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전문가의 '랑종' 리뷰
일본 영화 웹사이트 '시네모어'에..
일본서 최근 개봉한 <랑종> 리뷰가 실려서 옮겨봤습니다.
이나가키 타카토시라는 영화 전문가의 글이에요.
https://cinemore.jp/jp/erudition/2583/article_2584_p1.html
<랑종> 지옥 직행, 가속해나가는 공포의 롤러코스터
2022년 7월은 (일본에서) 오랜만에 보는 ‘호러 영화의 달’이 되었다. 폭력과 잔혹 묘사가 가득한 대만 호러 <곡비>(2021), <닥터 스트레인지>의 스콧 데릭스 감독이 속편 연출을 포기하면서까지 찍고 싶었던 <블랙폰>(2021), 70년대 호러에 대한 애정과 경의가 담긴 A24 작품 <X>(2022), “대만 영화 사상 가장 무섭다”라고 알려지면서 일본에서도 큰 화제를 모은 넷플릭스 작품 <주(咒)>(2022) 등 각양각색의 공포가 관객들을 덮쳐 오고 있다.
그 마무리로 ‘결정타’처럼 등장한 것이 태국/한국 합작 영화 <랑종>(2021)이다. 원안, 제작은 <곡성>(2016)의 나홍진 감독. 처음에는 그 작품에 등장한 무당 일광의 프리퀄을 그리는 스핀오프 영화로 구상되었지만, 나중에 크게 설정을 바꿔서, 태국의 무당 일가에 닥치는 기괴한 일을 추적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다.
무대가 태국으로 변경됨에 따라 감독, 각본은 <셔터>(2004)로 유명한 태국의 명감독 반종 피산다나쿤이 담당. 두 사람의 재능이 국경을 넘어 콜라보레이션한 이 작품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지옥을 향해 오로지 돌진하는, 마치 롤러코스터 같은 호러 엔터테인먼트이다.
무당 가족에게 닥친 기괴한 일
태국의 동북부 이산 지방에 있는 마을에는 조상 대대로 무당의 혈통을 잇는 가문이 있다. 사람들이 추앙하는 여신 바얀에게 선택된 당대의 무당은 봉제업을 하는 님(싸와니 우툼마)이다.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해주며, 때로는 의식을 통해 보이지 않는 힘으로 생긴 병을 치료해준다.
님 언니 노이(씨라니 얀키띠칸)의 남편 장례식 때부터 모든 이변이 시작된다. 노이의 딸 밍(나릴야 군몽콘켓)의 행동이 뭔가 이상한 것이다. 평상시 직업소개소에서 일하는 밍은 밝고 쾌활한 성격이며 아름다운 외모로 마을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존재다. 하지만 그런 밍이 욕지거리를 하고 어른 아이들을 들이받고, 자신과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원인불명의 컨디션 악화를 겪으며 기행을 거듭한 밍은 결국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만다.
딸을 걱정한 노이는 무당의 힘을 지닌 동생 님에게 도움을 청한다. 노이는 밍이 여신 바얀에 의해 무당의 후계자로 선정되어서, 그 영에 홀린 것이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밍을 구하고 싶은 일념으로 노이는 님에게 “신내림 의식‘을 해줄 것을 간청한다. 그런데 님은 ”밍을 홀린 건 바얀이 아니다.“라고 단언하며 부탁을 거절한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밍을 조종하는 걸까. 왜 밍은 표적이 된 것일까. 님과 노이는 밍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공포를 지탱하는 ‘꺼림칙한 설정’
아무튼 간에 기이한 에너지가 넘치는 영화다. 이 작품은 무당의 혈통을 잇는 님의 가족을 촬영한다는 설정의 영상으로 영화 전체가 구성돼 있는데, 정말로 그들이 실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정도의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마을의 풍경은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음산하게 비치고, 핸드헬드 카메라가 마치 그 장소에 있는 것 같은 현장감을 연출한다. 폐쇄적인 커뮤니티 분위기가 관객에게 축축하게 달라붙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 가운데 조금씩 기괴한 일이 닥쳐오는 두려움이 영화 초반부의 볼거리다.
이야기의 기반을 구성하고, 그 공포를 뒷받침하는 것은 치밀하게 그려진 인간관계다. 애당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여신 바얀의 무당으로 처음에 뽑힌 사람은 동생 님이 아니라 언니 노이였다. 하지만 젊은 시절 노이가 신내림을 거부하면서, 그 힘은 님에게 옮겨갔다. 두 사람 사이에 껄끄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건, 님이 자신의 인생을 적잖이 희생했음에도, 노이가 님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노이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고, 님이 밍을 상태를 진단하려는 것조차 꺼린다.
님과 노이에게는 마닛이라는 오빠도 있다. 마닛에겐 젊은 아내 팡이 있고, 두 사람 사이에는 갓 태어난 아이가 있다. 그래서인지 마닛은 밍에게 생긴 이변을 걱정하면서도, 여동생들의 관계에 깊이 파고들지 않으려는 거리감이 있다. 또 병으로 죽은 님의 남편 쪽 가계에는 원인 불명의 불행한 일들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시아버지는 운영하던 공장이 망한 뒤 감옥에서 자살, 시조부는 노동자들이 던진 돌에 맞아 사망, 그리고 아들, 즉 밍의 오빠 맥도 젊은 나이에 사고로 죽었다.
