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가미가 사람들 (1976) 가장 유명한 긴다이치 코스케 영화. 스포일러 있음.
긴다이치 코스케 영화들 중 가장 성공하고 유명한 영화다.
비단 긴다이치 코스케영화들뿐 아니라, 대표적인 추리영화들 중 하나다.
깊이는 여왕벌이나 혼진살인사건, 그로테스크함은 옥문도나 병원 고개의 목매는 집, 스케일이나 스토리의 흥미로움은 여덟 사무라이 무덤 마을, 감정적인 울림은 악마의 공놀이 노래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은 위의 모든 요소들에서 높은 수준을 골고루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절차탁마, 즉 굉장히 공을 들여 영화를 갈고 닦았다는 것 같다. "대감독이 각잡고 만들었다."
굉장히 유명한 장면이나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깊이 계산하고 고려해서 촬영한 장면들이다. 지금 보아도 세련되어 보인다. 대감독 이치가와 곤의 걸작이다.
이누가미가는 일본 굴지의 제약회사를 가진 재벌가문이다.
이누가미가의 수장 이누가미 사헤가 죽는다. 그는 가진 것 없는 청년에서 일본 굴지 재벌이 된 사람이다.
그는 이상한 유언장을 남긴다. 친딸이 세명이나 있는데도, 그는 노노미야가문의 여자인 노노미야 다마요에게 재산을 남기는 이상한 유언장을 남긴다. 정확히 말하자면, 노노미야 다마요에게 자신의 세명 손자들 중 하나와 결혼하라고 한다. 그러면, 노노미야 다마요와 결혼한 손자가 재산을 차지하는 것이다. 자기 재산의 행방을, 생판 남인 노노미야 다마요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다.
손자들 간에는 노노미야 다마요와 결혼해서 재산을 독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진다. 그 손자들의 엄마 - 사헤의 친딸들도 자기 아들이 다마요와 결혼하도록 만들려고 혈안이 된다. 곧 이 피 튀기는 경쟁은, 연쇄살인사건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영화는 본질적으로,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슬래쉬무비다.
다양한 살인방법으로 잔혹한 살인이 벌어진다. 다리오 아르젠토의 지알로영화들처럼, 관객들에게 잔인하고 기기묘묘한 살인장면을 보여주어 쾌감을 준다.
왜 이런 살인이 벌어지는지는 명확하다.
이누가미 사헤가 남긴 거액의 유산을 놓고 후손들끼리 경쟁하다 보니, 서로 죽이는 것이다.
도끼로 목을 자르고 질식시켜 죽이고 거꾸로 물에 몸을 쳐박고 독약으로 죽이고 한다.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공포와 충격을 줄까 그것을 극대화하려 한다. 인형의 목을 떼고 사람의 잘려진 목을 대신 갖다 놓기도 하고, 물 속에다 시체를 거꾸로 박아넣기도 한다. 요즘 잔인하다는 호러영화들이 많이 하는 방법이다. 마리오 바바의 걸작 베이 어브 블러드와 주제나 소재 줄거리가 비슷하다. 둘 다 슬래쉬무비다.
최초의 슬래쉬무비인 베이 어브 블러드가 1971년 영화이니까, 그것에 좀 뒤진다. 하지만,
완성도와 예술성, 재미는 훨씬 뛰어나다. 본격적인 슬래쉬무비가 나타나기 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아마 당시 관객들에게 요즘 슬래쉬무비가 주는 쾌감과 충격을 선사했을 것이다.
영화가 단순히 재벌가 사람들의 유산 상속을 둘러싼 혈투 정도로 끝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첫째 손자 스케키요의 존재다. 그는 전쟁 중 얼굴을 다쳐서 누구도 못 알아본다. 그래서, 고무로 만든 새하얀 가면을 쓰고 다닌다, 그는 정말, 스케키요가 맞는가? 본인이먀 물론 자기가 스케키요라고 말하기 때문에, 탐정이 이를 밝혀야 한다. 스케키요라고 자칭하는 이 가면의 사나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주요 수수께끼들 중 하나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주도적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사람이라기보다 관찰자에 가깝다.
시체를 보면 다른 사람들은 놀라는데, 긴다이치 코스케는 비명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을 정도로 심약하다.
