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폴리 아 되> 리뷰: 그냥 안만들었어야되(스포 0)
1. 자나깨나 시퀄조심
이래서 계획에 없던 속편 만들때는 조심해야합니다. 자칫하면 작품이 만들어져야 하는 당위성, 존재 가치를 잃기 쉽상이기 때문이죠.
토드 필립스가 애초에 이 영화를 2부작이나 3부작으로 계획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분명히 단편으로 외전으로 끝내겠다 해놓곤 10억불 넘겨버리니까 워너도 재촉, 필립스도 덥석. 1편 흥행 도중에 2편을 생각하고 있었단 말도 아마 제작단계에서 방향성이 많이 달라졌을거라 확신합니다.
전편에서 조커의 탄생을 알렸으니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아는 조커로 발돋움하기까지의 과정을 보고 싶어 했을겁니다. 적어도 조커의 정신이 고담 전체를 물들이고 황폐화가 되어가며, 어디선가 희망의 불씨가 켜지며 끝나는 뭐 그런, 뻔하지만 가장 보고싶어 하는 이야기 말이죠.
하지만 아서 플렉은 감옥에서 탈옥할 생각조차 안하고, 허접한 법정 씬만 가득하며 뮤지컬 장면은 몰입도를 깹니다. 관객은 아서의 망상을 목도하지만 그 속에 빨려 들어가기 힘겨워합니다. 할리퀸과 도시를 불바다로 만드는 대신 리는 수많은 거짓말들을 거듭하며 과연 실존 인물인지까지 의심케 합니다. 리 퀸젤로써 어떤 캐릭터가 형성되기보단 아서 플렉이 아닌 "조커"를 사랑한 한 여인 또는 팬걸, 그리고 아서에게 망상을 키워주고 상처를 주기 위한 수단, 그리고 아서 플렉이 아닌 조커를 보러 온 관객들을 투영하기 위한 도구로밖에 쓰이지 않습니다.
일부러 관객의 예상을 빗나가게 하는 연출은 참 묘합니다. 짜릿하고 유쾌하게 관객의 기대를 깨버리며 더 큰 만족감을 주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굉장히 허탈하게, 심지어 불쾌할 정도로 심하게 꺾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후자에 속합니다. 극의 진행이나 캐릭터 심화를 위한 반전이 아닌,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 것이 목적 그 자체가 되어버린...그 목적을 위한 단순 수단에 불과한 억지스러운 반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는 거죠.
2. 대규모 레트콘
이 영화는 하나의 거대한 레트콘(Retcon: Retroactive Continuity) 그 자체입니다. 이 상황에서 레트콘이란 단어가 적합한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세부 설정들을 레트콘(속편에서 기존 설정을 부정 또는 정정)하는 경우들은 많이 봤어도 속편이 1편의 존재가치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이토록 큰 스케일의 레트콘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아서 플렉이라는 소외된 소시민에 대한 캐릭터 스터디라고 하기엔 우리가 아는 조커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하고, 어느 정도 기대하는 바가 있을 수 밖에 없으며 어느 정도는 충족되어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조커"라는 이름을 쓰는 것이 적합하겠죠.
아서 플렉의 연약함과 내적 갈등을 전면에 내세우며 연민의 대상으로 소비되기엔 이미 그가 자신의 사회에 미친 영향이 너무 큽니다. 전편에선 본인이 세상에 끼친 악영향에 대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은데다가 조커를 버리게 되는 이유가 사람들이 아서 플렉이라는 한 인간에겐 관심이 없다는 좌절감이 유일한 이유입니다. 한마디로 "난 그냥 관심이 좋았는데 사람들이 너무 내 부캐만 좋아하니까 나도 거기에 의존하고 기대에 부합하려고 스트레스 받아서 싫어 힝" 이건데, 무슨 연예인의 삶에 대한 고찰입니까 뭡니까.
아서 플렉 역시도 도덕의 개념이 없는 위험하고 악랄한 존재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무 빌드업 없이 속편에서 조커라는 허상을 파괴하고 아서 플렉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혹은 일으킬 수도 있는 연출을 한다는건 앞뒤가 안맞다는 것이죠. 1편이 비정한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의 탄생을 그렸다면, 그 괴물을 쭉 괴물로 보고 거리를 두어야 할텐데 다시 하나의 인간으로써 바라본다는건 글쎄요...소외된 소시민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었으면 그 인물을 조커가 아닌 다른 제3의 캐릭터로 만드는게 맞지 않았나 싶습니다.
애초에 작품이 범죄미화 프레임을 쓰게 된 것도 아서 플렉에 대한 연민의 시선이 어느 정도 깃들었기 때문인데, 그의 악행을 강조하기보다 아서 플렉에 대한 탐구를 더 깊게 한다면 그 프레임을 탈피하긴 커녕 더 고착화시키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악행을 스크린에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범죄미화 프레임을 탈피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뉴욕의 나약한 소시민 아서 플렉에게 집중할수록 전작을 향한 비난을 더 키울 수 있다는 것이죠.
