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시빌 워(civil war, 2023) / 알렉스 갈랜드
<독수리 내쫒기>
사진의 역사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논쟁적 사건은 1993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수단의 굶주린 소녀일 것이다. 움크린 아이의 뒤로 아이의 죽음만을 기다리는 독수리의 모습은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킬만큼 충격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난했던 것처럼 그가 사진을 찍는 대신 독수리를 쫒아야 하는 것이었을까. 이 불안한 이미지는 취재 윤리와 사회 윤리의 딜레마를 재점화했다. 사회윤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케빈 카터가 사진을 찍는 대신 독수리를 내쫒아야 한다고 비난했고, 그에 맞서 취재 윤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당장 독수리를 내쫒고 아이를 구하는 대신(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진을 찍은 후 케빈 카터는 독수리를 내쫒고 아이를 구했다고 한다) 사진으로 그 실상을 알려 공론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수단의 굶주린 소녀가 일으킨 파급력을 생각하면 현재는 후자가 더 지지받는듯 하다. 알렉스 가랜드의 시빌 워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파급력은 별론으로 하고, 사진-이미지의 효용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재밌는 점은 알렉스 가랜드가 인류의 역사에서 수없이 많았던 전쟁 대신 아직 발발하지 않은 미국의 내전을 소재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그가 그동안 SF에 천착했던 것도 연관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대체역사는 카테고리상 SF로 분류된다) 그것보다 리 스미스라는 인물을 통해 말하고 그리고 싶었던 분명한 세계가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리는 종군기자로써 수많은 전쟁에 참여해 보도한다. 그녀는 그 행위를 '조국에 보내는 경고'라고 정의한다. 그녀는 독수리를 내쫒는 대신 능력이 닿는대로 '수단의 굶주린 소녀'를 찍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한가? 전쟁의 참상을 모두 알고 있는, 어쩌면 가장 잘 알고 있는 미국은 수많은 리 스미스들의 경고를 무시한 채 결국 내전으로 접어든다. 참상의 현장에서 취재 윤리와 사회 윤리는 양자일택의 선택일 수 밖에 없다. 그녀는 촬영하거나 내쫒는 두 가지 경우의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평생동안 촬영하는 것을 선택했던 사람이다. 바꿔 말하자면 독수리를 내쫒는 것을 평생동안 배제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는 미국의 내전을 촬영하는 것이 더 이상 하나의 이미지의 효용을 증명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닐 수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들기 시작한다.
반면에 수습기자 제시는 리 스미스의 이항대립 성격을 가진다. 제시는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는 리와 다르게 필름 카메라로 촬영하고, 필름 현상을 한다. 리가 디지털 카메라의 촬영된 이미지를 몇 번의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간단히 삭제할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필름으로 촬영된 이미지들은 손쉽게 지울 수 없는 심리적 저항감이 있다. 이제 막 취재 윤리를 배우는 수습기자라고 하기에 제시는 너무나도 고전적인 사진기자이다. 그녀의 셔터에는 망설임이 없고 오로지 '결정적 순간'만을 위해 복무한다. 너무나도 두려운 동시에 인생에서 가장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그녀는 현실의 진상을 알릴 수 있는 계몽의 이미지를 포착하기 위한 취재 윤리의 화신이 된다.
'수단의 굶주린 소녀' 은 후반부에 다시 반복된다. '내가 죽는 순간에도 나를 찍을 건가요?' 라는 제시의 질문에 화답이라도 하듯 후반부에 리는 무리하게 촬영을 하는 제시를 밀쳐내고 대신 죽음을 맞이한다. 제시의 질문에는 '나를 구하는 대신'이라는 문장이 제거된 불완전한 문장이라는 사실을 리는 알았을 것이다. 그녀는 독수리와 아이를 촬영하는 대신 아이를 구하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것을 촬영하는 제시. 제시는 이미지를 믿는다. 알렉스 가랜드는 리보다는 제시에 가까울 것이다. 그는 제시처럼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이미지를 생산하지도 않지만 리 처럼 무기력에 빠진 채 이미지를 삭제하지도 않는다. 마지막 시퀀스가 죽은 대통령과 그를 사살한 군인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취재를 끝낸 조엘이 20세기 초 정교한 제작 사진의 형식으로 자세를 취한 것, 그리고 그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제시가 그 이미지로 촬영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미래에게 보내는 또다른 경고장이다. 그는 내전의 원인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거나, 내전의 갈등 상황에서 정치적 결정을 하거나, 내전 당사자를 윤리적으로 비난하는 식으로 쉽게 봉합하지 않는다. 그저 현실의 이미지를 포착하고 판단을 위한 자료를 발송한다. 리 대신, 다시 한 번.
좋은 리뷰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