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혈쌍웅 (1989) 홍콩 느와르의 최고걸작. 스포일러 있음.
번영을 구가하던 홍콩이
공산국가 중국에 반환되는 시간이 다가오고
홍콩사람들은 절망한다. 그 절망이 홍콩느와르라는 하나의 쟝르를 탄생시킨다.
느와르는 검다는 뜻으로,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에서 만들어진 어둡고 절망적인 세계를 차갑고 비정한 톤으로 그리는 영화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쟁으로 사람들의 시각이 바뀐 때문이다.
프랑스의 느와르는, 진짜 느와르라기보다 그냥 느와르영화의 스타일을 빌어서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홍콩느와르는 진짜 느와르다.
홍콩느와르의 주인공들은 모두 길을 잃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걸핏하면 눈물을 흘린다. 감정적이고 격정적이다.
우정 사랑같은 것에 목숨을 건다. 비정하고 검고 잔인하고 절망적인 세상에서
자기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을 간절히 찾는다. 그리고 그 끝은 비극적인 죽음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해서 죽고, 홍콩의 비참한 현실을 탈출하려다가 죽고, 우정을 지키려다가 죽고, 자기 명예를 지키기 위해 죽고......
이 영화 첩혈쌍웅은 홍콩느와르를 상징하는 걸작이다.
주윤발은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닫고 사는 살인청부업자다. 그는 단 한명의 친구가 있다. 살인중개업자다.
그는 새로운 일거리를 주윤발에게 갖고 온다.
주윤발은 살인청부업자로서 자기가 갖고 있는 원칙 (윤리라고 해두자) 그리고 친구와의 우정 - 그 둘만 갖고 이 차가운 세상을 살아간다. 세상에 단 두개만이 그에게 중요하다니......그의 인생은 절제와 고독 그 자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가 살아가는 세계가 바뀌기 시작한다.
새로운 조폭 두목은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원칙같은 것은 없는 사람이다.
그 두목은 주윤발에게 임무를 맡기고서는, 주윤발의 입을 막기 위해 그를 죽이려 한다.
그래서, 주윤발의 친구인 살인중개업자를 강요해서 주윤발을 죽이라고 시킨다. 친구는 어쩔 수 없이 주윤발을 살해하려다가 주윤발에게 걸린다.
주윤발은 이제 한꺼번에 둘 모두를 잃는다 - 살인청부업자의 원칙과 윤리가 작동하는 세계 그리고 단 한명의 친구.
그는 검은 세계를 혼자 떠돈다. 발 디딜 곳도 의지할 것도 없다.
그는 자기 윤리가 의미 없어지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지키려 한다.
조폭 두목이 주윤발을 계속 죽이려 해서, 주윤발에게는 늘 죽음이 다가온다.
누가 알아주지도 슬퍼해주지도 않을 외로운 죽음이다. 두 눈이 총알에 찢어지고 몸이 난자되어서 바닥을 기다가 죽을 것이다. 하지만, 주윤발은 그것을 알면서도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내가 알고 있는 세계가 사라지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타협하고 세계가 더 이상 도덕적이지 않은 것을 인정하고 살아야할까?
주윤발은 자기 세계를 지키고, 그것과 함께 영웅적으로 죽어가기를 선택한다.
개같이 사느니 영웅으로 죽고 싶다. 홍콩느와르를 상징하는 대사다.
세계로부터 자기를 닫은 살인청부업자 주윤발은 격정적이고 눈물 많은 사람이다.
차갑고 건조하고 비정한 사람이 아니다.
홍콩느와르의 주인공은, 전형적인 느와르영화 주인공처럼 차갑고 더러운 바닥에서 뻣뻣하게 죽어가지 않는다.
그는 몸부림치고 눈물 흘리고 소리치며 죽어간다. 이것이 홍콩느와르의 특징이다.
주윤발은 어느날 클럽으로 살인청부를 수행하러 갔다가 클럽 가수 엽천문을 만난다. 둘은 그냥 스쳐지나가지만,
주윤발이 쏜 총에 우연히 엽천문이 맞아 두 눈이 멀게 되면서 주윤발은 자기 윤리에 심각한 파괴를 경험한다.