감독의 의도가 이게 아니었다고 해도 한 캐릭터를 깊게 들여다본다는건 분명 어떤 의미에서와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내기 위함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나와 공통점을 찾고 연결고리를 발견하면서 그 캐릭터에게 이입하게 되고, 그러면서 극 전체에 몰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아무리 아서 플렉을 옹호하고 미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단순 고찰"이었다고 해도 결국 캐릭터에 공감대가 하나둘씩 생기게 되면 그의 행동들 역시 합리화될 여지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범죄미화 프레임에 대응하기 위한 감독의 전략으로써 적합하지 않다고 보는거죠. 정말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면 그의 연속적인 악행으로 인해 고통받는 "개리" 같은 인물들에게 시간을 할애하면서 그가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는게 맞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3. 그래서 누가 안타고니스트인데
좋은 히어로 영화에 좋은 빌런이 필수이듯이, 좋은 빌런 영화에도 좋은 히어로가 필수입니다. 달리 말해서 주동자(Protagonist)와 반동자(Antagonist)가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잘 하고, 두 역할 모두에게 공감하게 될때 관객은 가장 큰 전율을 느끼게 됩니다. 다크나이트가 그랬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그랬습니다. 인피니티워는 사실상 어벤져스에 맞서는 타노스의 영웅서사에 더 가까웠던 작품입니다(루소형제피피셜). 타노스는 분명 나쁜놈이 맞고 극단주의자, 나르시시스트, 폭력주의자지만 그가 하는 일이 어느 정도 납득은 갑니다. 그래서 매력적인 악당인거죠.
하지만 반대로 아서에게 공감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아서의 행동이 납득이 가는건 아닙니다. 절대 정당화될수도 없죠. 벌인 행동에 대한 정당성이나 논리 또는 인과관계가 충분치 않은데 그 캐릭터의 나약함을 계속해서 비춰준다면, 몰입하기도 힘들 뿐더러 인물에게 어떤 감정을 가져야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공감을 할지, 연민을 할지, 아니면 거리를 둬야할지...게다가 조커의 광기마저 기대하지 말라는 메세지를 던져버리면... 이 캐릭터와 어떻게 호흡해야할지를 모르겠는거죠.
자 그럼 이 극에서 반동인물, 즉 안타고니스트가 누구냐. 하비 덴트라고 하기에도 뭐하고, 할리라고 보기에도 뭐하고, 간수들도 애매하고 감독이 보는 극의 반동자는 "조커의 자극적인 광기만을 기대하는 대중" 또는 범죄미화를 제기한 일부 평론가들, 즉 관객들을 안타고니스트로 둔 느낌인데...
개인적으로 두 편 모두 보는 내내 아서 플렉의 해방된 모습을 보고 약간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서가 본인의 진짜 모습을 찾았다고 생각했고, 조커로써의 자신감 넘치는 제스처와 매너가 섹시하고 멋있다고 느껴질 정도였죠. 단순 광기를 넘어 어떤 아티스트의 경지에 이른, 지금껏 본 조커들과는 달리 뿜어져나오는 남성성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결국 리 퀸젤에 불과했던거죠.
그래도 결국 남는 생각은...근데 이걸 죽이면 뭐가 남지? 아서 플렉 본인 자체는 매력적이지 않은데? 그 양면성이 훨씬 매력적이고, 아예 조커에게 잠식당한 아서가 훨씬 자신감 넘치고 본인다워 보이는데? 근데 이걸 느끼는게 범죄미화야? 그럴 여지를 주는거야? 그럼 우리가 그간 그렇게 사랑해왔던 영화 속 빌런들은 뭔데...싶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점들이 생깁니다.
결국 설득력이 떨어져보인다는거죠. 불편하고 불쾌할 정도로 말입니다. 조커의 광기에만 집중해 아서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걸로 현대사회, 더 나아가 엔터업계를 비판한다던지 등의 해석은 조금 과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걸로 작품을 싫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깔보고 비난해버리면 굉장히 거만하고 오만한 행동이 아닐 수 없는거죠. 그래서 감독의 이 시선 자체가 저는 조금 불편합니다.
뭐 진짜 하고싶은말 다 해서 감독 본인은 후회 없고 속시원할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론 본인이 본인의 꾀에 넘어간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전작의 비난은 더더욱 씻기 어렵게 됐고, 그걸 씻으려다 전작의 존재 가치마저 훼손시켰으며 작품 자체의 완성도도 잡지 못한, 그 어떤 목표 하나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안타까운 작품이 아닌가 싶네요. 디테일과 레이어가 복잡한 작품인건 맞지만 딱히 파고들고 싶지 않아지는...한마디로 힘 빠지게 하는 작품이네요.
앞으로 DC 엘스월드 작품 제작할땐 더 신중에 기해야 할 듯 싶네요. 양분도 아니고 그냥 대부분의 관객들의 공분을 사버렸으니...
전 걍 슈퍼맨이나 기대할렵니다.
여담으로...(스타워즈 팬이 아니시라면 스킵)
여러모로 스타워즈 에피8 라스트 제다이를 연상케 하는 작품입니다. 다분히 의도적인 관객 예상 피하기(레이의 부모, 스노크의 비화, 루크에 대한 기대 등등)와 전작의 의문점들에 대해 답하긴 커녕 호기심을 죽여버리는 연출이 상당히 비슷하게 느껴지네요. 에피8의 미장센도 기가 막혔죠. 그럼에도 전 에피8과 라이언 존슨의 굉장한 팬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또한 에피9에서 카일로 렌이 라이크 사이드로 돌아왔을때와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전작 라제에선 악의 화신, 스노크를 대체할 최악의 슈프림 리더가 되어 다크 사이드의 한 축을 담당해 레이와 포스의 균형(음과 양)을 맞출 것으로 기대됐으나 갑자기 속죄하더니 선인으로 돌변하며 죽음을 맞이했죠... 그 어떤 빌드업도 없이 어떻게든 베이더와 같은 구조를 띠게끔 말이죠.
뭐...그렇습니다!
빼꼼무비
추천인 9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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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제다이, 라스트 오브 어스 2도 같이 재거론되더라고요.
그 작품들처럼 팬덤이 열광했던 캐릭터를 이상하게 망쳤다고...^^;
개인적으론 호아킨의 조커 캐릭터에는 크게 애착이 없었던 덕분인지...
영화가 불호였지만 분노까지는 안 생기네요.
1편은 진짜 좋앗는데 2편이 이따위일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