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벌 (1978) 실로 잘 구성된 긴다이치 코스케 추리영화의 걸작. 스포일러 있음.
이치가와 곤 감독의 긴다이치시리즈 중에서 가장 균형이 잡힌 영화 같다.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한 밀실살인. 복잡하고 잔혹한 가문의 역사. 애욕에 찬 사람의 열정과 죄악. 사회체제에 대한 비판.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비상한 두뇌회전. 활발하게 살아움직이는 캐릭터들까지. 어느것 하나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거장감독의 훌륭한 연출이 있다. 이치가와 곤 감독의 긴다이치시리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 영화였다.
물론, 그 감독이 연출한, 이누가미가의 사람들이라는 걸작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 여왕벌에는,
이누가미가의 사람들에는 없는 장점이 하나 있다.
절세미녀가 그 아름다움 때문에 살인사건을 불러들이고
마음의 상처를 입어 평생 괴로와하다가 요절하고 만다는 비련이 있다.
감독이 거장감독이라서, 애절한 비련미를 아주 잘 살린다.
남자들에게는 영원한 베스트셀러 주제다.
남자의 감성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다.
감독이 거장감독답게 영화의 서두를 잘 풀어간다.
시골산길을 세 명의 남녀가 노래 부르며 아이처럼 즐겁게 걸어간다.
교토대학생 다쓰야와 긴조 그리고 고토에라는 여자다.
세상에 아무 더러운 것 없다는 듯, 그들은 티없이 맑다. 하지만, 다쓰야와 고토에가 사랑에 빠지자,
그 역시 고토에를 사랑하던 긴조는 괴로움에 휩싸인다.
티없이 맑던 그들의 관계는, 지옥같은 것으로 변하고 만다.
다쓰야는 황족, 고토에는 귀족 그리고 긴조는 평민이었다.
고토에는 다쓰야를 감히 넘볼 수 없고, 긴조는 고토에를 감히 넘볼 수 없다.
그들끼리 아무리 친한 친구더라도, 이 사회적 계급만은 어쩔 수 없다.
고토에는 다쓰야의 아이를 이미 가졌는데,
다쓰야는 자기 어머니의 반대를 못 이기고 고토에에게 결별을 통보하러 온다.
왕족인 어머니는 귀족가문 고토에를 도저히 못 받아들인 것이다.
고토에는 분노와 절망에 빠져 발작상태에 이르렀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다쓰야를 월금으로 때려서 머리가 깨져 죽게 하고 만 것이다.
방의 문이 잠긴 상태에서 사람을 죽였으니 밀실살인이다.
고토에 집안 사람들은 공모하여, 다쓰야를 벼랑 아래로 옮긴 다음, 벼랑에서 떨어져 죽은 것으로 한다.
법적으로는 의심을 받지 않았지만, 고토에는 홀로 어린 딸을 키우며 시골에 틀어박혀 산다.
평생 괴로워하고 외롭게 살다가 요절한다.
긴조는 고토에와 결혼에 성공한다. 하지만, 고토에집안에서는 평민인 긴조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딸이 이미 있는 고토에와 몰래 결혼시키기 위해 만만한 그를 고른 것이었다.
긴조는 고토에와 결혼하지만, 이미 외부에 마음이 차갑게 닫힌 고토에는 긴조와
함께 하기를 거절하고 둘은 별거상태로 지낸다.
긴조는 결혼 전에는 고토에를 차지하지 못해서 지옥, 결혼한 다음에는 고토에에게 다다갈 수 없어서 지옥,
고토에가 죽은 다음에는 그리움 때문에 지옥이다.
긴조가 고토에를 적당히 사랑했다면 그냥 씁쓸한 슬픔으로 남았겠지만,
긴조는 고토에를 정말 사랑했고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이들의 파국 이후 수십년 세월이 지난다.
고토에의 딸 토모코 또한 절세미녀였는데,
그녀가 성장하자 그 아름다움에 끌려 남자들이 몰려든다.
토모코는 어머니의 시골에서 살다가 19세가 되면서 교토에 올라오게 된다.
그러자, 누군가 긴조에게 편지를 보낸다. 토모코가 교토에 올라온다면 살인이 일어날 것이라는 협박이었다.
연이어, 토모코에게 구혼하는 남자들이 연이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일단 감독의 착상이 훌륭하다. 고토에, 다쓰야, 긴조의 비극을 먼저 애절하게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런 애절한 비극을 기반으로 해서, 현재 발생하는 살인사건의 참혹함을 끔찍하게 묘사한다.
관객들은 고토에의 비극이라는 감성적 바탕 위에서 참혹한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이 상승적인 정서적 효과가 아주 훌륭하다. 고토에의 비극 이후 수십년 뒤에 똑같은 일이 토모코에게도 발생한다.
토모코는 어머니 고토에의 비극을 되풀이할 것인가?
긴다이치 코스케는 토모코와 관련된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십년 전 있었던 고토에의 살인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현재 있었던 사건도 해결이 어려운데, 수십년 전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니 난이도가 높다.
오래 전 다쓰야가 쓴 "박쥐"라는 단어 하나를 단서로 해서, 수십년 전 있었던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은
과연 일본 최고의 명탐정이라는 감탄을 하게 한다. 매우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범인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사람 -긴조였다. 그리고, 그 범행동기는,
고토에에 대한 긴조의 끊이지 않는 사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순수한 사랑을 꺾고 좌절시킨
사회계급이 문제였다. 여기서는 고토에, 다쓰야, 긴조만 적었지만,
이런 사회계급 모순때문에 고통을 겪은 이들은, 고토에의 아버지, 다쓰야의 어머니, 고토에집 가정교사 등
여럿이었다.
긴다이치 코스케가 수십년 전 고토에사건의 진상을 밝혀낸 다음,
이것을 현재 벌어진 살인사건의 해결과 결부시키는 장면은 아주 훌륭하다. 어느 걸작 추리소설에 뒤지지 않는다.
또 하나, 감동적인 부분은, 딸 토모코가 비극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어머니때와는 다르게 사회계급이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 여자가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대신,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행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토모코는 아주 성숙하고 강인한 여자였다.
토모코는 범죄를 저지른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한다. 자기는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감사해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딸로 남을 것이라 선언한다. 그녀는 주체적으로 비극을 품고 우뚝 선다.
어머니 고토에가 상처를 속으로만 삭이다가 파멸한 것과는
비교된다. 봉건적인 계급사회가 있고 없고가 이렇게 큰 차이를 낳는다.
똑같은 절세미녀에 똑같은 상황을 맞닥뜨렸지만, 한 사람은 한없이 추락하고 다른 한 사람은 굳건히 서서
모든것을 포용한다.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 아닐까?
긴조역에 대배우 나카다이 타츠야가 나온다. 긴조가 매우 정열적이고 사랑때문에 수십년에 걸쳐 파멸하고 마는 복잡한 인물이라, 대배우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선명하게 긴조를 그려낼 수 없다. 덕분에, 영화 완성도에 크게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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