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스탠 리 다큐에, 잭 커비 아들이 성명서 발표
잭 커비의 아들, 닐 커비가 스탠 리 디즈니+ 다큐멘터리에 응답하다
13세기 이슬람 시인이자 학자인 루미는 "자아는 인간과 신 사이의 장막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스탠 리의 생애를 다룬 디즈니+ 다큐멘터리에서 그 베일이 벗겨집니다. 스탠 리의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제공되는 1인칭 시점의 이 다큐멘터리는, 스탠 리가 자신에 대해 바치는 최고의 헌사입니다. 자아의 문학적 표현은 인칭 대명사 "I(나)"입니다. 괜찮은 영어 혹은 저널리즘 선생님이라면 학생들에게 그 표현을 과하게 사용하지 말라고 충고할 것입니다. 그러니 스탠 리 다큐가 상영되는 86분 동안 “I”의 개수를 한번 세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아차!) '스탠 리에 관한 다큐멘터리'인 만큼 대부분의 내러티브가 말 그대로, 그리고 비유적으로 그의 목소리로 진행된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마블 캐릭터의 탄생과 성공에 있어 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항상 논란이 있어왔다는 것은 큰 비밀이 아닙니다. 스탠 리는 운 좋게도 기업 대변인과 미디어에 접근할 수 있었고, 이를 활용해 마블 캐릭터 만신전의 탄생에 관한 자신만의 신화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자신을 마블의 목소리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그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장수의 축복을 받은 마지막 남은 사람이었습니다(제 아버지는 1994년에 돌아가셨죠). 또한 스탠 리는 역사, 신화 또는 과학에 대한 지식이 제한적이었던 점도 주목해야하며 그것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사실입니다.
반면에 저와 다른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그러한 주제에 대한 아버지의 지식은 광범위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그 점을 잘 요약했습니다. “지식이 많을수록 자아는 줄어든다. 지식이 적을수록 자아는 커진다”
1960년부터 1966년까지 마블의 캐릭터 목록과 타임라인을 보면, 마블의 주요 캐릭터 대부분이 리의 재직 기간에 만들어졌는데, 아버지가 단독으로 만든 실버 서퍼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에 리의 이름이 공동 창작자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마블 캐릭터 제작에 리가 관여했다고 봐야 할까요? 다른 공동 창작자가 리의 사무실에 들어와서 "스탠, 나한테 좋은 캐릭터 아이디어가 있어요!"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가정해야 할까요? 리에 따르면 그것은 언제나 그의 아이디어였다고 합니다. 리는 자신이 <판타스틱 포>를 만든 방법과 이유에 대해 꽤 많은 시간 동안 이야기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언급은 잠깐씩만 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코믹스 역사가들은 아버지가 1957년 DC에서 제작한 코믹 <Challengers of the Unknown>를 바탕으로 <판타스틱 포>를 만들었으며, 심지어 할아버지 벤자민의 이름을 딴 벤 그림(The Thing)과 누나 수잔의 이름을 딴 수 스톰(Sue Storm)의 이름을 지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작자 크레딧을 둘러싼 리와 아버지의 갈등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지만, "내 아이디어였기 때문에 내가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리의 목소리와 자신의 예술과 스토리가 스파이더맨에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스티브 딧코의 갈등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1501년 오페라 델 두오모는 26살 미켈란젤로에게 피렌체 대성당을 위한 다비드 조각상을 의뢰했습니다. 아이디어와 돈은 그들의 것이었지만, 조각상은 미켈란젤로의 천재성, 비전, 창의성으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라고 불립니다.
저는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지하 감옥”이라고 부르는 롱아일랜드 집의 지하 스튜디오에서 일주일에 7일, 보통 하루 14~16시간씩 작업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아티스트, 작가, 채색가 등은 프로그램에서 묘사된 것과 다르게 마블 사무실이 아닌 자택에서 일했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저는 아버지의 왼쪽 어깨 너머에서 시가 연기 사이로 마블 유니버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만화 역사가는 아니지만, 저처럼 직접 목격하거나 직접 경험하고 진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제 아버지는 1980년대 초에 만화계에서 은퇴하셨고, 1994년에 돌아가셨습니다. 리는 자연스럽게 마블의 지원과 축복 속에서 35년 넘게 경쟁 없이 홍보 활동을 했고, 마블 브랜드가 커짐에 따라서 부수적으로 자신의 이름도 유명해졌습니다. 수십 년에 걸친 리의 셀프 홍보는 2000년 <엑스맨>을 시작으로 35편이 넘는 마블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면서 절정에 달했고, 마블 코믹스의 역사를 잘 모르는 수백만의 영화 관객들에게 마블의 모든 것을 창조한 사람으로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아버지의 첫 스크린 크레딧은 2008년 <아이언맨> 영화가 끝날 때 클로징 크롤에서 스탠 리, 돈 헥, 래리 리버에 이어 이름이 나올 때까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창작자의 권리를 둘러싼 싸움은 최초의 바빌로니아 석판이 새겨진 이래로 계속되어 왔습니다. 문학/예술 역사의 이 한 챕터만이라도 바로잡을 때가 한참 지났습니다. ‘Nuff said 더 말할 필요가 있나요(스탠 리 말버릇)
닐 커비(잭 커비의 아들)
세간에는 그냥 마블 코믹스 만든 사람 = 스탠 리로 굳어져 버렸죠.
실제 만든 사람들과 유족들 입장에선 통탄할 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