조언합니다. 비록 <그대들>이 하야오옹의 최고 걸작은 아닐지라도, 전작들에 비해 던지는 메세지가 그리 선명하진 않다 하더라도, 그가 남긴 이 용기있는 질문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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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있게 작품의 가치와 의의, 타 작품들과의 관계를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고예요!👍
이 작품은 당장은 크게 와닿지 앟았는데, 시간이 흐른 뒤에 한번 더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