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키스>를 보고 (스포O)
<꽃다발같은 사랑을 했다>, <브로커> 등 각본을 쓰고 <괴물>로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사카모토 유지 작가의 신작인 <첫 번째 키스>를 보고 왔습니다. 수입 일본영화인데도 자국 개봉일과 한달 남짓 차이가 안 나는 드문 경험인데 빠르게 만날 수 있어서 좋았네요. 국내에서는 메가박스 단독 상영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바꾸려 고군분투하는 로그라인은 타임슬립 장르에서 빈번하게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프온리>, <상견니> 등이 그렇죠. 그리고 어김없이 주인공은 과거의 상대와 사랑에 빠지는 등 클리셰가 있겠고요. 다만 조금의 차이점으로 큰 차이점을 빚어내는 부분이 있다면 현재 두 남녀주인공의 관계입니다. 초반부터 남주인공인 스즈키 카케루의 죽음으로 시작한 이 영화의 출발점은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습니다. 남녀주인공을 애틋한 연인이나 부부관계로 설정하지 않고 권태기를 겪다가 이혼서류에 도장까지 찍은 관계임을 꽤나 세밀하게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남편의 양말을 신은 여주인공 칸나의 발을 클로즈업해서 시작해 카키피 속 과자와 땅콩, 따로 먹는 밥, 각방을 쓰게 되면서 배달시킨 침대,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타협해 입게 된 사회 야구인 유니폼, 회식하느라 늦은 결혼기념일 식사 등으로요. <결혼이야기>만큼이나 현실적인 시퀀스가 이야기의 현실감과 공감을 부여합니다.
그렇게 최대한 현실적인 부부의 이야기를 초반부에 깔아놓고 타임슬립의 판타지와 로맨틱 코미디를 더하는 식입니다. 그게 꼭 가장 현실적인 주제를 영화라는 마법을 통해 동화적인 판타지로 치유하는 것 같이 다가왔네요. 현실을 면밀히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영화가 있기도 한 반면, 이렇게 현실에 발을 붙인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사실에 기반한 허구의 이야기로 관객과 유대감을 나누고 그들을 다독이는 영화도 있는 거죠. 보편적인 주제와 감성을 가졌고 <어바웃 타임>처럼 독창적인 타임슬립 아이디어를 보여주진 못하지만 따뜻한 온기를 가진 이야기랄까요. 장르나 이야기는 다르지만 <엣지 오브 투모로우>와 같은 타임슬립의 활용도 있고, 나비효과 같은 패러덕스도 어김없이 다뤄지는데 클리셰의 고루함보다는 장르의 문법을 동화같은 결로 흡수해 활용하고 있습니다.
꽤나 소소한 부분들에 있어서 디테일한 독창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타임라인을 밀푀유에 비유한다거나 카케루가 사망하는 타임라인이자 남녀주인공의 인연을 붉은 실로 묘사하고 다른 경우의 수는 다른 색깔의 실로 묘사하는 시각적인 연출한다거나 나비효과를 파악하는데 쓰이는 옥수수 삶기나 빵집 등이 그렇습니다. 타임슬립의 흔적을 증명하는 소품으로 폴라로이드 사진을 사용해 팬시한 분위기를 더하고요. 작가가 타겟팅한 관객의 니즈도 명확히 파악해 로맨스 장르에서 관객이 설렐 만한 포인트도 명확히 설정해 저격합니다. 가령 여주인공이 타임슬립을 거듭해서 남주인공의 마음을 회유하려고 고군분투하거나 같이 빵집을 차리자는 말을 들은 남주인공이 두근거리게 하지말라고 마음을 표시하는 등 귀여운 장면들이 있습니다. 또 그런 장면의 배경으로 웨이팅이 상당한 카키고오리 맛집이나 케이블카 등 장소를 삼은 뒤 결혼에 대한 견해와 같은 소소하지만 현실적인 대사도 인상적입니다. 켜켜이 쌓이는 일상의 소중함을 말하는 영화에서 카케루의 직업군을 과거의 축적을 중요하게 다루는 공룡 관련 직업군으로 설정한 것도 영화의 핵심에서 비롯되어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쓰지 않고요.
카케루의 사망이나 남편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칸나의 드라마를 응축했다가 코믹 릴리프로 극의 긴장감을 이완시켰다가 후반부 다시 이야기에 집중하는 등 에너지의 분배도 전략적으로 짜여있습니다. 상실의 현재는 겨울로, 재회의 과거는 여름으로 대비시키고 아지랑이를 카메라로 담고, 계절을 명확히 구분하는 다양한 의상 등 계절감으로 감정을 묘사하기도 합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 같은 화면의 질감이 영화의 판타지를 더욱 동화적으로 만들어 온기를 더해주기도 하고요. 서로 좋은 점을 찾는 건 연애고 서로 결점을 찾는 건 결혼이라는 결론으로 도달되는 현실에 있어 이 영화에서는 타임슬립보다 계속해서 설레고 싶고 사랑하고 싶어서 한 결혼의 유지가 판타지로 보이기도 합니다. 후반부 긴 분량을 투자한 호텔에서의 대화장면이나 카케루의 편지 시퀀스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유사한 결론이지만 그 판타지가 유효하네요.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이 디테일이나 대사, 리듬감이 좋고 대중적인 화법도 좋다고 생각이 드는데 츠카하라 아유코의 연출이 각본에서 강조하는 장면을 충실하게 카메라로 담아내는 장면도 있는 반면 결혼식 같은 장면의 앵글에서는 왜 그렇게 찍었을까 의구심이나 아쉬움이 남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이끌고 드라마와 코믹 릴리프 모두를 담당하는 마츠 다카코는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현실적인 남편과 여심의 판타지를 모두 연기하는 마츠무라 호쿠토는 로맨스 영화에서 확실하게 반짝거립니다.
3년 기다린 만두가 이제는 타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조금 이르지만 작품성과 무관하게 올해 본 영화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상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 별점 : ★★★★
추천인 4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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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갠적으론 미키17보다 좋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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