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승>을 보고 (스포O)
전날 국가 상황이 안 좋아서 새벽까지 뉴스 기사를 살펴보는 통에 잠을 못 자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 미룰까 하다가 보고 왔습니다.
<페어러브>, <배우는 배우다> 등 연출하시고, <압꾸정>, <거미집> 등 각본을 집필하신 신연식 감독의 신작 <1승>을 보고 왔습니다. 처음 크랭크인 기사 때까지만 하더라도 <국가대표>나 <리바운드> 같은 스포츠 드라마에 가까운 톤일 줄 알았는데 마케팅이 시작되고나서 예상과 달리 활달한 코미디 톤으로 보여 퍽 당황하긴 했습니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송강호 배우의 능청스러운 코미디 연기로 영화를 가볍게 열면서 시작합니다. 왕년의 영광이랄 것도 없는 배구선수 출신 ‘우진’이라는 인물을 메인으로 영화가 전개됩니다. 유아 배구교실에서 애들 장난으로 그나마 있던 트로피가 부러지는 상황이 연출되기까지 할 정도로 영화는 웃프게 루저를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곧바로 나오는 박정민 배우도 익살맞은 코미디 연기로 송강호 배우와 합을 맞춥니다. 어느덧 서너편의 영화에 연기 경력을 기록한 장윤주 배우도 자연스레 녹아드는 데 성공하고요.
박정민 배우가 익살맞게 연기를 잘 해주긴 했지만 그가 연기한 ‘정원’이라는 인물은 너무 컨셉츄얼에서 영화를 지나치게 인공적으로 만듭니다. 우스꽝스러운 현대 사회의 쇼비즈니스로 대변되는 인물임은 맞지만 FA 시장 등 말장난에 가깝게 처리하는 등 행동이 초반부터 영화를 붕뜨게 하는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김우진’이라는 인물의 과거 사연과 과거 배구 장면 등 플래시백을 아역 배우가 연기하거나 디에이징 기법을 쓰는 게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 연출해서 신선한 동시에 같은 소재를 사용한 애니메이션 <하이큐>에 비해 작화에 아쉬움이 남긴 합니다.
중반까지 붕 뜬 코미디로 전개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전형적인 루저들의 성장기를 그린 성장영화입니다. 주인공인 ‘우진’이라는 인물이 과거 배신 당한 상처를 가진 채 루저로 살아가다가 대학교 팀으로 가는 발판으로 핑크스톰의 감독직을 잠시 이용하려고 했으나 끝내 핑크스톰에 녹아들고 감독으로서, 성인으로서 성장해나가는 게 메인 플롯이니까요. 배구를 소재로 삼았지만 꼭 배구가 아니라더라도 ‘핑크스톰’은 대중의 비난에 자존감이 하락한 스포츠 팀으로 봐도 되고, 더 넓게 세상의 잣대에 자존감이 하락한 청춘들로 은유됩니다. 그건 시종 말장난 같던 영화가 중반부터 스포츠 영화와 성장 영화의 골격에 맞춰가면서 직접적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배구 영화인데 사실 배구 경기 장면이 그렇게 긴장감이 넘치거나 정력적이라고 보긴 어렵고 때때로 배구공의 CG티가 심하게 나는 장면도 더러 있습니다. 그나마 러닝타임의 70분 즈음에 나오는 매치포인트 씬에서의 원 컨티뉴어스 쇼트 연출이 좋았네요. 새삼 종목이 다르고 장면의 목적은 다르지만 <챌린저스>에서의 경기 연출이 얼마나 잘 되었나 싶기도 하더군요. 대신에 <1승>은 경기의 흐름보다 선수와 전략을 이용한 시츄에이션 콩트나 이야기 진행에 경기를 활용하는 것에 집중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탈주>가 그랬든 <1승> 역시 ‘핑크스톰’ 선수들에 빗대어 청춘찬가에 대한 알레고리를 여실히 드러내는데 더 나아가 배구 감독인 주인공을 주축으로 한 만큼 좌절한 중장년의 성장영화인 동시에 따스한 위안을 건넵니다. 아쉬운 건 선수진이 꽤 되는데 딱히 눈길이 가는 캐릭터가 따로 없고 영화도 더 깊게 매력적인 캐릭터를 파고 들지도 않는 인상입니다. 그렇다보니 주조연 출연진들 모두 캐릭터로 보게 되지 않고 배우의 기존 이미지를 극 중 캐릭터에 끌어 오게 됩니다. 카메오로 출연하는 조정석 배우까지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강호 배우는 배우로서 야심이 가득한 캐릭터 선정이 아니고 새로운 배역도 아님에도 물 흐르듯 힘을 빼고 펼치면서도 종종 연기 테크닉에 감탄하는 순간이 더러 있네요. 참고로 카메오로 출연하는 김연경 선수가 배구 영화라는 점에서 힘을 실어주기도 합니다.
- 별점 : ★★☆
아마존 활명수보단 훨 많이 웃었던거 같아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