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풀타임> 일상 스릴러, 재난을 대하는 엄마의 자세
영화 <풀타임> 시사회를 마치고 나왔습니다. 88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너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영화에서 주인공이 겪는 일들에 정말 몰입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마 익무분들이라면 경우는 좀 다르겠지만, 누구라도 공감하실 거예요. 늦은 시간에 시작하는 시사회와 GV를 보고, 한계 시간을 계산해서 어떻게든 집에 무사히 도착하게 위해서 머리 속으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해보고, 플랜B, C를 짜고. 오늘도 침수로 시사회에 오시는 길에 힘드셨던 분도 계실 거구요. 반대로 집에 갈 때가 걱정이신 분도 계시겠죠.
여기 <풀타임>의 주인공은 그 상황을 넘어 자기 삶의 기반이 걸린 상황을 그저 순간순간의 기지를 발휘하고, 임기웅변의 임기웅변을 다해서 극복해야 합니다. 단순히 생존을 넘어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강해져야 하고 아이들에게 불안감을 비춰서도 안 되며 직장과 가정 모두를 지켜야 합니다.
사실 그녀가 겪는 일은 그녀가 계획했던 것과는 상당히 매우 다를 겁니다. 끝장난 결혼 생활과 더불어 그녀의 커리어는 표류하고, 조금이라도 자기 삶의 궤적을 원래대로 돌리려는 그녀의 시도는 상당히 무리하는 것으로 보이며 여러 저항에 직면합니다.
그런 상황을 이 악물고 돌파해내는 그녀의 모습에 감탄하고 경탄하다가도, 더 자도 되는 상황에서 원래 일어나야 하는 시간에 눈이 딱 떠지는 모습에 안쓰러움이 강하게 다가오더라구요. 실패한 상황을 이용해 평가서도 작성하고, 최대한 수습해보려 하지만, 그 와중에 자신과 같은 혹은 그보다 못할지도 모르는 수습 직원에게 폐를 끼치는 일까지 일어나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자기를 도와줬던 학부영에게 키스하는 순간에도 상당한 자괴감이 들었을 거예요. 그녀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녀에 대한 호의를 절박한 상황과 스트레스로 착각한 것이었는데 이런 일련의 과정이 그나마 쉬어야 했던 주말마저 쏜살같이 지나가게 했습니다.
아이가 팔을 다치고, 잠투정을 하고, 가진 현금을 다 써서 아이의 저금통을 털고.. 정말 영화는 그녀를 한계까지 밀어붙입니다.
결국 탈이 나고 해고당한 그녀는 망연자실합니다. 사실 이전까지는 빠른 편집과 음악, 그리고 그녀가 맞이하는 정신없는 돌발상황 덕분에 극의 긴장감이 유지되었다면, 지금부터는 그녀의 생존 자체를 걱정하게 되더라구요.
기차역에서 그녀에게 다가오는 기차 소리를 들으며 불안감은 극에 달했고, 놀이공원에서는 그녀와 같이 황망한 심정이었습니다. 지난 장면에서 울면서 화장을 고치던 모습보다도 그녀가 전화를 받으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이 더 슬프고 아름답더라구요.
풀타임이라는 제목은 그녀가 그녀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직업의 형태를 규정하는 것만 아니라, 눈을 뜨고 다시 자리에 누울 때까지 계속되는 그녀의 고된 현실을 대변하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직장에서의 일이 끝났다고 그녀의 일이 끝난 것이 아니니까요.
그녀의 무거운 어깨의 짐이 이직을 통해서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조금이나마 그녀가 그녀의 삶을 원래의 궤도로 돌려놓기를, 그리고 그녀를 힘들게 하는 현실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지기를, 그리고 아무 조건없이 카풀에 응하는 사람들마냥 그녀 주변에 사람들이 친절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돕기를 기원합니다.
오프닝에서부터 영화 내내 몇 차례나 관객을 향해 비춰지는 그녀의 지쳐 잠든 얼굴은 우리가 유년기에 몇 번이고 바라보았던 부모님의 그것과 참 닮았습니다. 왜 대표님이 엄마손 파이를 꼭 쥐어주셨는지 알겠네요.
이 영화는 메세지도 강렬하지만, 그녀가 겪는 일들을 마치 전쟁물처럼 생생하게 체험하게 해줍니다. 저에게는 이 영화가 1917 같았어요. 이런 영화를 수입하신 배급사 슈아픽쳐스와 시사회를 마련해주신 익무에 감사드립니다.
추천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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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잘 살아낸다는 것의 힘을 제대로 느낀 오늘이었어요
안 그래도 대표님이 배부하시면서 '아이고 이걸 빼먹고 안 드릴 뻔했네요. 중요한건데..' 라고 하셨는데, 그게 엄마손 파이였어요. 영화와 생각보다 큰 연관이 있었던 간식이었습니다. 오늘 시사회에 오셨던 분들이 모두 마음에 따뜻한 호롱불을 켜고 무사히 집에 귀가하셨으면 합니다.
사실 나에게 중요한 일을 앞두고 교통지옥 덕분에 마음 졸이고, 일을 망친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있잖아요? 이 영화는 그런 공감을 토대로 일상을 스럴러로 바꿔버립니다.
계획이 어그러지고, 일상이 비일상으로 변하고, 그와중에도 아이들 때문에라도 절대로 평정을 잃어서는 안되기에 마치 재난 앞에서 혹은 운명 앞에 저항하는 인물처럼 느껴져요.
88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빠르게 지나가시는 경험을 하게 되실 거예요.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영화 개봉하면 즐거운 관람되시고, 오늘도 쾌청한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