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어 일본 칼럼 하나 - 매우 긴 글
출처: https://cinema.ne.jp/article/detail/49039
[영화 칼럼] 2022년 2월 21일
일본영화격동의 1997년을 매듭짓는 한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게 막대한 영향을 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
글쓴이: 스기모토 호타카(영화 블로거, 기고가, 1981년생, 일본영화학교 출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가 일본영화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상업영화 데뷔 이전부터 대단한 재능이라고 평가받아온 하마구치 감독이지만 이로서 명실상부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식되겠군요.
하마구치 감독은 동경예술대학 출신으로 학생시절에 하마구치 감독을 지도했던 이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입니다. 구로사와 감독은 이른바 하마구치 감독의 스승과 같은 존재로 실제로 많은 인터뷰에서 하마구치 감독은 구로사와 감독으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대표작이자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계기가 된 것이 1997년 작 <큐어>입니다. 도쿄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야쿠쇼 코지)를 수상하고 특이한 내용과 영상 감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 여기서부터 세계적인 명감독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뿐 아니라 이후의 영화감독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는 작품으로 일본 영화 역사상 중요한 작품으로 일컬어집니다. 이 기사에서는 그런 <큐어>의 매력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합니다.
□ 평범한 사람이 일생생활을 보내는 것처럼 살인을 저질러 버린다.
어느 날 여성이 참혹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피해자의 목덜미가 X자로 베인 엽기살인사건으로 다카베 겐이치 형사가 조사를 시작합니다. 이 사건의 범인은 곧 체포되지만 살인 동기도 살해 순간에 대해서도 불명확하게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카베는 같은 형태의 살인사건이 잇따르는 데서, 일련의 사건을 관련지어 조사하게 됩니다만 범인도 피해자도 제각각이라 어떤 접점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친구인 정신분석의 사쿠마도 두 손을 들어버린(포기한) 상황입니다.
그 후에도 같은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고 다카베는 가해자들이 살해 행동 전에 한 명의 인물과 만난 것을 알아냅니다. 그 인물은 기억에 장해를 가진 마미야하는 젊은 남자로 그는 자신의 이름이나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마미야는 언제나 ‘당신은 누구야?’라고 만나는 사람에게 질문을 계속합니다. 누구와 이야기를 해도 이야기의 초점이 맞지 않는 마미야이지만 그와 접촉한 인물은 왠지 그 후 동기가 불명확한 살해행동(살인)에 이릅니다.
다카베는 결국 마미야와 대면하지만 그는 속을 전부 꿰뚫어보는 것처럼 다카베가 부인의 정신장해를 괴롭게 느끼고 있음을 지적하고 다카베를 농락하여 사태는 예상외의 방향으로 굴러가게 됩니다.
이 작품의 매력은 어제까지 평범하게 살고 있던 사람이 돌연 이유도 없는 살인을 저지른다는 점입니다. 종래의 호러 영화나 사이코 서스펜스 영화에서는 엽기적인 인물이 엽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공포를 느꼈지만 이 작품에서는 일생생활을 담담히 보내는 사람이 뜬금없이 일상적인 행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을 공포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이 작품이 공개·제작되었던 1997년의 시대성을 크게 흡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97년이라고 하면 <사카키바라 세이토>라고 이름을 밝힌 14세 소년이 불확실한 동기로 초등학생을 연속 살해한 사건이 사회를 발칵 뒤집은 해입니다. 그 이외에도 동기가 불명확한 소년범죄가 연속해서 일어나고 거기다 수년 전에는 옴 진리교 사건 등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범죄가 뉴스를 떠들썩하게 하던 시대였다.
[참고] ‘사카키바라 세이토’는 1997년 고베 연속 아동 살인 사건에서 범인이 자신의 이름이라고 밝힌 것으로 ‘사카키바라’는 ‘술 도깨비 장미’라는 뜻이다. 범인의 실명은 아즈마 신이치로.
