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리언 로물루스 단상들
에일리언 전 시리즈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1.게임의 법칙.
에일리언 로물루스(이하 로물루스)는 제목에서부터 정직하게 에일리언이 살인마로 나오는 데스게임에서 살아남는 규칙을 제시합니다. 로물루스가 동생 레무스를 죽이고 로마를 창건했듯이 니들도 형제, 자매, 연인을 버리고 살아남으라는 거죠.
실제로 상황은 초반엔 그렇게 돌아갑니다. 연인 비요른을 구하러 온 나바로가 에일리언의 첫 희생자가 되고, 타일러는 여동생 케이를 본의 아니게 포기하면서 위기를 한번 벗어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대는 본인 앞에서 계약서를 지멋대로 바꿔서 흔드는, 우주 최악의 블랙 기업 웨이랜드 유타니. 애시당초 주인공 일행은 웨이랜드 유타니가 지배하는 콜로니의 비인간적인 처사에 반발해 탈출하려던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규칙을 거부하고 협력하자 의외의 활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난공불락으로 보이는 적의 강점을 역으로 써먹는 거죠.
에일리언의 강력한 산성피는 전 시리즈를 통해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기껏 힘들여 한마리 잡았다 싶으면 그놈의 피 몇 방울이 뭐라고 아군을 전투불능에 빠뜨리고 전장을 교란합니다. 밸붕도 이런 밸붕이 없죠. 그런데 로물루스에는 그 산성피를 역이용해 우위를 점하는 장면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에일리언이 숙주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궁극의 생물이듯이, 이를 상대하는 인간들도 드디어 무력한 피해자 포지션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적의 강점을 카운터치는 존재로 성장해 나갑니다.
2. '둘'이라는 모티브.
로물루스라는 이름 뒤에는 감춰진 레무스라는 존재가 있듯이, 영화는 '형제'라는 모티브를 확장하고 발전시킨 '둘(double)'이라는 모티브를 영화 곳곳에 배치합니다. 일단 주인공 파티 6명은 정확히 2명씩 나누어지고 짝지어집니다. 인간 레인과 합성인간 앤디, 타일러와 케이 남매, 연인인 비요른과 나바로. 그리고 앤디는 두 개로 나눠진 폐정거장에서 또다른 합성인간 룩을 만납니다. 이제 합성인간도 둘입니다. 룩은 회사에 대한 헌신을, 앤디는 인간에 대한 헌신을 모토로 가지고 있죠. 신형과 구형, 악의와 선의, 이렇듯 둘은 서로의 거울 상입니다. 사건이 전개되면서 비록 버림받았지만 제대로 된 인간 아기를 임신한 케이와 페이스 허거에게 '강간'당해 체스트버스터가 심겨진 나바로가 또다시 대칭을 이룹니다. 이렇게 유사점과 차이점을 강조하면서 둘씩 짝을 지우는 방식으로 루물루스는 영화적 밀도를 채워나갑니다. (좀 어거지긴 하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펄스 라이플도 딱 2정이더군요.)
3. 4편의 재평가?
로물루스는 에일리언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1편을 베이스로 나머지 시리즈를 눅진하게 녹여냅니다. 1편이 가지고 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절대적인 악의가 가져오는 섬뜩한 공포, 인간을 배신하는 과학이란 메인 테마외에도 강간과 원치않는 임신이라는 숨겨진 테마까지, 로물루스는 정확하게 잡아냅니다. 하지만 의외로 저평가받던 4편 리저렉션이 이종교배라는 후반부의 전개와 맞물려 눈에 띄게 오마주됩니다. 다만 전개는 정반대로 가는데, 산전수전 다겪은 리플리가 어찌됐건 에일리언에게 일말의 모성을 보였다면, 초보 엄마 케이는 일체의 모성을 거부하다가 자기 자식에게 죽음을 맞습니다.
4. 룩(Rook).
