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디에이터2 : 막시무스 레거시? (스포있음)
글래디에이터2 봤습니다.
그리 나쁘지 않았고 재미있게 보았습니다만,
리들리 스콧의 다른 속편영화들과 비슷한 아쉬움을 느꼈어요.
프로메테우스나 에이리언:커버넌트에서도, 자신이 만든 세계를 좀더 자세히 그려내고 싶어하는 건 알겠는데
전편에 대한 향수나 기대를 저버릴 수 없기에 약간씩 첨가하다 보니, 결국은 애매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게 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독님이 로마시대의 세세한 모습과 시대상, 그리고 고대 전투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내고 싶다는 야심이 느껴졌지만
결국에는 전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계로 인해 우왕좌왕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나 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전편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는데 그게 그리 자연스럽진 않았어요.
마치 본이 등장하지 않지만 계속 그 그림자 안에 머무르려 애쓴 '본:레거시' 같았습니다.
배우들 보는 재미가 아주 좋았습니다.
가장 인상깊었던 건 역시 '덴젤 워싱턴'인데요.
원래 좋은 배우인 건 알았지만, 정말 흡인력이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조금 오버하면 거의 '조커'급의 존재감을 보여주었어요.
나중에 쉽게 죽는게 너무 아쉬울 정도로요.
그리고, 루실라나 그 원로원 할아버지도 반가웠지만
저는 장군 역을 맡은 페드로 파스칼이 정말 멋지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초반의 피끓는 잔인무도한 장군의 모습에서, 패자들에 공감하는 그 눈빛과 표정 ㅋ~
중반 지나면서부터는 차라리 이 장군이 주인공이 되어 글래디에이터가 되었으면 어떨까 하는 기대까지 들 정도로
너무 멋졌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인 폴 메스칼.
솔직히 주인공으로는 많이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연기가 부족했다기보다는 역시 전편의 러셀 크로우의 그림자가 너무 크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외모 가지고 뭐라 하긴 좀 그렇지만, 배우에겐 외모도 무기입니다.
러셀 크로우의 그 뭐랄까...
투박한 노동자 같으면서도 고귀한 느낌.
사자같은 야수성과 동시에 중형견 같은 순수함과 사랑스러움.
이런 매력이 전편의 성공의 큰 요인이었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이 막대한 롤을 감당하기에는 주연배우의 매력이 (외모 포함) 많이 부족했다고 느껴져요.
나중에, 그 사람이 루시우스라는 걸 알고 보니
묘하게 아역 루시우스와 닮긴 했더라구요. 그래서 뽑은 건지 모르겠는데.
이 역할의 서사 또한 정말 파란만장하고 기구한데,
차라리 전편의 스토리라인 구조를 굳이 따라가지 말고
아예 그대로 이어지는 긴 호흡의 속편으로, 루시우스가 초년에 고생하는 모습을 다 그려서
왕족인 루시우스가 필연적으로 검투사가 되어, 로마에 대적하는 모습을 그렸으면
오히려 나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막시무스:레거시로 접근하려던 방법이 오히려 독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물론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고, 창작자들이 충분히 숙고해서 결정했을 거라고 생각은 들지만
역할 자체로도 충분히 드라마틱하고 강력한데, 자꾸 막시무스와 연결시켜서만 존재감을 만들려 했던 건 아닌지
아쉬웠고, 그러다 보니 루시우스 자신이 아니라 자꾸 막시무스와 비교하게 되는 그런 딜레마가 ㅠㅠ
감독님은 분명 고대 전투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 보입니다.
킹덤 오브 헤븐, 나폴레옹 등을 보면요.
이 영화에서의 전쟁씬도 당연히 압권입니다.
그 씬만으로도 봐야 할 이유가 될 정도로요.
하지만 그 씬의 앞뒤와 호흡 등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약간 갖다 붙이는 느낌이 있었어요.
역시 전편의 그림자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종합하자면,
대성공한 영화의 속편 만들기란 정말이지 너무나 힘들다는 것.
그리고 리들리 스콧 감독님은 적어도 속편 만드는데 그리 적합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장 중에서도, 아무리 프로덕션이 늘어져도 지독하리만치 완성도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느 정도 선에서 결정하고 진행하는 성격 급한^^ 감독님들이 있는데 (ex. 스필버그)
리들리 스콧도 후자가 아닌가 싶고,
연세도 있으시니 이렇게 해서라도 더 많이 뵙고 싶긴 합니다.
좋은 영화이고, 덴젤은 그야말로 최고였지만
러셀 크로우의 글래디에이터는 그대로 우리 마음 속에 남겨두는 걸로^^
전편의 콜로세움 씬이 최고였던 이유는, 사실성에 대한 경계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물론 영화의 사실성이라는게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보는 사람들이 충분히 리얼하다고 느끼는 어떤 선.을
잘 지켜주었던 점도 영화의 품격과 매력을 높여주는데 큰 몫을 했다고 보는데요.
이번 영화의 콜로세움 씬들은 증폭되고 멋지긴 했지만, 그 선을 살짝씩 넘어가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그 또한 속편이라는 게 주는 압박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이런 고품질 영화에서는 그런 미세한 선 넘음이 전체적인 품격에 어느 정도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중간중간 비춰지는 덴젤의 미묘한 표정들이 더 멋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