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어리랏다 (1993) 이덕화 커리어의 절정. 망나니가 주인공인 사극. 스포일러 있음.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이덕화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다.
지금이야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주조연상을 타도, 다들 기뻐는 할 지언정 감격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시에는 달랐다. 우리나라 영화가 암흑기에서 마악 부활하려는 시점이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선수가
국위선양을 했다고 언론과 국민들로부터 환영을 받는 그런 풍경이
이 영화로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탄 이덕화에게 벌어진 것이다. 이덕화는 엄청 감격하였고,
인터뷰를 통해 많은 감회를 남겼다.
아마 그의 커리어의 절정이 이것 아니었을까?
이덕화는 감격 이외에도 안타까운 점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원래 각본은 아주 스케일이 커서 벤허같은 것이었다고 했다. 각본을 읽으며 그의 머릿속에는 스케일이 큰 명장면들이 막 떠올랐는데, 예산이 부족하다가보니 점점 더 스케일이 줄어들어서 그냥 평범한 한국영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 영화들 수준으로는 상당히 스케일이 컸던 작품이 맞다. (이후 만들어진 쉬리가 말하자면 우리나라 영화계의 베비브 루스다. 영화 스케일을 늘려도 한꺼번에 팍 늘려놓은 작품이니까.
사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열악한 영화계에서 일하던 예술가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머릿속에서 막 영감이 떠올라도 돈이 없어서 결국 만들어낸 영화는 우뢰매 수준이 되곤 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걸작들이 나온 것은 대단한 것이다.)
각본 겸 감독인 윤삼육은 당시 각본가로 성가를 드높였었다. 그가 각본을 쓴 뽕이며 장군의 아들이며 다 대단한 히트작들이었다. 각본가가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시대에 "아, 그 사람......"하고 들어는 보았다고 사람들이 기억했으니.
그는 이 영화를 감독/각본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는 1990년대 이창동은 아니었다.
각본도 투박한 데가 있고, 이 영화 연출도 매끄럽지는 않다. 1980/1990년대 흠 많고 투박하고 좀 저예산티가 나는 그런 걸작을 생각하면 된다.
각본에 대해 이야기할 것은 별로 없다. 망나니가 신분제의 비애를 느끼며 악에 가득 차 살아가고 있는데,
몰락한 양반집 아씨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고 행복하게 산다. 그러나, 교활한 양반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만다는 이야기다.
과거에도 만들어졌던 이 영화를, (당시 기준으로 보아서는) 좀 더 스케일을 키우고 망나니에 대한 행태묘사를 더 구체적으로 집어넣은 다음, 대배우 이덕화를 기용한 것이다. 지금 이덕화의 연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코믹하고 능글맞으면서도 폭발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 그 특유의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나간다. 지금도 이런데, 30년 전 전성기 때는 어땠겠는가? 이덕화가 연기하는 망나니는 아주 생생하고 에너지 넘친다. 평범한 배역에도 에너지와 코믹함 그리고 감정의 요동을 불어 넣는다. 그가 대배우인 이유다. 사실 이 영화가 흥미있는 이유는 이덕화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가장 밑바닥인 망나니들은 울분에 차서 산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가끔씩 양반들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 기회가 주어진다. 당파싸움에서 진 양반들이 처형을 당할 때, 망나니들은 그 양반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을 지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머리를 단숨에 잘라버리지 않고 칼등으로 치면, 머리가 계속 달라붙어 있어 난도질을 해야 죽는 것이다. 양반가문사람들은 망나니를 찾아와 편하게 죽여달라며 애걸을 한다. 망나니 이덕화는 망나니들 중에서도 잘나고 우두머리인 사람이다. 어느밤 그는 미모의 양반가문 따님 이미연의 방문을 받게 된다. 자기 아버지가 처형을 당하는데, 이덕화가 쳐형을 담당하게 되었다. 아버지를 편하게 죽여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댓가로 돈을 준다. 하지만 돈을 이덕화에게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 땅에 툭 던져준다. 자기가 부탁을 하러 왔으면서도, 명령하듯 하고 돈도 땅에 툭 던져주다니.
