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an (2019) 킬링필드의 기록. 스포일러 있음.
킬링 필드를 겪은 어린이가
나중에 자라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만든 기록 애니메이션이다.
인간이 상상해서 만들 수 없는
역사적 비극의 생생한 기록을 보여준다.
크메루 루주가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을 점령한 후,
프놈펜의 100만 시민들은 농촌으로 추방당한다.
폭격의 위험이 있으니 며칠간만 피해있으라는 말을 듣고서,
무작정 여행가방 하나씩만 들고 산 넘고 물 건너 길을 걸어간다.
먹을 것 물이 없다. 언제까지 가야 할지 어디로 가는지도 안 알려준다.
며칠이 지나자 사람들은 깨닫는다. 그들은 도시에서 추방당해서 어디론가 끌려가는 것이다.
어디로 가는 것이냐고 묻기만 해도, 공산당원들은 반동분자 반혁명세력이라며 총살하려 한다.
하지만, 그 공산당원들은 끌려가는 시민들에게서 뭐 뜯어갈 것이 없나 눈이 번들거린다. 시계, 금 이런 것들 말이다.
글만 읽고 쓸 줄 알아도 반동분자. 자기 땅 갖고 농사지어도 반동분자.
남의 땅 빌려서 농사 짓는 사람 외에는 다 끌려간다. 남의 땅 빌려서 농사 짓는 사람조차도,
친척 중에 자작농이 있다면 반동분자다.
이 많은 사람들을 어디로 끌고 갈 수 있을까? 끝이 보이지 않는 늪지대로 끌고 간다. 인간이 개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무한히 넓은 늪지대다. 이제부터 여길 개간해라. 잠시도 손을 늦추거나 쉬지 마라. 우리가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래도 상식적으로 일을 시키겠지 하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깨닫는다.
시키는 일에 비해 주는 음식은 턱없이 적다. 결국 우리를 모두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에게 남은 것은 절망뿐이다. 끝까지 싸우려고 하다가 차라리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고,
목숨을 걸고 도망가려는 사람들도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고,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다.
주인공 아버지는 머물러 있는 것을 선택한다. 할머니, 삼촌, 아들, 아내 이렇게 있는데 어떻게 도망간단 말인가?
누구를 버리고 가나? 그럼 남는 사람은?
이제 가족을 해체시킨다.
아이들은 혁명전사로 잘 교육시켜야 한다는 이유 하에 부모로부터 떼어내서 아동탁아소에 데려간다.
아이들에게서 감정을 제거하고 반동분자 어른들을 처단하는 것을 가르친다.
주인공 아버지도 다른 어디론가 끌려간다.
감독이 회상하는 어머니는 아주 대단한 사람이다.
수용소 캠프에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별별 짓을 다한다. 아이를 남에게 버리고 도망가기도 하고,
딸을 팔아먹고 음식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안다.
결국은 다 죽는다. 지금 조금 음식을 얻더라도 결국엔 다 죽는다.
그녀는 배고픔과 고난을 참아낸다. "내게서 모든 권리 자유를 빼앗아가도, 단 하나는 내게 남아있다. 그것은
존엄성을 갖고 죽는 것이다."
말이 쉽지, 이렇게 강인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주인공의 어머니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당장 한 웅큼의 쌀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든 하는 사람들이다.
감독이 자기 어머니를 회상하는 장면에는 존경과 사랑이 가득하다.
결국 캠프에 남은 사람들은 거의 죽는다. 거기에다가 전염병이 퍼져서 모두들 나무바닥에 누워 죽기만 기다린다.
약이 없어서 야자열매를 따다가 그 즙을 주사기에 넣어 주사한다.
주인공의 어머니도 바닥에 누워 죽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 그러니까 주인공의 아버지가 찾아온다.
어머니만큼이나 강인하고 훌륭한 사람이다. 가족과 헤어져서 어디론가 끌려간 사람이었는데, 목숨을 걸고
찾아 헤메다가 죽어가는 아내를 찾아낸 것이다.
어디선가 음식을 구해다가 먹이고 밤낮으로 간호해서 아내를 살려낸다.
둘에게는 죽더라도 해야 할 일이 딱 하나 있다. 어린이탁아소로 끌려간 아들을 찾아 태국으로 망명하는 것이다.
병 때문에 다 죽어가는 어머니와 만신창이가 되어 탈진한 아버지가 함께 아들을 찾아 무장한 공산당원들이 득시글거리는 살벌한 죽음의 땅을 헤메다닌다 - 아들이 이런 부모를 그리는 마음은 존경과 사랑이 가득하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이 애니메이션이 성공을 거둔 이유는 이것 같다. 그냥 딱딱한 기록이 아니다.
베트남군대가 크메루 루주를 몰아낸다. 크메루 루주는 그냥 도주해 버린다.
어린이탁아소에 있던 아이들을 그냥 불타는 폐허 속에 내버려두고.
아이들은 망연자실하게 앉아서 죽기만 기다리는데, 주인공의 부모가 찾아온다.
상상해서 이런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만들어낸다 한들, 이 애니메이션에서 감독이 부모님에 대해
그리는 존경과 사랑을, 누가 상상해서 그려낼 수 있을까? 미야자키 하야오가 와도 안된다.
하지만, 크메루 루주의 세뇌와 너무나 참혹한 현실에 대한 충격 때문에 아이(그러니까 감독)는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 부모님은 아이를 데리고 태국 국경으로 간다.
하지만, 태국 국경 바로 앞에서 그들은 크메루 루주에게 붙잡힌다. 아버지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혼자 미끼가 되어 도망치고, 크메루 루주는 아버지를 쫓아가느라 자리를 비운다.
망연자실해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보고, 아들은 깨닫는다. 이제는 자기가 어머니를 지켜야 한다.
그는 어머니 손을 붙잡고서 태국 국경을 넘는다.
킬링 필드의 기록보다도 더 인상적인 것이, 감독의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다.
그런 지옥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은 정말 숭고하다.
이 영화는 지옥에 대한 영화이지만, 그보다도 더 강렬한 것이 주인공 부모의 숭고함에 대한 감독의 회상이다.
자기들이 다 죽어가면서도, 그 지옥 속을 아들을 찾아 헤메는 모습도
그 어떤 인간배우의 연기로는 흉내낼 수 없다.
쉰들러 리스트? 아들이 자기를 위해 모든것을 희생한 부모에 대해 절절한 감정을 가지고 회상하는
이 애니메이션의 감동에는 못 미친다.
결국 아내와 아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아버지. 바로 눈앞에서 이를 지켜보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그냥 바라보기만 했던 감독에게는
평생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총살당하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총성을 들으면서 국경을 넘는다. 어린 아들이 어머니 손을 붙잡고 이끌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엔딩장면에서 이런 글이 뜬다. "To my mother"
감독은 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만 했을 것이다. 아마 내가 겪었던 지옥을 기록해야겠다 하는 마음보다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얼마나 숭고했던 분이셨나 그리고
인간의 숭고함은 그 어떠한 지옥이라도 뚫고 빛을 발한다는 것을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실제 역사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같은 것은 훌쩍 뛰어넘는다.
추천인 7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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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품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액트 오브 킬링' 다큐영화 강력 추천합니다
그들의 세뇌가 어떻게 깨지는지 꼭 강력히 추천합니다
'킬링필드'를 주도한 폴포트의 핵심은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이였습니다 하필 프랑스에서 심취해서 배워온 사회주의의 다음 모델로서 마오쩌둥을 모태로 삼다니.. 그 시작부터가 비극이 아니였나 싶네요
상상도 하기 힘든 지상의 지옥이 과거 캄보디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