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취협 (1965) 호금전감독의 걸작 쿵후영화. 스포일러 있음.
호금전은
과하게 말하면,
홍콩쿵후영화를 셰익스피어의 연극으로 만든 사람이다.
용문객잔이나 협녀나 대취협 등은 모두 연극적 요소가 강하다.
오랫동안 역사상 최고 홍콩영화로 꼽혔던 용문객잔은,
아주 좁은 객잔 내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대부분이다. 말하자면, 실내극이다. 홍콩무협영화가 실내극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안에서 훌륭한 쿵후결투장면과 등장인물들 간 갈등만으로 치밀하게 구성해서 걸작 쿵후영화를 만든 것이다.
호금전은 화면에 연기를 피워서 화면 일부분이 연기에 감싸이도록 만들었는데,
왜 그렇게 하냐고 누가 묻자,
중국회화에서는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데 중국회화와 같은 영상을 만들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화면들 말이다.
중국회화를 영화의 영상언어로 삼다니, 생각도 못했다.
호금전의 영화를 보다 보면, 영상이 참 신비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만의 독특한 영상언어가 있다.
동양화를 볼 때, 그 느껴지는 유유자적함이나 신비함 그리고 깊고 그윽함 등이 느껴진다. 피 튀기게 싸우는데도
그 영상은 이렇게 신비하다.
그리고 대 놓고, 불교영화다. 잘 만든 쿵후영화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불교영화다. 불교 메세지를 강하게 집어넣는다는 말이 아니라, 영상 자체로 불교의 진리를 표현해낸다. 진리를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너무 엄청난 이야기인가? 그런데, 그의 영화를 보면,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호금전이 쟝르 불문하고 대가인 이유다.
물론, 콩후영화의 대가이므로, 액션장면도 잘 짜낸다. 용문객잔의 마지막 결투씬은 그 처절함과 스케일면에서
홍콩영화 최고의 대결씬으로 이름 높았다. 하지만, 협녀같은 경우를 보면, 그 대결씬은 결국 불교의 진리에 이르기 위한 단계다.
그렇다고 호금전의 영화를, 무늬만 무협영화인 불교영화같은 식으로 생각해서도 안된다.
그의 영화는 아주 훌륭한 무협영화다. 당시 홍콩영화의 액션수준을 몇단계는 올렸으리라.
호금전 영화의 신호탄이 바로 이 대취협이다.
도적떼들이 고위관리를 납치한 다음, 체포된 자기들 두목과 교환하자고 한다. 하지만, 강직한 총독은
법을 어기면서 그런 협상에 응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금연자라고 하는 여류검객을 파견한다. 금연자는 놀라운 무술로 이름 높은 검객이다. 금연자는 납치된 고위관리를 찾아서, 도적떼들이 득시글거리는 살벌하고 피 튀기는
그 속에 들어간다. 그리고, 끈질기게 고위관리의 행방을 찾는다.
호금전영화에는 여협객이 자주 등장한다. 금연자는 아주 인기가 높았던 캐릭터다.
뛰어난 탐정 겸 초인적인 무술을 가진, 아주 야무진 캐릭터다. 도적떼들이 아무리 협박하고 목숨을 노리고 해도
피식 웃으면서 그들 본거지 한복판인 객잔에다가 방을 잡고 머문다. 도적떼들은 처음에는 간만 보며 위협만 하다가,
곧 목숨을 걸고 피 튀기게 덤빈다. 객잔에서 벌어지는 실내극적인 대결, 사찰에서 벌어지는 일대 백명 대결 등
호화로운 쿵후결투씬이 연이어 벌어진다. 눈 하나 깜박 않고 엄청난 수의 도적떼들과,
그것도 달아날 데 없는 밀실 안에서 싸우는 금연자의 모습은 아주 강렬하다.
하지만, 금연자 캐릭터는 리얼 히어로가 아니다.
그녀는 인간계에서 초인적인 무술을 하는 협객이고,
진짜 초인계에서 노는 사람들이 있다. 금연자를 갖고 노는 초인들이다.
그들은 강렬하지 않다. 유유자적하며 쾌활하고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산다. 중국의 신선 캐릭터다.
금연자가 위험할 때마다 도와주는 거지 두목이 있다. 마블영화에나 나와야 할 초인이다.
그가, 하도 철저하게 자기를 숨기고, 좀 모자란 거지두목을 연기하기 때문에, 금연자는 그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다.
