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테마이 (1986) 고샤 히데오의 범작. 스포일러 있음.
아는 사람들은 아는 사무라이 영화 거장이 고샤 히데오다. 말이 좀 어페가 있게 들린다. 거장이면 다들 알아야지 어째서 아는 사람만 아는 감독이 거장이 될 수 있는가? 너무 비대중적인 영화만 만들어서 그런가? 사실은 정반대다. 너무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어서 선뜻 고샤 히데오를 거장이라고 부르기 망설여진다. 고요킨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그 어느 걸작 사무라이영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거장의 영화냐 하고 묻는다면 좀 망설여지는 것이, 영화가 너무 대중친화적이고 감칠맛이 난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역시 거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무라이의 처절함과 비장함, 조직 내 충성해야 한다는 사무라이 철학 때문에 죄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괴로워하다가 자기도 죽어야겠다고 결심한 사무라이에게 속죄의 기회가 찾아온다는 그 절실함, 장엄한 풍광 묘사, 광활한 공간감과 생기발랄한 액션, 완벽한 편집과 살아숨쉬는 화면들, 완벽한 대가급 배우들의 명연기, 또렷하게 살아나는 캐릭터들의 개성과 존재감 -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거장성은 있으되 예술가연하는 자의식이나 작가주의, 예술가적인 철학같은 것이 없다. 비유하자면, 사무라이 영화의 하워드 훅스다.
고샤 히데오는 인텔리 출신이라서 이런 요소들을 균형감 있게 잘 구축해낸다. 고샤 히데오 감독의 영향을 받았다는 장철감독의
폭주하는 처절함, 비장성같은 영화는 고샤 히데오 감독 취향이 아니다. 그도 폭주하는 처절함, 비장성을 강조하지만, 어디까지나
균형과 절제가 뒷받침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 짓테마이는 고샤 히데오 감독 만년 작품이다. 그의 균형감과 절제미가 느슨해지고 풀어져버리고 말았다.
이야기는 오락가락, 개연성은 희미해져 버리고, 캐릭터들은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총체적 난국인 상황이다. 하지만 그래도 거장성이 느껴지는 범작이라는 데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거장이 만든 괴작 내지는 범작이지만, 평범한 감독이 잘 만든 작품보다 더 낫다.
영화를 보면서 1960년대 영화 괴담을 연상케 해서 이거 오마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오마쥬가 아니라 그 시대 감독이
1960년대 영화를 1980년대에 만든 것이다. 1980년대에 보아도 생생할 정도로 부활시킨 것이 아니라, 생명이 이미 끝난 것을
초라하게 재현해내는 느낌이다. 하지만 눈에 띄일 정도로 탁월한 부분도 보인다.
영화 줄거리가 하도 길어서 영화가 산으로 갔다 바다로 갔다 한다. 야스케라는 범죄자가 사형을 당하는 대신, 암흑 속의 법 집행인이자 암살자로 살아가게 되는 내용이 영화 초반 주된 줄거리다. 그의 고뇌, 그가 가족을 만들지만 자기 처지 때문에 가족을 버리게 되는 과정. 그가 전설적인 법집행 암살자로 활동하며 이름을 얻게 되는 과정 등이 길게 펼쳐진다. 당연히 누구나 야스케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다 자란 처녀인 자기 딸 오쵸를 만나게 된다. 야스케는 오쵸를 구하려다 자기가 죽임을 당한다. 오쵸가 이 영화 진주인공이다.
그러면 오쵸가 진주인공으로 끝까지 가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타케나카 나오토가 등장해서 강렬한 연기와 카리스마로 영화를 삼켜 버린다. 이 영화 다 본 다음 머릿속에 남는 것은 타케나카 나오토다. 이거 이래도 되나 모르겠다. 진주인공 오쵸를 희미하게 만드는 조연이라니. 타케나카 나오토는 이소룡 흉내를 내는 경찰간부로 나온다. 싸울 때만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하나하나가 이소룡 흉내를 내는데, 너무 잘 해서 웃음이 터진다. 이 영화는 아주 진지한 사무라이물 시대극인데, 패러디물에 코메디물이 되어 버린다. 아예 이렇게 끝까지 가면 모르겠는데, 타케나카 나오토는 오쵸에게 죽임을 당하고 영화는 다시 진지 모드로 끝까지 간다. 영화 실미도 중간에 뜬금 없이 코메디를 넣어놓고 통일된 영화 한편이 되길 바라는 격이다.
진짜 악당이 나오는 것은 영화 중엽과 결말 사이다. 그전까지는 야쿠자 두목과 야스케-오쵸 부녀 간 갈등과 투쟁이 주된 줄거리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진짜 악당은 대단한 권력자다. 진짜 악당은 권력으로 야쿠자 두목과 오쵸 모두를 억압하려 한다.
여주인공 오쵸의 무술실력은 실소가 나올 정도다. 리듬체조 선수 리본을 갖고 싸운다. 무슨 칼날이 숨겨진 무기같은 것이 아니라,
진짜 리본이다. 이것에 목이 감겨 질식해죽는 사람들은 무술의 달인들이라는 설정이다. 오쵸 역을 맡은 여배우는 무술 훈련같은 것은
전혀 안한 듯하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장점은 무엇인가?
박진감 있고 스케일이 아주 큰 남성적이고 거장풍인 선 굵은 사무라이영화 - 1960년대 전성기의 - 를 편린이나마 보여준다.
1960년대 거장이 오늘날 되살아나 1960년대 전성기 사무라이영화를 다시 만들어준다면 - 하는 소망을 갖고 있다면
그 영화가 여기 있다. 비록 전성기가 지난 모습이지만, 1960년대 전성기 사무라이영화 잔향이 여기 있다.
영화를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확 사로잡는 타케나카 나오토의 명연기도 굉장한 볼 거리다. 나는, 타케나카 나오토를 주인공으로
해서 사무라이영화를 만들었다면 걸작 수준에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형사 타케나카 나오토는 전에 존재하지 않는 유형의 탐정이다. 바로 똘끼가 너무 충만해서 어떤일을 할 지 모르기에
범인이 겁나서 잡혀준다는 유형의 탐정이다. 그런데 똘끼와는 별개로 탐정으로서의 추리력도 상당하기에 영화 끝까지 주인공이 될 줄 알았는데, 어이 없이 살해당해 퇴장한다. 감독의 의도가 뭔지 궁금해진다.
추천인 4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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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닮았죠. 너무 현대적으로 생겨서 좀 튀기도 합니다.
스틸만 봐도 독특한 필름 색감, 미술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