이덕화는 엄청 분노한다. 평상시 쌓아온 분노가 한꺼반에 폭발한다. 그는 이미연을 강간한다. 하지만, 이미연은 이덕화의 기억에 계속 남아서 희미해지지 않는다.
(이미연은 이때 거의 데뷔 초라서 지금같은 카리스마나 관록은 없다. 그런데, 기억이 희미하지만, 당시 이미연은 고등학생인가 그랬다. 그런데, 그런 섹스씬을 찍어서 말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오늘날같은 누드는 안 나온다.)
이덕화는 양반신분에서 추락한 이미연이 팔려갔다는 소식에 그녀를 구한다. 이덕화는 이미 분노와 울분만으로 채워진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이미연을 사랑한다. 이미연도 이덕화를 사랑한다. 잔형적인 80년대 에로티시즘이 투박하게 삽입되는데, 이덕화와 이미연은 서로 사랑하는 나머지 맨날 붙어산다(?). 이덕화는 아들도 낳고 해서 행복한 가족을 이룬다.
사실 이 영화는 필요 이상으로 액션씬이 많다.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심사위원들도 이점을 지적하였다. 올드 보이의 장도리씬처럼 예술적인 혹은 영화 상 필요에 의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오락적인 목적으로 액션씬이 들어간 감이 있다. 이덕화는 여기에 대해, 신분제의 억압에 맞서 가족을 지키기 위한 망나니의 필사적인 노력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었다는 대답을 하였다고 한다. 지금 기준으로 보아서는 투박한 액션이겠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한 대규모에 난폭하고 에너제틱한 액션이 맞았다. 처절, 비장함, 잔혹함 바로 그 자체일 정도로 연출애 공을 들인 액션씬이다.
망나니이지만 영화 속에서 이덕화는 청룡언월도 비슷한 것을 휘두르는데 (직업이 직업인 만큼, 그는 검술의 달인이다.), 계속 밀려드는 군대에 맞서 이덕화는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도망을 친다. 자기가 살겠다는 생각은 없다. 아내와 아이만 무사히 도망치게 하면 된다.
이미연도 자기 목숨은 포기했다. 이 대규모 혈투장면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것이 오락장면이든, 망나니의 양반제도의 억압에 대한 몸부림이든 간에, 많은 예산이 여기 쏟아부어졌고, 이덕화도 상당히 공을 들여 이 장면을 찍은 것 같다. 이덕화도 이미연도 군대의 손에 처참하게 살해당하지만, 그들은 자기 아이를 나룻배에 띄워 강을 흘려보내는데 성공한다. 아이 혼자 탄 나룻배는 서서히 멀어진다.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살아남았다면 다행이지만, 혼자 굶어죽거나 햇빛에 타죽었다면, 한번에 끝날 수도 있었던 죽음이 서서히 말라붙는 오랜 고통의 죽음으로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가 져야 할 몫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그 숭고한 희생에 대해 아이가 져야 하는 당연한 짐이다.
영화가 걸작은 아니다. 쉬리 이전 대규모예산을 쓴 블록버스터 정도? 그렇다고 범작이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 훌륭하게 성공한 부분과 평범한 부분들이 섞인 흠결 있는 수작 정도? 소재나 주제나 줄거리가 너무 전형적이다. 하지만 윤삼육이 평범한 각본가가 아니기에, 나름 흥미와 재미를 창출해내는 데 성공하였다. 작품 전체에 분노와 비장함과 처절함이 있으니, 감상의 가치는 충분하다.
이덕화의 열연은 훌륭하다. 이 정도 영화를 혼잣몸으로 떠받치는 것이 장관이다.
추천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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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품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덕화님 연기는 더 고평가 받아야함.
모스크바 영화제가 세계 4대 영화제로 불렸던 것 같아요. 지금은 아니지만...
감독이 뽕의 각본가셨다면 지금처럼 더 나은 환경이었다면 이름을 크게 떨치셨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