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어> : 협상의 정석
협상은 어떤 것인가. 상대방이 원하는 모든 것을 주는 것일까. 내가 먼저 무엇을 주고 나서 상대방의 호의를 기다리는 것일까. 똑같은 비율로 각자의 이익을 챙기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걸 상대방이 먼저 내놓도록 구슬리는 것인가. 성공적인 협상은 어떻게 이뤄지는 걸까. <에어>는 나이키와 에어 조던 그리고 마이클 조던과 함께했던 그 시대를 헌정하는 영화다. 그리고 성공적인 협상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규칙을 깨라
나이키 스카우터로 일하는 바카로는 마이클 조던을 운동화 모델로 계약하고자 한다. 바카로는 커리어를 걸 만큼 마이클 조던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다. 계약을 위해 예산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마이클 조던 신발 라인을 만들자고도 제안한다. 하지만, 나이키는 마이클 조던의 몸값을 부담스러워한다. 이미 최대치의 예산을 내놨기 때문이다. 마케팅팀은 그 예산이면 2~3명의 선수를 계약할 수 있다며 바카로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회사는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왜냐하면, 바카로가 논리적으로 회사를 납득시킬 디테일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기도 하고. 마이클 조던이 유명하긴 하지만 100% 확신을 가지고 투자하기엔 검증이 덜 되었다고 생각했으니까. 회사든 개인이든 정해진 예산을 사용하는 데 있어 위험 부담을 줄이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본능이다.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의 결과를 내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니까. 일반적인 사고를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늘 공세를 유지할 것
바카로는 조던의 에이전트, 고등학교 농구 코치와 조던에 대해 대화한다. 긍정적인 피드백은 받지 못하지만 힌트를 얻는다. 마이클 조던이 빨간색을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조던 집에 직접 찾아가는 방법이 있음을. 업계의 상도덕을 존중하는 방법이 아니라며 주변에선 만류하지만 바카로는 거기서 기회를 본 것이다. 완벽한 과정보단 중요한 결과를 위해 규칙을 깨는 방법을 선택한다. 바카로는 조던 어머니와 만나 일장연설을 펼치며 조던에 대한 깊은 믿음을 보여준다. 조던 패밀리가 갑의 상황이니 을의 위치에 있는 카바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해야 할 터. 물 흐르듯 한 아름다운 과정은 아니지만 바카로는 자신의 장점인 말발을 최대치로 활용한다.
조던과의 계약을 위해 바카로는 속도를 높인다. 조던을 위한 빨간색 신발을 만들자고, 디자이너 피터에게 예쁜 신발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다. 신발 덕후인 피터의 결과물을 보고 바카로는 넋이 나가지만 더 강렬한 레드를 원한다. 하지만, NBA는 신발에 흰색이 51%는 들어가야 한다는 규정을 가지고 있어 난처한 상황이 돼버렸다. 이때 마케팅팀 롭은 빨간색을 더 넣고 나이키가 벌금을 대신 물어주면 그 자체로 광고가 되지 않겠냐며 제안한다.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규정에 맞게 다시 디자인하는 결정을 내릴 텐데. 역시 기세를 몰아 다른 판단을 내린다. 사실 조던에 올인하자는 바카로의 제안도 나이키 CEO 필 나이트가 수용한 것이었다. 틀에 박힌 생각을 하기 쉬운데 나이키 아니랄 까봐 여기서도 규칙을 깨는 공세적 모습을 보여준다. 나이키에는 바카로 외에도 그런 인물이 더 있었다.
자급자족할 것
논의를 거쳐 만들어진 신발에는 지금까지 유명한 에어 조던이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나이키는 조던 패밀리와 미팅을 계획한다. 조던 패밀리는 컨버스, 아디다스, 나이키 회사를 순서대로 방문해 미팅을 진행한다. 미팅하는 장면에서 회사의 컨셉을 잠깐이나마 보는 게 흥미로웠다. 컨버스는 대중적인 이미지를 내걸었고, 아디다스는 조던보다는 아디다스가 더 특별하다는 인상을 줬다. 실제로 그랬는지 어쨌는지는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사람들만 알겠지만.
