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블 리지Rebel Ridge> 리뷰
예상했던 바와 많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즐겁게 봤습니다. 예상했던 바는 '람보' 1편이나 최근 '잭 리처' 같은 통쾌한 복수극을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의 이력이 밝혀지는 순간에 기대하기 시작하다가, 세상 가까워 보였던 사촌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자 기대는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인공 테리는 람보나 잭 리처처럼 앙갚음하지 않습니다. 치명상을 피해 가며 적을 제압합니다. 그래도 사건을 잘 해결합니다.
제목 '레블 리지Rebel Ridge'은 마치 '오케이 목장의 결투'처럼 마지막 결전을 나타내는 지명입니다. 뭔가 기대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기대한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객을 보기 좋게 배신합니다. 요즘 21세기 영화 트렌드인가요. 사람이 많이 죽어 나가진 않지만 가족 간 내밀한 대화가 겹겹이 나오는 아리 아스터 '유전'이라던가. 최근 석연치 않은 재미를 안겨준 '리볼버'도 그랬습니다. 나사 하나가 빠진듯합니다. 지난번 읽은 씨네21 기사를 봐도 그렇습니다.
"<리볼버>는 같은 성격의 결말이지만, 정반대의 의미로 향한다. 거주지가 없는 하수영은 자신이 꿈꾸던 미래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비장한 최후가 아니라 차라리 오승욱이 구축한 남성적 세계를 향한 작별이다. 아파트와 밑바닥으로 분할된 범죄 세계의 약속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한 자의 탈선이다. <리볼버>의 결말에서 하수영은 오승욱의 세계에서 그런 헛된 믿음을 간직하고 죽어간 남자들을 향해 소금을 뿌린다." (씨네21, 김병규)
'레블 리지'는 서부극의 탈을 쓰고 람보를 따라가지만 전혀 다른 결말을 보여줍니다. 소금을 뿌립니다. 좀 더 현실적으로 사건을 해결합니다. 정말 테리 정도의 경력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 하나 다치게 하지 않고 거대한 비리의 사슬을 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테리는 처음부터 검문과 부당한 압수를 당했을 때부터 인내심도 있고 경찰을 대하는 태도 역시 합리적입니다. 그래서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번 '레블 리지'는 천천히 불타오르는 제레미 솔니에 감독의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블루 루인', '그린 룸', 그리고 넷플릭스에 있는 '늑대의 어둠' 모두 어둡고 특이하고 폭력 묘사가 매우 직접적입니다. 솔니에 영화에서 폭력은 일상에 가깝습니다. 다른 영화처럼 음산한 음악으로 분위기를 조성해서 깜짝 놀래키지 않습니다. 잔인한 장면은 20세기 슬래셔 영화 수준에 가깝지만 연출 방식은 너무 다릅니다. '본 토마호크'를 감독하고 각본도 쓴 'S. 크레이그 잘러'가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배경과 캐릭터 묘사에 온 힘을 다합니다. 지루해 보이는 일상을 계속 보면서 관객은 그만큼 시간과 장소에 자연스레 동화되게 합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같이 머물던 장소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아무런 효과음이나 자극적인 음악이 없어도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아리 아스터의 미드소마에서 절벽 장면을 생각해 보세요.) 이번 '레블 리지'도 관객은 테리처럼 계속해서 부패한 마을을 바라보고 그렇게 되어버린 과정을 이해하게 됩니다. '리볼버'가 오승욱 감독이 만든 남성적 세계에서 작별했다면 '레블 리지' 역시 솔니에 감독의 거칠고 잔인한 영화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주인공은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으니까요. 솔니에 감독의 초기작 'Murder Party'에 비하면 성숙하면서도 장족의 발전입니다.
최근 영화들이 지난 세기 영화에서 달라지고 있습니다. 물론 '탑건:매버릭'처럼 20세기 가치를 보기 좋게 계승한 영화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영화를 톰 크루즈가 만들 순 없습니다. 지금은 좀 더 현실에 가깝고 (우리가 알고 있던) 영화와 멀어진 새로운 스타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아리 아스터 '유전'에서 삭제된 장면은 모두 집안에서 나누는 대화장면입니다.) 아리 아스터, 제레미 솔니에, 그리고 크레이그 잘러 등. 감독이 연출도 하지만 소설에 가까운 각본을 쓰고 누구보다 폭력 묘사에 진심입니다. 하지만 폭력은 '13일의 금요일'처럼 비현실적이진 않습니다. 매우 현실적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세계에 관객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니 (로드무비처럼) 러닝 타임이 많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세기, 새로운 작가들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제목을 다시 보니 '반항아Rebel'들이 서있는 '산등성이Ridge' 쯤으로 다시 보이기도 하는군요. 솔니에는 반항아, 맞습니다. 본인이 쌓아온 필모에도 도전을 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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