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를 보고 (스포O)
우수한 리메이크작인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연출한 에드워드 버거 감독의 신작이자 로버트 해리슨이 쓴, 동명의 원작을 영화화한 <콘클라베>를 보고 왔습니다.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했으며,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아쉽게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각색상 부문만 수상했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하지 못했다고 해서 꼭 우수하지 못하다는 건 아니니까요.
교황청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평소 교황청에 대한 관심이 있으시거나 <천사와 악마>, <두 교황> 등 교황 관련 영화들을 보셨다면 배경지식이 전제가 되어서 관람에 용이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그럴수록 영화가 흥미로우실 것이고요. 그렇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고, 저 또한 그렇지 못한데, 그렇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낯선 개념과 배경이더라도 그게 영화에 거리를 두게 하기보다 오히려 소재의 특수성을 삼아 호기심을 갖게 하고, 영화 자체만으로도 쉽게 이해가 갑니다. 오프닝부터 교황의 죽음으로 긴장감이 흐르고, 거두절미하고 ‘콘클라베’ 등 가톨릭에서만 쓰는 낯선 개념들을 꺼내 관객의 집중도를 한껏 높인 채 이야기의 판을 펼치는 화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의 각본이나 촬영도 좋지만 특히 편집이 상당히 인상적이고 효과적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120분 간 정적인 호흡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 쇼트와 쇼트를 병치시키는 편집이 그 쇼트 간의 연결이나 타이밍에 있어서 묵직한 긴장감을 유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여러 인물들이 정면을 응시하는 쇼트나 신부들이 담배피는 쇼트, 담배꽁초 쇼트 등의 병치나 후반부 투표하는 쇼트와 폭발하는 쇼트를 붙여서 그러한 정서적인 효과를 빚어내고 있죠. 겉으로는 침묵이 흐르지만 영화 내부에는 팽배한 긴장감이 흐르는 영화의 성격에 맞게 편집이 스릴러 장르처럼 되어 있어서 더욱 효과적입니다. 영화를 보고나니 <아노라>도 충분히 좋은 영화지만 <콘클라베>가 오스카 편집상을 수상하지 못한 게 크게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진행되는 콘클라베(교황 선출)라는 소재는 얼핏 자발적으로 행해지는 스티븐 킹의 ‘언더 더 돔’같기도 해서 여러 교황 후보자들의 인간군상과 모략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과장을 좀 보태면 유혈이 낭자하거나 액션이 펼쳐지지 않을 뿐이지 사실상 <헝거게임>이나 <배틀로얄> 같은 서바이벌이나 데스게임과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초반에는 여러 인물들이 소개되어서 낯설 수 있지만 영화가 인물이 타인을 대하는 짧은 장면만으로도 그 인물을 효율적으로 설명하고 있고 한 시퀀스 마다 인물 하나 하나의 서바이벌 아닌 서바이벌이 다뤄져서 이해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에드워드 버거 감독은 이러한 콘클라베 속 액션보다 주인공인 ‘로렌스’의 리액션에 더욱 집중합니다. 초반부터 레이프 파인즈가 눈물 흘리는 타이밍까지 고려해 촬영하거나 콘클라베의 흐름 속 어둠이 그득한 풀샷에 대비해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혼란스러운 심리에 집중하고 있으니까요. 또 그런 ‘로렌스’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레이프 파인즈가 절묘하게 연기해내고 있기도 합니다.
줄곧 야심과 소명 사이에서 팽팽하게 외출타기 하는 것 같은 ‘로렌스’의 뒤를 바짝 붙어 있는 듯한 이 작품의 각색도 정말 잘 되어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주변 인물들에게는 야심가로 의심 받지만 관객에게는 ‘로렌스’의 투표용지를 명확히 보여줘서 그의 심리변화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끝없이 교회의 미래를 의심하고 자신마저 의심하는 ‘로렌스’의 반응에 집중한 각본 덕에 미스터리가 동력이 되어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이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시퀀스 분배나 선거의 판도가 뒤집히는 타이밍, 선거의 결과를 드러내는 방식 등에 있어서도 영화적으로 잘 각색되었고요.
- 별점 : ★★★★
추천인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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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적으로 수작인데 오스카를 하나만 받은 건 좀 아쉽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