조던 패밀리는 이들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어느 회사도 조던으로 하여금 특별하다는 느낌을 느끼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니크라는 표현이 더 적합해 보인다. 조던 패밀리는 나이키와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는데. 에어 조던을 본 마이클 조던이 나름 흡족한 듯 분위기를 풍긴다. 미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으나 이외의 특별한 반응이 없는걸 눈치챈 바카로가 다시 한번 그의 장기인 연설을 시작한다.
앞으로 조던이 겪게 될 일들을 말해준다. 설득하는 방식으로. 이때 영상 편집이 기가 막히다. 마이클 조던 미래의, 실제로 벌어진 일들을 장면마다 끼워 넣어 편집해 보여준다. 바빌론의 마지막 장면이나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다. 나이키도 위험 부담을 안고 있지만 조던에 대한 엄청난 신뢰를 보내고 있다며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쏟아낸다. 그러니 조던 당신들도 나이키를 믿고 같이 가자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초조하게 미팅 결과를 기다리는 바카로는 조던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조던 어머니는 계약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한 가지 조건이 있다고 말한다. 마이클 조던 신발 수익의 일부를 자신들과 배분하자는 조건. 바카로는 지금까지 업계에 없었던 일이며 이미 최대의 예산을 끌어온 것이기에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단순한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전화 통화하는 둘의 장면 편집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몰입감을 준다. 연기와 연출의 힘이란 대단하다. 이 외에도 영화에 전화 통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지루하지 않았고 담백하며 깔끔했다.
바카로는 조던 어머니의 조건으로 협상이 어렵게 됐다며 필에게 말한다. 필은 조던 어머니가 내건 조건이 유례없는 사례라며, 나이키가 선례를 만드는 것이 옳은 일인지 고민한다. 하지만, 곧바로 조던 어머니의 조건을 수락하자며 조던을 데려오라고 말한다. 뒷부분에는 필이 나쁜 선례를 만든 게 아닌가 혼자 스트레스 받으며 명상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마침내, 바카로는 조던과 통화를 하게 되고 웰컴 투 나이키를 말하며 에어 조던의 시대 출발점을 찍는다.
하고 싶은 말들
* 전형적인 미국의 여러 성공 이야기 중 하나를 영화로 풀어낸 것뿐인데. 속도감과 영화의 색감 그리고 유머와 몰입감은 전형적이지 않다. 담백하고 깔끔하고 부족함이 보이지 않는다. 두 시간이 너무 짧다고 느껴졌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너무 뻔한 이야기라는 것. 근데, 그 뻔한 이야기도 깔끔하고 담백하게 재미있게 담아내지 못한 영화들이 많다. 그런 걸 생각하면 이 영화에 점수를 두둑이 줘야 한다. 이제 와서 보니 뻔해 보이는 이야기지, 생각해 보면 그 뻔한 실화들은 실제로 우리 주위에 몇 없다. 40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었으니. 뻔하다고 불평하기엔 오히려, 그 불평이 너무 뻔하고 재미없다.
* 결정의 순간엔 고민이 된다. 안전한 결정을 하기도 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결정을 하기도 하고, 베팅처럼 보이는 결정을 하기도 한다. 결정은 또 다른 결정의 순간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지루할 만큼 끝이 없다. 다만, 어떤 결정을 하든 그 결정을 올바르게 끝맺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그 결정이 어떻든 올바른 끝맺음을 위해 가능성을 높이는 태도라고 할까.
영화에서 바카로는 베팅처럼 보이는 결정을 했지만 그것의 끝맺음을 위해 늘 공세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모두에게 그런 결정 방식과 태도가 적용되진 않겠지만, 이 영화를 보고 각자가 각자의 결정과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이 영화의 본전은 충분히 뽑고 남는다. 그러니 극장에 보러 가셨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극장에서 제공하는 여러 쿠폰을 영끌해서.
* 영화를 보면 나이키가 조던에 비해 얻는 게 많이 없어 보이듯(?) 연출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나이키는 지금까지 유행하는 에어 조던 신발 라인을 구축해서 가지고 있고. 그 자체가 나이키를 상징하는 광고가 되기도 해왔으니까. 게다가 상상도 못할 수익도 벌었다. 그래서 나이키와 조던의 계약은 결과적으로 서로 얻을 건 다 얻은 진정한 윈윈 win-win 협상이다.
해변의캎흐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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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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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리는 딱 한명만 데려오면 됩니다.
그게 누군데? 조던이요. 마이클 조던.