살인청부와 무관한 인물은 다치게 해선 안된다.
그런데, 엽천문도 주윤발과 똑같은 사람이다. 주윤발과 마주칠 때, 그녀는 유명한 노래를 부른다.
어둡고 희망 없는 세상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이런 노래다.
그녀는 두 눈이 멀어 버리면서, 암울한 상황에 빠진다.
가수로서 급이 내려가서 청중들이 주는 돈으로 생활하고, 가족도 없다.
장애인으로 사회적 약자가 되어 사람들의 무시와 경멸을 받는다. 다 주윤발 때문이다.
주윤발은 엽천문의 주위를 돌다가, 그녀를 도와준다. 그리고, 둘은 연인이 된다. 관객들은 안다.
이 두 연인에게는 처절한 죽음밖에 없다.
꿈도 희망도 없다. 하지만, 그들은 냉소적이 되지 않는다. 차가워지지도 않는다. 어쩔 수 없는 현실과 타협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홍콩사람들이 찾아낸 삶의 방식이다. 무너져 내리는 세계를 어찌할 수 없다.
자아가 무너지고 가치가 무너지고 자기가 잘 알고 살아가던 세계가 무너진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자기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며 가치 있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개같이 사느니 영웅처럼 죽는 것이다. 첩혈쌍웅의 명대사가 있다. "나는 개같이 살고 싶지 않아. 영웅처럼 죽고 싶어. 그런데, 내겐 남은 총알이 없어." 첩혈쌍웅, 더 나아가 홍콩느와르 전체의 주제를 요약한 명대사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사라진 세계를 끝까지 처절하게 붙잡다가 총알과 함께 스러지는 것이다.
홍콩느와르에 걸작들이 많지만, 첩혈쌍웅이 그 중 가장 홍콩느와르적이라고 하는 까닭은,
이렇게 홍콩느와르의 핵심을 잘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시 홍콩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중요한 메세지다. 홍콩느와르가 예술적
보편성을 얻을 수 있는 이유다.
주윤발은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을 맞다가 처절한 죽음을 맞이한다. 엽천문도 꿈도 희망도 없는 검은 생활 속에서
주윤발 없이 혼자 비참하게 살다가 최후를 맞을 것이다.
살인청부업자를 해서 번 거액의 돈으로 엽천문과 함께 먼 곳에 가서 안락하게 살 수도 있었는데,
주윤발은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선택한다.
오우삼감독은 첩혈쌍웅을 리메이크한 the killer 라는 영화를 올해 만들었는데,
쿨하고 힙한 소녀가 주윤발같은 역으로 나와서 닌자같은 식으로 살인을 해대는 영화다. 속이 텅 비어 있다.
이 영화는 주윤발의 죽음(자살)에 대한 긴 기록이다. 그의 죽음은 무엇도 바꾸지 못한다.
세계가 그의 죽음과 함께 바뀐 것도 아니고, 그의 윤리가 세계에 돌아온 것도 아니다. 이렇게 페시미즘 그 자체인
영화가 있을까?
추천인 6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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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작품이 저는 최고더군요. OST 가 너무 감미로운. ㅋ
저는, 페이스오프가 영화적으로는 잘 되었지만, 까칠까칠하고 텁텁하고 씁쓸한 그 맛이 없어진 것 같아 섭섭하더군요. 역시 오우삼감독 영화 주인공은 개처럼 죽어야 제 맛이죠.

영웅본색에 비해, 첩혈쌍웅이 주윤발에게 더 집중해서, 캐릭터 분석같은 것도 더 심오하죠.

다 필요없고 그냥 멋있었어요....



정말 멋진 영화이죠!
늘 좋은글 감사합니다
제가 젤 좋아하는 홍콩영화네요
극장에서 큰화면으로 다시볼수있게 재개봉좀...
계곡에서 이수현과 주윤발의 눈빛교환연기는 쵝오죠~
저도 현재까지 이게 최고중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테마곡 듣고 다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