이 사건을 소개한 우리나라 신문 기사 "게임을 시작하지"…'술·도깨비·장미'의 아동 살인사건
https://www.newspim.com/news/view/20181102000526
정말이지 이상한 사람이 살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행위의 연장선상에서 살인을 해버린다는 공포를, 구로사와 감독은 컷을 나누거나 끊지 않고 한 번에 길게 촬영한 영상으로 강조했습니다. 가장 알기 쉬운 것은 파출소에 근무하는 경관이 동료를 죽이는 장면. “순찰 다녀오겠습니다.”라며 자전거를 타려는 동료를 배웅하고 파출소의 일상근무로 풀 뽑기인가 무언가를 한다고 생각했더니 마치 컨베이어 시스템처럼 돌연 총을 쏘는 것을 원커트로 촬영하고 있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어도 전혀 언제 살의를 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일상생활 중에 살인이 평범하게 섞여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 시대뿐 아니라 영화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왕성한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공개 당시 흥행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현재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대표작임과 동시에 90년대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평가에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뒤에 오는 영화작가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은 출세작 <살인의 추억>을 제작할 때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보이지 않는 살인마의 캐릭터를 <큐어>에 나온 마미야를 참고해서 완성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상영시간 5시간을 넘는 걸작 <해피 아워(2015)>에서 마미야처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전도사 같은 인물로 ‘우카이’라는 캐릭터를 등장시킵니다. 이 ‘우카이’라는 캐릭터는 <큐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마구치 감독은 말합니다. <큐어>에서는 마미야와 접촉했던 사람들이 차례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으로 변화합니다만 <해피 아워>에서는 우카이의 기묘한 워크숍에 참가했던 등장인물들이 차례로 평범한 일상을 파괴하는 듯한 행동을 하고 사람들에게 숨겨져 있던 깊은 갈등들이 공공연히 드러낸다는 장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미야를 보고 있으면 최근에는 이상한 녀석이라고만 여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차례로 마미야와 접촉한 사람이 이상해지는 모습을 목격하면 마미야가 물어보는 “당신은 누구야?”라는 질문이 무척 절실한 것임을 느끼게 됩니다. 과연 우리는 자기 자신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 걸까요? 어쩌면 실제로는 자신의 본성도 무엇도 아직 모르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에 사로잡혀 자기의 존재가 불안정한 것 같은 근원적 공포를 느끼는 겁니다.
□ 1997년은 일본영화의 터닝 포인트
이 작품이 공개된 1997년은 일본영화에 있어 무척 중요한 해입니다. 2022년 하마구치 감독이 아카데미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쾌거를 이루었지만 1997년에는 여러 편의 일본영화가 국제 영화제에서 주요상을 수상하고 일본영화에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먼저 기념할 만한 50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우나기>가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합니다. 더욱이 당시 27세였던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모에노 수자쿠>로 역사상 최연소 황금카메라상(신인감독상)을 수상하지요. 베니스 국제 영화에서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하나비>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합니다.
90년대는 일본영화의 침체기로 일컬어집니다. 흥행 수입은 서양 영화보다 한참 아래이고 과거 최저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자주제작(상업적 제작에 반대되는 말)이나 V시네마(비디오 전용 영화), 독립영화의 대두 등의 영향으로 다채로운 창작활동이 퍼지고 많은 작가의 재능이 꽃을 피우는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두각을 나타낸 감독은 구로사와 기요시를 비롯하여 아오야마 신지, 미이케 다카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와이 슌지 등 현재 일본영화를 대표하는 감독들이 여러 명 있고, 그들의 영향으로 다음 세대가 크게 자극을 받아 지금 하마구치 류스케나 후카다 코지(원문에 있는 深田浩司는 한자를 잘못 쓴 듯), 미야케 쇼 등 새로운 감독의 출현으로 이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으로 시선을 돌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가 <E.T.>의 기록을 앞질러 역대흥행성적 1위의 대히트를 기록하고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신세기 에반게리온> 극장판 2부작이 공개되어 사회 현상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애니메이션이 영화 흥행의 핵심이 되었습니다만 97년은 바야흐로 애니메이션 시대가 시작되는 계기가 된 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재 90년대 일본영화를 재평가하기 위해 국립영화 아카이브에서는 <1990년대 일본영화-약동하는 개인의 시대>라는 특집상영을 개최하여 <큐어>를 포함한 90년대의 대표적인 일본영화를 특집상영하고 있습니다.
구로사와 감독의 <큐어>는 일본영화계에 있어 격동의 해였던 97년을 매듭짓는 12월 27일에 공개되었습니다. 후에 대두된 영화감독들에게 커다한 영향을 주었고 새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위대한 사이코 호러(심리 공포) 작품입니다.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은 꼭 이번 기회에 감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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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에 큐어를 보고왔고 다크맨님이 감독님 인터뷰한 글 읽고나서 이걸 보고 나니 제대로 복기한거 같아요
90년대말 일본 영화, 애니들 보고 충격받은 기억 납니다.
확실히 지금이 그때만큼의 활력은 없네요..
상영 횟수가 적어 시간 잡기가 어려운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ㅠㅠ
당신은 누구입니꺜ㅋㅋㅋ
톡 투 미 구다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