로물루스에는 에일리언 팬이라면 너무나도 반가운 캐릭터가 출연합니다. 얼마 전 작고한 이안 홈 경이 합성인간 룩 역으로 돌아왔지요. 물론 CG를 대역배우에게 입혀 만들어진 캐릭터지만, 이안 홈 경의 출연은 로물루스 제작진이 이 시리즈에 가지고 있는 경외감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1편을 복기해보면 사실 진짜 빌런은 다름아닌 이안 홈 경이 연기한 애쉬였으니까요.
이 새로운 합성인간은 자신을 룩이라고 소개하는데, 이는 에일리언2의 나오는 비숍처럼 체스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체스에서 비숍은 체스판에서 대각선으로 멀리 나아갈 수 있는 말입니다. 실제로 에일리언2에서 비숍은 탈출선을 확보하기 위해 기지를 가로질러 멀리 나아가죠. 그럼 룩은 어떨까요? 룩은 강력하지만 행동범위가 작아 체스 초반에는 크게 움직일 수 없습니다. 룩은 다른 말들이 죽어서 이동 공간이 확보되는 후반에 가서야 비로서 강력한 성능을 자랑합니다. 실제로 영화 초반의 룩은 몸이 반으로 잘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강력한 세치 혀를 놀려대며 동료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멘붕에 빠진 주인공들을 자신의 의도대로 조종하려 들죠.
로물루스라는 데스게임에서 제노모프가 살인마라면, 룩은 심판입니다. 문제는 이 심판이 공정한 경기를 할 생각이 1도 없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앞서 말했듯, 이 불공정한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그들이 만든 규칙을 거부하고 판 자체를 흔들어야만 합니다.
5. 마치며.
생각해보면 에일리언 시리즈는 각 편 모두 뛰어난, 독창적인 모티브를 가지고 있었죠. 시리즈의 토대를 닦은 1편에서 이미 에일리언하면 떠오르는 모든 주제의식과 모티브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걸 더욱 확장 보완, 발전시키면서 리플리와 뉴트, 그리고 퀸 에일리언의 관계를 통해 모성이란 새로운 모티브를 부여한 2편. 감옥을 수도원으로, 에일리언을 용으로 재해석하여 중세라는 모티브를 가져온 3편, 이종교배라는 모티브를 가져와 인간과 괴물의 경계를 흐뜨러뜨린 4편. 창조주와 인간의 관계를 통해 근친살해의 모티브를 가져온 프로메테우스까지. (커버넌트는요?라고 물으신다면... '저런 똥멍청이들에게는 절대 우주탐사를 시키면 안된다'는 거 정도?)
로물루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작들에 대해 무한한 오마주를 바치면서 시리즈의 강점들을 잘 챙기는 한편, 영화 사이사이에 자신들만의 모티브와 설정들을 영리하게 끼워넣습니다. 그렇게 로물루스는 에일리언 시리즈의 전통을 이어가는 또 한편의 후속작로서도, 전편을 하나도 보지 않은 관객들을 위한 단독 영화로서도 그 역활을 훌륭하게 해냅니다.
마지막으로 예전에 들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하면서 마무리할게요. 드라큘라(1992)에서 너무나 즐겁고 신나게 드라큘라를 연기하는 게리 올드만을 보고서 코폴라 감독이 그랬답니다. "아니 자네, 그동안 드라큘라 연기하고 싶은 걸 도대체 어떻게 참았나?" 페데 알바레즈 감독에게도 똑같은 말을 해주고 싶어요. "아니 감독님, 그동안 에일리언 영화 만들고 싶은 걸 도대체 어떻게 참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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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영화를 보고있자면 에일리언 시리즈를 사랑하는 감독이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었구나 싶은게 팍팍 느껴지더군요.
너무너무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안목이라뇨, 그냥 생각나는 걸 주저리주저리 쓴 것 뿐입니다. 과찬이십니다^^
나중에 바로 목 부분에서 검은액체를 빨아먹는 것을 보면 나에게 양분이 되는 맛있는 검은액체?를 찾는 것도 같고..
저는 그부분이 아리까리 하더군요. 엄마에 대한 일말의 감정이 있던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