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토이치의 자포자기 (1972) 충격적이다. 성인만 보시오. 스포일러 있음.
자토이치 시리즈 중 특이한 영화다. 기타노 다케시 판 자토이치와는 달리, 가츠 신타로 판 자토이치는 눈물 많고 정 많고 열혈인 사람이다.
"우리같은 야쿠자들은 정상적인 사람들이 먹다 남은 것을 주워먹고 사회의 음지에서 살아야 하지" 하고 늘 말한다. 떠돌이 야쿠자에다가 눈마저 먼 자토이치의 삶은 한 많은 삶이다. 하지만 낙천적인 그는 매일 매일 유쾌하게 산다. "서러워도 늘 웃는다"이다.
자토이치는 어느 줄다리 위에서 샤미센을 켜는 노파를 만난다. 둘 모두 떠돌아다니는 노숙자이기는 마찬가지다.
자토이치는 동질감 겸 동정에서 노파에게 돈을 주려고 한다. 하지만 돈을 받으러 줄다리 위를 오다가 노파는 벼랑에 떨어져 사망한다.
자토이치는 줄다리에 매달려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노파를 구해보려 하지만, 장님인 그는 어찌할 수 없었다.
자토이치는 큰 충격 겸 양심의 가책을 받고, 노파의 딸이 창녀로 팔려갔다는 어촌 마을로 찾아든다. 그 딸을 구해주려는 생각이다.
사실 이 설정은 좀 어색하다. 아무리 자토이치가 선량한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 잘못 아닌 타인의 사망사고에 일부러 노파의 딸이 산다는 먼 어촌까지 찾아가 그녀를 구할 생각을 한다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자토이치의 선행을 영웅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다. 이런 자토이치의 선행을 비웃고 그 모순을 풍자하는 것이다.
자토이치는 진짜 샤미센 노파의 딸이 아니라, 돈 밝히고 비열한 창녀 니시키기를 샤미센 노파의 딸로 착각해서
구해준다. 거액의 돈을 주어 그녀를 창녀촌에서 빼내고 그 다음에도 계속해서 그녀를 돌봐준다.
그렇다면 니시키기는 자토이치에게 고마와하는 것일까? 니시키기는 자토이치가 자기 양심 편하자고 저 혼자 하는 일인데 고마와할 것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기 합리화하며 자토이치를 등쳐 먹을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자토이치 목에 걸린 현상금을 노리고 죽일 생각까지 한다. 그 와중에도, 진짜 샤미센 노파 딸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몸을 팔 위기에 처한다.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어린 동생은 야쿠자에게 맞아 죽는다. (여섯일곱살 정도 되는 남자아이를 야쿠자들이 달려들어 때려죽이는 장면을 일부러 자세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런 타부를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다.) 샤미센 노파 딸은 절망하여 동생 시체를 안고 바다에 투신자살한다. 이제나 저제나 자토이치가 진실을 깨닫고 진짜 노파 딸을 구해줄까 기다리던 관객들은 충격 받는다.
자토이치 자기 생각에는, 샤미센 노파 딸을 구해 그녀에게 진 양심의 부채를 갚고 그녀를 등치는 야쿠자를 죽여 영웅적인 활약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다.
심지어 그 어촌마을은 야쿠자들의 손에 장악되어 갖은 억압과 폭정을 겪는다. 어촌사람들의 유일한 생활수단인 배를 야쿠자들은 불태운다. 하지만, 잠시 방문객인 장님 자토이치는 이를 모른다. 주변 사람들이 뭔가 떠들썩하기는 한데 이게 뭐하는 걸까? 대혼란과 폭정, 폭력의 한가운데에서도 자토이치는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산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비련의 착한 여자를 구한다는 착각을 하며 대활약(?)을 한다. 뭐 선량한 여자를 위해 싸우는 것도, 야쿠자의 폭정으로부터 마을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칼을 휘두르는 것일까?
1970년대 사이키델릭한 광란의 분위기가 마을을 채운다. 어촌마을도 실제라기보다 사이키델릭한 광란의 공간같은 느낌이 있다. 야비한 니시키기가 기둥서방과 손잡고 자토이치를 등쳐먹다가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데, 이에 속은 자토이치가 니시키기를 위해서 손까지 뭉개지는 것을 보면 분통이 텨진다. 아마 서부영화 쟝고를 카피한 것인지, 손이 뭉개진 자토이치가 그를 죽이러오는 야쿠자들이 오기를 혼자 기다리는 장면은 어둡고 비관적이다. 니시키기도 살아는 남지만, 목숨만 간신히 건져 창녀촌으로 돌아가 예전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해피엔딩은 아니다.
결국 이 영화에서는 악인 선인 할 것 없이 다 죽는다.
동네 바보를 놀려주느라고 야쿠자들이 자위행위를 해주는데, 정액이 야쿠자얼굴을 향해 튀어오르는 것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줄거리랑 하등 상관없이 삽입된 장면인데, 도대체 감독은 무슨 의도로 이런 장면을 집어넣은 것일까? 니시키기가 자토이치를 옭아매려고 억지로 섹X를 하려는데, 자토이치가 이를 한사코 거부하는 장면도 수상쩍다. 그냥 사양하는 것이 아니라 격렬하게 거부한다. 니시키기가 억지로 자토이치랑 섹X하는 장면도 자토이치가 강간 당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주인공 가츠 신타로가 감독까지 했다는데, 그는 이 영화 속에 서사적인 구조라기보다는, 악몽과 오해 그리고 폭력과 섹X를 집어넣은 지옥도를 그린다. 자토이치 시리즈가 길다 보니, 자토이치와 요짐보같은 걸작도 있고, 이 영화처럼 수작인 영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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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신 자토이치 이야기: 부러진 지팡이>
영어 제목보다 좀 더 은유적이네요.
아무리 강한 능력자라도 세상 만사를 뜻대로 할 수 없고 휘둘릴 수밖에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소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