쳤어? 우리는 회사야. 겨우 저딴 알지도 못하는 선수 하나에 회사를 맡기자고?
네.
단단히 돌았구나 니가?
저는 니네가 뭐라든 저 선수랑 계약 따낼겁니다.
야, 들어봐. 니가 계약하고 싶어하는 쟤가 우리 회사 싫어해.
설득해야죠.
뭐? 납치해서 계약 한다고 말할때까지 감금하고 협박이라도 하게??
아니요, 가정 방문이요.
이야 니가 에이전트를 물먹이는구나 아주.
조던 부모님인가요? 가정방문 왔습니다 똑똑
저희 회사랑 계약하시죠. 아드님이 컨버스랑 아디다스 중에 관심있는걸로 아는데 걔네 형편 없어요.
저한테 오면 제가 기가막힌 프로젝트로 아드님이랑 계약 따낼테니 잘생각해보세요.
예, 조던 어머니 인데요. 미팅 잡혔어요. 알아둬요, 마음에 들어서 잡은게 아니에요. 그냥 그쪽한테도 공평하게 기회를 주는겁니다.
야, 신발 하나만 만들어놔.
누구 줄건데? 조던
야 신발 만들기는 했는데 이거 원하는 색으로 완벽하게 만들려면 nba규정 위반해야 돼.
어떻게 할까? 위반하면 경기당 5천달러 벌금으로 내야하는데.
회삿돈으로 내지 뭐. 만들어와.
조던님, 조던 어머님, 아버님 저희 회사에 잘오셨습니다.
저희는 조던을 위해 조던만을 위해 신발 한켤레를 준비하였습니다. 보시죠.
당신은 이 신발을 신고서 nba의 대표가 될거고 우리가 당신이 신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밀어줄겁니다.
그리고 조던 당신이 이 신발을 신고 나가서 경기당 발생하는 벌금비용은 전부 회사에서 내줍니다.
당신은 그만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면 됩니다.
예, 조던어머니 입니다. 계약 하기전에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신발 이름에 조던이 들어간 이름은 판매수익을 우리도 같이 나눠가집니다. 그게 조건입니다.
안됩니다. 이런 경우는 한번도 없었어서 힘들거 같습니다. 회사랑 대화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저기, 조던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는데요.
뭐래? 한데?
그게 신발이름에 조던 들어가는 신발은 판매수익을 조던의 가족한테도 나누는게 조건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회사대표랑 대화해본다고 했죠.
야, 해준다 그래. 너 쟤 계약 따내고 싶어했잖아. 전화해서 계약 따내고 와.
예, 조던 어머니. 말씀하신 조건 수락하겠습니다.
조던 및 조던 패밀리 필모그래피
맷 데이먼은 뭔가 포드 페라리와 똑같은 느낌 ㅠ
나이키가 데려오고 싶어하는 선수는 나이키를 싫어하고, 그래서
에이전트 협상이고 뭐고 자기가 직접 가서 데려오고 싶어하는 선수 부모님 댁으로 찾아가서 다른 회사 까내리면서 우리회사랑 계약하라고 설득시키고
기회 얻어서 미팅 약속 잡히고 미팅날까지 전용 커스텀 신발 만들어서 미팅날 조던이랑 조던 부모님 보는 앞에서 에어조던 보여주고 판매수익 조던 이름 들어가는거 가족도 나눠가지겠다는 조건 수락해서 계약을 따내는 내용이니까요.
그 내용 속에 난관은 없었어요.
저는 바카로가 "조던은 내일이라도 다리가 부러질 수 있다"고 말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지나고 나니 조던이 전설적인 선수인 건 당연해 보이지만, 어떻게 아무 일 없이 전설이 이어질 수 있었을까요. 알 수 없었을 거예요. 어머니도 나이키도 조던이 전설이 될 거라는 데 베팅한 거죠. 너무 엄청난 일들은 때론 엄청나기 때문에 드라마로 잘 안 느껴지는 것 같아요ㅋㅋ
저는 학교 다닐 때 이 주제를 가지고 장기 레포트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엄청나게 몰입하게 되었고, 배우들의 경우 마치 지인들을 보는 느낌이었답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조던 어머니가 대단한 협상가더군요. 마치 사딸라 외치던 김두한처럼...^^
다만 마지막 문단은 빼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규칙상 게시판에서 국내 정치 관련은 언급 금지여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