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 시네마 깎는 노인
벌써 탑건1이 나온지 35여 년 전이다. 헐리웃에서 영화를 찍어 파는 노인이 있었다. 탑건1 속편을 하나 만들어 가지고 가려고 찍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제작조건을 굉장히 까다롭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쉽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영화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안되겠거든 다른 거 만드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조건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찍어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찍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찍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비행 훈련한다 현장음 녹음한다며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고 나머진 CG넣으면 되는데, 자꾸만 더 찍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개봉 시점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찍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찍을 만큼 찍어야 영화가 되지, CG덮어씌운다고 영화가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볼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찍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개봉까지 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찍으시우. 난 안 찍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코로나 때문에 개봉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찍어 보시오."
"글쎄, CG를 넣으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영화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CG갈아넣으면 감흥이 사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숫제 전투기에 타고 태연스럽게 G기동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편집본을 보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찍는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필름이다.
코로나에 긴 촬영에 스트리밍 개봉까지 놓치고 한참 뒤에야 개봉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시네마를 해 가지고 시네마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조건만 빡세게 부른다. 영화관 밖에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항공모함 아일랜드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배우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잘생긴 표정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돌비 시사회에 와서 영화를 내놨더니 관객들은 제대로 찍었다고 야단이다. 집에서 보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영화들과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관객들의 설명을 들어 보니, CG를 떡칠해봐야 어짜피 티는 나고, 음향 편집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현장잠과 생동감이 안살며, 불필요한 대사나 가르침 따위는 없는게 낫다는 것이다. 결론은 요렇게 꼭 영화관에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벤허는 스턴트맨 사망썰까지 돌았었고, 30여 년 전 탑건만해도 진짜 전투기를 몰고 기름 짠내를 풍겼었다. 다크나이트는 진짜 트럭을 뒤집어 버렸고, 미임파에서는 배우가 빌딩을 기어오르기도 했었다.
그러나 요새는 CG를 써서 금방 만든다. 그러나 화질이 올라가면 금방 티가 난다. 그렇지만 요새 특별관 n회차가 아니면 보이지도 않는 것을 돈을 더 들여가며 실제로 찍을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음향만 해도 그렇다. 히트는 총소리를 실제로 사격한 소리를 그대로 녹음하였고, 레미제라블도 그 자리에서 녹음한 것으로 현장감을 더 했다고 한다. 집에서 OTT로 보아서는 그대로 녹음했는지 대충 후작업으로 입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누가 영화관에 오지도 않는데 실제 녹음을 할 이도 없고, 그걸 위해 돈을 몇 배씩 투자할 사람도 없다.
예전 제작자들은 흥행은 흥행이요 출연료는 출연료지만, 영화를 찍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장면과 음향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려 시네마를 만들어 냈다.
이 영화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영화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영화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바이크에 선글라스라도 선물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방한했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롯데타워를 바라보았다. 노을에 날아갈 듯한 빌딩 끝으로 비행운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비행운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영화를 찍다가 유연히 항모 끝에 노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Maybe so sir, but not today" 의 대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촬영장에 들어갔더니 파이기가 블루스크린 위에서 촬영팀을 괴롭히고 있었다. 전에 촬영 카메라를 전투기 좌석에 쑤셔 넣던 노인 생각이 난다. CG없는 스턴트를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화약터지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폭발왕 마이클 베이니 누런 광기의 매드맥스니 진짜 전동차를 쓰던 스카이폴이니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얼마 전 CG없이 스턴트 찍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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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쓰시는 분 부럽...
키야~~~ 끝내주는 패러디 소설이네요. ㅎㅎㅎㅎㅎㅎ
그러게요 방망이 깎는 노인 패러디를 이렇게 찰지게 하시다니ㅎㅎㅎ 저도 교과서에서 배운 세대입니다^^;;;;
하지만 키스도 CG로 하는걸요...ㅋㅋㅋ 농담입니다
공룡조교씬도 CG합성으로 때운대서 공룡배우들이 일못하겠다고 소주들이붓던데
그 노인이 화답합니다
감동을 주체할수가 없네요.^^
날로 기술 발전해도 이게 영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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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대박이네요!
전 왜 소설로 생각하고 배웠을까요
단편소설이라 하기엔 너무 짧긴하네요🤣
장인급 패러디였습니다 👍
4주차애 다시 또 박스오피스 1위애 올려준 우리 관객들도 멋집니다!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을 팀탑건에게 보냅시다 ㅎ
와...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하긴 무엇이든 손쉽게 빠르게 고민없이 하고싶어하는 세상에서 본래의 모습대로, 교과서적인 과정을 거친다는게 쉽지도 않고 유혹도 많고 확신도 적어졌죠
일개 연예인이 아닌 진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다운 영화라고 생각했고요
다행히 저뿐만 아니라 많은분들이 그에 돈쭐로 답해주고 있네요
노인이라 해서 긴가긴가..
기가 막히게 치환된 디테일에 감탄하고 소소한 유머에 키득거리며 노인의 옹고집 장인정신에 감동받다가 매드맥스의 불화염… 다크나이트 전복씬… 히트의 총소리를 다시 한 번 떠올리며 그래 그것이 시네마지… 가슴이 뜨거워지다 블루스크린 앞에서 촬영팀 괴롭히는 파이기에서 기냥 현웃 터졌네요ㅋㅋㅋㅋ
영화 본 다른 친구들에게 공유할게요! 제 점수는요!⭐️⭐️⭐️⭐️⭐️
소설이 너무 감동적 ㅠㅠ 작가님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