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타 (2025) 586들의 국제시장. 스포일러 약간.
송중기가 콜롬비아에 가서 마약조직 두목이 되네 마네 하는 헛소리가 나와서
걱정했는데, 그런 영화가 아니다.
IMF사태가 터지고 당시 젊은 시대가 어떻게 살기 위해 몸부림쳤는가 하는 이야기다.
의외로 디테일에서 정확한 영화였다.
IMF사태가 터지고 송중기 가족이 콜롬비아로 이민 온다. 한국에는 더 이상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등장인물 말마따나, 있어 봐야 좃밥밖에 더 될 것 없다.
송중기는 IMF사태 이전까지는
"단군 이래 최대 축복받은 세대"라는 별명을 갖고 (당시 기준으로) 호사를 누리던 세대다.
IMF 이전까지는 사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송중기에게 안락한 생활을 마련해주던 아버지는,
IMF 사태가 터짐과 동시에 믿을 수 없는 무능력자로 전락한다.
"너 아빠 믿지? 아빠는 이렇게 주저앉지 않을 거다."같은 말만 반복하는 아버지는
도박에 알콜중독에 불륜까지 저지르며 망가지고 만다.
IMF사태가 터지면서 자기의 생활기반을 모두 잃은 송중기는
타의에 의해서 살벌한 콜롬비아로 와서 혼자 남겨지게 된다.
아버지가 저렇게 무책임한 상태가 되니, 어떻게든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
10만원만 주면 시카리노가 총을 들고 암살을 하고, 무장강도가 툭하면 총을 쏘고, 도시 곳곳이 부정부패에 물든
이 지옥의 한가운데에서,
호주머니 속에 한푼도 없는 송중기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친다는 내용이다.
당시 IMF사태를 겪었던 사람들에게는 생생한 기억을 불러 일으킬 법하다.
영화 제목이 "보고타:기회의 땅"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당시 우리나라는 기회라는 것이 사라진
나라라고 믿어졌다는 뜻인데, 정확한 사실이다.
부패한 공무원의 딸과 결혼해서 권력의 말단이나마 차지한 박사장이 한인상권을 지배한다.
대우자동차 콜롬비아지부에 왔다가 IMF로 대우자동차가 망하자 콜롬비아에 주저않은 수영이라는 사람이
박사장에게 도전하는 젊은 야심가다. 이 두 거물들이 꽉 잡고 있는 콜롬비아 한인상권에서
송중기는 어떻게 살아남아서 권력의 사다리를 기어올라갈 수 있을 것인가?
탱자탱자하고 경제발전의 과실을 누리던 586세대가
갑자기 지옥에 떨어져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상황의 생생한 기록이다.
(이 젊은이들이 IMF사태 이전 얼마나 탱자탱자 살았는지는 많은 80년대 영화들에 나와 있다. 이들이 갑자기
보고타의 송중기로 급전직하하였으니, 얼마나 하늘이 무너졌겠는가? 콜롬비아에 있었든, 우리나라에 남아있었든, 이들이 겪어야 했던 상황은 다를 바 없다.)
이 영화는, 포장이나 드라마틱하게 과장하는 것이 거의 없다. 심하게 말하자면, 인터넷 게시판에서
교포들이 올리는 한인사회 비하인드 글 정도 수준이다. 그만큼 스케일이 작지만 동시에 아주 현실적이기도 하다.
동대문시장에서 옷을 떼다가
밀수해서 콜롬비아시장에 비싸게 파는 사람들 간에 벌어지는 다툼이나 사건이 주내용이니까.
"그것이 알고 싶다" 수준도 못되는 사건들로 영화가 대부분 채워진다.
하지만, 이것은 장점도 된다. 영화적 과장이나 괜히 어깨에 들어간 힘때문에 피식할 일이 없으니까. 현장의 기록 느낌도 든다.
그리고, 송중기의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면, 송중기가 겪는 상황이나 위기가 충분히 흥미진진하다.
IMF사태라는 사건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지는 상징성이 크기에,
그것을 충실하게 그린 송중기 캐릭터는 아주 상징적이고 거대한 캐릭터다. 그리고, 이 영화가 그리는 사건도,그 의미가 아주 크다. 이 영화는 거대한 영화다.
오늘날 관객들은, 대부3에서 마피아조직을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겠다는 알 파치노의 이야기 수준의 거창한 이야기에 길들여져 있다.
이 영화에서 송중기는 훨씬 더 소박한 꿈을 꾼다.
처음 꿈은 "살아서 한국에 돌아가야겠다" 였다. 이 꿈은 나중에 "여기서 살아남아 부자가 되어야겠다"로 발전(?)한다. 마지막에는 "밀수와 불법에 바탕을 둔 한인상권을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겠다" "쇼핑몰을 세우겠다"는 꿈을 꾼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방유지 정도 되겠다 하는 꿈이다.
하지만, 지금 관객들이 여기 만족할 수 있을까? 나는 충분히 만족하였지만 말이다.
감독이 각본을 써서 영화로 빛을 보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아마 원래 영화에서는
굉장히 많은 디테일들과 풍성한 사건 묘사들이 있었을 것이다. 원래는 송중기를 둘러싼 대하소설 레벨의
영화일 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주 많은 수의 흥미로운 등장인물들이 여기 나온다.
아주 많은 주제들이 나오고. 역사적 함축성도 풍부하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하고 상징적인 사건에 대한 풍부하고 충실한 기록이 되었다면, 이 영화를
주저없이 걸작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영화를 보건대, 충분히 그런 영화일 가능성이 있다. 만일 더 긴 감독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말이다.
사실 이 영화는, 넷플릭스 드라마 12부작 정도가 더 잘 맞는 것이 아닐까 한다.
** 영화에 대해서는 아쉬운 것이 있다 정도이지, 왜 이렇게 만들었지 하는 것은 없다. 잘 만든 영화다. **
** 송중기 연기에 대해서는 더 할 말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생각이다. 남성적이고, 날 것 그대로의 연기를 보여준다. 작은 무대보다는 이런 큰 스케일의 대하드라마에서 생명을 갖는 진짜 대배우 스타의 퀄리티를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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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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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도 드라마 같군요.
하지만, 드라마로 만들면 이야기의 포텐셜을 더 잘 살릴 수 있었겠죠.
드라마가 더 어울렸을 스토리....
인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