딸에게 ‘뭔가’가 빙의된 것만으로도 무서운 일인데, 인간관계와 마을의 분위기가 사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이러한 꺼림칙한 설정은 무당과 의식이라는 모티브를 포함해, 사와무라 이치의 <보기왕이 온다>를 비롯한 ‘히가 자매’ 시리즈와 그 소설을 영화화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온다>(2018)와도 통하는 것이다. 같은 아시아 호러 스토리로서 일본인 관객이 이해하기 쉬운 구석도 많을 것이다.
감독, 각본을 맡은 반종 피산다나쿤에 따르면 이 작품의 스토리 중 약 70%는 나홍진의 원안에 충실하다고 한다. 나홍진의 작품으로 말하자면 <곡성>뿐만 아니라 <추격자>(2008)과 <황해>(2010)에서도 스릴과 폭력 속에서 농밀한 인간 묘사를 담고 있다. 그러한 취향은 감독이 달라진 <랑종>에도 ‘이어져’ 있다.
'영상 미디어를 다루는 공포 영화' 기법
감독 피산다나쿤은 장편 데뷔작 호러 영화 <셔터>가 태국의 연간 흥행 수입 No.1을 기록하며 일약 각광받은 인물이다. 이 작품은 일본인 영화감독 오치아이 마사유키의 할리우드 데뷔작 <셔터 인 도쿄>(2008)로 리메이크된 수작인데, 의외로 피산다나쿤이 (<셔터> 이후) 순수 장편 호러 영화를 찍은 건 오랜만이라고 한다. 그만큼 기괴함을 카메라에 담는 것에 대한 에너지와 집념이 영화 전편에 가득하다.
<셔터>와 <랑종>에는 ‘영상 매체’라는 공통점이 있다. <셔터>는 사진작가와 그의 애인이 친구의 결혼식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어떤 여성을 차로 치고 뺑소니한 뒤로부터 기괴한 사건에 시달리는 이야기다. 제목처럼 영화의 공포는 주인공이 현상한 사진에 여성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시작된다. 즉 ‘사진’이 공포의 매개체로서 등장한다.
한편 <랑종>에서는 사진 대신 동영상이 공포의 매개체가 된다. 무당을 찍는 취재팀의 영상에는 무엇이 찍혔을까. 한밤중 밍의 행동을 확인하기 위해 설치해둔 고정 카메라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인터뷰 가운데서 각각의 인물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영상 매체를 다루는 공포영화로서, 이 작품은 스토리텔링 기법이 더욱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어디까지나 공포영화라는 점을 자각하고 있는 피산다나쿤 감독은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규칙을 어기는 식으로, 일부러 큰 사운드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연출(점프 스케어)도 서비스로 집어넣었다. 하지만 가장 훌륭한 점은, 오히려 그런 효과에 일절 의존하지 않고서 ‘무엇이 찍혔고, 무엇이 찍히지 않았는가’만으로 무섭게 한 연출이다. 문제의 순간이 찍혀 있으면 무섭고, 찍히지 않았더라도 상상력이 작용하면서 무서워진다. ‘어쩌다 우연히 찍힌 것’처럼 보이는 심령 비디오풍으로 공들인 연출도 효과적이다. 영화 중반에 밍이 승용차 뒷좌석에 타는 장면에서 차창 쪽도 잘 보길 바란다.
리얼리즘을 중시한, 숨 막히는 인간드라마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온갖 공포 연출을 보여주면서 점점 가속해 나간다. 그리고 세심하게 설계된 퍼즐 조각들이 조금씩 맞춰지고 그 전모가 드러날 때마다, 등장인물과 관객이 ‘그렇게 되지 말기를’하고 원치 않는 쪽으로 이야기의 방향이 전환된다. 이 글의 첫머리에 이 영화를 가리켜 ‘지옥으로 돌진하는 롤러코스터’라고 형용한 건 그 때문이다.
<추격자>에서 <황해>, 그리고 <곡성>으로. 나홍진은 필모그래피에서 ‘절망’과 ‘불합리함’을 그려왔는데, 이 작품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피산다나쿤 감독의 여러 공포 연출 방식은 그러한 테마와도 찰떡궁합이다. 그런데 영화의 결말에 나오는 ‘너무나도 나홍진스러운’ 반전은 사실은 원안에 있던 것이 아니라 피산다나쿤 감독이 직접 생각해낸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두 사람의 무서운 재능이 결합한 시점에서 이 영화의 공포는 이미 보장돼 있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gol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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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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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xtmovie.com/movietalk/87074736
랑종 저는 딱 기대치만큼 좋았었어요
서늘하며 무서운 그 분위기가 참에 들었었어요
익무시사회랑 논아맥까지 3차까지 했었네요
오빠말하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