이 거지두목이 너무 강력해서, 지금까지 나왔던 사람들은 모두 약자가 된다. 어쩌면, 이것도 호금전의 메세지일 지도 모른다. 다른 홍콩영화에서였다면, 무적의 주인공이 되었을 캐릭터를,
굳이 초인적인 캐릭터를 등장시키면서까지 약자로 만들 필요가 무언가? 독종 금연자는 거지두목 앞에 무릎 꿇고
도움을 요청한다. 엄청난 수의 도적떼 무술고수들을 혼자 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거지두목이 나서자, 그 도적떼들도 약자가 된다. 그냥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기존 홍콩영화의 영웅주의를 부정하려는
목적일까?
하지만, 이것이 대취협에 복잡한 구조와 깊이를 부여한다. 금연자가 혼자 다 해결하고 목적 달성 후 떠난다면
그냥 무협영화다. 하지만, 전반부에서 그토록 화려한 쿵후영화를 보인 다음, 후반부에서 이를 부정하고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거지두목이 사는 세계는 금연자가 사는 세계와는 다르다. 그는 신비로운 산속에 고독하게 자리잡은
초가집에서 산다. 그가 하는 무술은, 남을 해치기보다는 도를 닦는 종교적인 것에 가깝다. 금연자는 날카로운 추리력을 갖고 있지만, 거지두목은 모든 것을 다 자연스럽게 꿰뜷어 보는 현명함을 가졌다.
이렇게 이 영화 후반부는 신비로운 도교적 분위기다. 유유자적하고 신비로운 도가적 분위기를 이렇게 잘
표현해 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다시 금연자와 도적떼들의 피 튀기는 대결로 돌아간다. 이번에는 거지두목이 그녀를 돕는다.
하지만, 거지두목이 나서서 모든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거지두목의 철학에 어긋난다. 금연자는 영화 전반부와 마찬가지로 독종 여협객으로 돌아가서 도적떼들을 죽인다.
금연자는 고위관리를 구출해서 총독에게 돌아간다.
호금전 영화세계의 기념비적인 시작이다.
대취협을 처음 보다 보면, 이해가 안 간다. 기껏 훌륭한 무협영화를 만들어 놓고, 갑자기 후반부에서 이를 부정하고,
금연자는 거지두목에게 도움을 부탁한다. 초인적인 거지두목이 나오면서, 서사도 더 복잡해지고 영화는 깔끔하지 못하게 된다. 비유하자면, 에이리언에서 리플리가 에이리언을 멋지게 해치웠는데, 예수 비슷한 종교지도자가 나와서 황홀경을 보여주면서 리플리가 그에게 귀의한다 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것이 호금전 영화의 핵심이다.
이것이 그의 영화가 예술인 이유다.
그의 대걸작 협녀에서는 이 요소가 더 감동적이고 강렬한 형태로 발전되어 보여진다.
호금전은 홍콩쿵후영화의 아버지다. 그가 감독한 협녀는, 홍콩무협영화 최초로 칸느영화제에 경쟁부문 본선진출한 작품이다. 나는, 공산영우같은 불교적이고 심원한 그의 색채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후기 작품이 좋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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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작품 소개 감사드립니다.
이 다음이 장철감독의 금연자였나요. 본지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 가물합니다.
정창화감독님의 공포의 다섯손가락을 시작으로 고전무협 찾아보면서 장철, 호금전 감독등의 작품들을 찾아본 기억이 납니다. 특히 장철감독님작품들이 저에게 잘 맞았던것 같습니다.
호금전감독님작품으로는 대취협과 협녀가 저에게는 좋은 기억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용문객잔보고 나서 혹시 누군가가 신용문객잔과 비교 글을 써주신 분 있나 해서 글 찾다가 소호강호를 만들던 당시 호금전감독에 대한 서극감독의 무례함에 대한 글을 본 후로는 서극감독 작품을 안보고 있는 것도 갑자기 떠오르네요.
써주신 글 덕분에 여러 추억과 기억이 떠오르네요, 감사합니다.
호금전감독 작품이면 달랐을수도 있는데 장철 감독 작품이다보니 정패패배우보다 왕우배우를 전면으로 내세운게 아닐까하는게 제가 예전에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이었는데 후에 들은 이야기로 카더라 정도 이야기라 정확하다고 할 수 는 없지만 원래는 대취협 속편으로 그 역할에 맞는 시나리오로 만들었다가 장철감독과 정패패배우와 사이가 틀어져서 금연자를 극중 조력자 정도로 시나리오를 뜯어 고쳤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도 좀 허술하게 된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얼마 전 주연인 정패패 여사가 타계하면서 다시 거론된 작품인데, 제대로 극장에서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