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괴로워 - 세계에서 가장 긴 시리즈 영화. 1969년부터. 스포일러 있음.
토라라고 하는 전직 야쿠자 그리고 현직 장똘뱅이가 주인공인 코메디영화다.
이 영화가 일본인들의 사랑을 그렇게 많이 받고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30년 넘게 48편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좀 부럽기도 하다. 그중 단 한편도 흥행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은 놀랍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캐릭터영화다. 토라라고 하는 캐릭터가 코메디를 이끌어나간다.
누군가 존 웨인을 두고 "똑같은 캐릭터를 오랫동안 연기함으로써 대중들의 신뢰를 얻는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했던데, 이 말은 토라 캐릭터에도 적용될 수 있으리라.
70년대, 당시 절정으로 치달아가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가는 일본사회가 무대다. 하지만 따뜻한 정이 있고, 동네사람들끼리 왕래하고,
이웃의 즐거움과 슬픔은 내 즐거움과 슬픔이 되는 그런 분위기가 아직 남아 있다. 지금처럼 오랜 불황으로 짓눌린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감 있고 활달하고 긍정적인 성격의 사람들이다. 토라는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더 눈물 많고 정이 많고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던지는 것을 마다 않는 오지랖 넓은 사람이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전원일기 보는 식으로 토라를 바라보았으리라.
영화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등장인물들의 생활형편이 눈에 띄게 나아지는 것이 보인다. 당시 사회와 함께 움직여나갔던 시리즈라는 증거다.
하지만 토라는 이런 사회분위기와 동떨어져 있다. 그는 사회와 경제가 발전하지만, 여전히 아웃사이더로 남아 있다. 그는 장똘뱅이로 전국을 떠돈다. 늘 가난하다. 하지만, 유쾌하다. 전국을 떠돌며 눈에 띄는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오지랖 넓게 나선다. 하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민폐를 끼칠 뿐이다. 가령 농번기에 바쁜 농촌을 찾아 돈도 안 받고 일해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맘과는 다르게 일을 시작한지 하루만에 앓아눕는다. 농가 집주인은 농사짓기에도 바쁜데 이것을 젖혀두고, 토라 간호를 한다. 뭐 이런 식이다. 하지만 누구도 토라를 미워하지 않는다. 의도는 아주 좋았고 선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빨이 엄청나서, 토라가 말을 하면 농부, 농부 아내 그리고 농부 딸은 웃느라고 허리를 못편다.
처음에는 토라가 왜 저렇게 사나 싶다. 하지만 시리즈가 지날수록, 토라덕분에 행복해진 사람들이 전국에 늘어난다. 시리즈가 지날수록, 토라가 위대해 보인다. 저 멍청하게 좌충우돌하고 민폐만 주변에 끼치는 사나이가 전국을 떠돌며 수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위대해 보인다는 것이다.
토라가 그렇게 민폐를 끼치는데도 그의 가족들은 그를 늘 걱정하고 기다린다. 토라가 민폐를 끼쳐도, "흑흑, 오빠가 너무 불쌍해"하는 마음씨가 비단결같은 누이동생부터 해서, "있으면 속썩이지만, 안 보이면 걱정된다. 존재 자체가 웬수다"하고 늘 토라걱정을 하는 삼촌과 숙모. 토라가 아무리 사고를 쳐도 두 팔 벌리고 늘 그를 반갑게 맞아주는 가족이다. 일본인들도 이렇게 무제한적인 사랑과 공감으로 맺어진 깊은 연대에 대한 향수를 마음 속 깊이 갖고 있다는 뜻인가?
생각보다 굉장히 소박하고 SNL 코메디 스킷을 늘려놓은 것 같은 느슨한 구성의 영화다.
하지만 우리나라 영화에도 이런 타입의 걸작이 있다. 가령 서울의 지붕밑같은 영화는, 남자는 즐거워보다 더 명작이다. 구봉서의 막둥이 캐릭터, 서영춘의 살살이 캐릭터, 김희갑의 합죽이 캐릭터, 양훈의 뚱뚱이 캐릭터는 모두 토라 캐릭터보다 못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왜 이들은 지속적으로 발전되지 못했던가? 김희갑이 메밀꽃 필 무렵에서 보여준, 인생 달관하고 구름에 달 가듯이 떠가는 장똘뱅이 캐릭터처럼 감동적인 연기는 별로 보지 못했다. 참 애석한 일이다. 이들이 다시 발굴되고 정당한 평가를 받을 날이 오리라 하는 희망을 가져 본다.
추천인 7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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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역시 이름 들어본 유명 시리즈로군요.
언급해주신 한국 영화들도 궁금하고요
항상 좋은 소개 감사합니다!
한국영화를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드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