굉장히 감정적이고 동정심 많고 순진하다. 아주 유니크한 탐정이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자기가 등장하는 추리영화들에 코믹함, 인간적인 따스함 등을 부여한다. 아주 잔혹하고 비정한 살인사건 현장도, 그가 등장하면
따스하고 인간적이고 유머러스한 것이 된다. 만일 긴다이치 코스케가 없었더라면, 이 영화는 잔인하고 속 빈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 수수께끼는, 왜 사헤가 이런 유언장을 남겼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을 밝혀내는 것이 긴다이치 코스케의 몫이다.
사헤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유력가문인 노노미야가문에서 금전적으로 이누가미 사헤를 팍팍 밀어주었기 때문에, 사헤는 재벌이 될 수 있었다.
노노미야가문의 수장 노노미야 다이니는 동성애자였고, 사헤는 그의 애인이었다.
그리고, 사헤는 다이니의 아내와 불륜관계에 빠져서 임신까지 시킨다.
어쩌 보면 불쌍한 사람이다.
남들은 그가 권력이니 부니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딸은, 노노미야가문에서 입적해서 귀족의 딸로 자라고 있다.
그는 이 여자 저 여자를 건드려서 아이를 낳는다. 그는 천박하고 신분 낮은 여자들만 건드린다. 그리고, 그들을 경멸하고 난폭하게 다룬다. 자기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노노미야 다이니의 아내뿐이니까. 그래서, 그는 싸구려에 천박한 여자들만 욕정을 채우려 건드린다.
그에게는 어머니가 다른 세 딸들이 있다. 모두 천박하고 신분 낮은 여자들을 건드려 낳은 딸들이다. 사헤는 자기 딸로 생각이나 했는지 의문이다. 그는 자기 딸들도 경멸하고 막 대한다. 그가 지금 이뉴미야가문에서,
진심으로 사랑하는 대상은 딱 하나다. 노노미야 다마요라는 노노미야 다이니의 손녀다. 법적으로는 노노미야 다이니의 손녀이지만, 실은 자기 외손녀다. 딸들이 질투할 정도로 그는 다마요에게만 사랑을 쏟는다. 죽을 때에도, 그는 자기 전재산을 다마요에게 물려주려고 한다. 하지만, 그러면 딸이나 다른 자손들이 가만 있겠는가? 덤벼들어 다마요를 죽이려 들 것이다. 그는 모종의 흉계를 꾸민다.
노노미야 다마요의 환심을 사고자 딸과 손자들이 안달이 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는 과정에서 손자들 간에 경쟁이 붙고 살인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손자들이 죽는 것보다도, 다마요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 사헤의 딸들은, 아버지가 자기들을 경멸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죽이려들 정도까지인 줋은 몰랐다. 큰 딸은 아버지에게 정나미가 떨어져서, 아들에게 이누가미가를 떠나라고까지 말한다.
이렇게 캐릭터들이 극단적이다가보니까, 일본 지배계급에 대한 비판같은 것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너무 비현실적으로 그로태스크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작이 워낙 걸작 추리소설인지라,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굉장히 뚜렷하고 그들간 갈등에 대한 묘사가 아주 긴박감 넘친다. 등장인물들의 개성이나 그들 간 벌어지는 사건이 아주 화려하다. 훌륭한 원작 플러스 대감독의 훌륭한 연출이 가져온 상승작용 때문이다.
아버지의 흉계를 눈치챘으면서도, 딸들은 아버지 흉계대로 스스로 움직여 준다. 왜냐하면, 재산을 차지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아마도 사헤의 계획대로였겠지만) 손자들은 하나만 남기고 다 죽는다. 그리고, 재산은 다마요와 그녀가 선택한 손자에게 간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사헤의 흉계를 막는 일은 못한다. 하지만, 살인이 다 끝난 후, 사헤의 흉계를 만천하에 밝혀 그의 추악함을 파헤쳐내는 일은 한다. 모두들 그의 악마적인 계획에 놀란다. 다마요는 이 추악하고 악마적인 이누가미가를 떠나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긴다이시 코스케는 살인이 일어날 대로 다 일어난 다음, 범인을 잡는다. 이누가미 사헤가 자기의 악마적인 계획을 다 성공시킨 다음에, 그의 악마적인 계획을 만천하에 밝힌다. 그는 사건의 진행을 무엇 하나 바꾸지 못한다. 살인범이나 배후의 계획자 이누가미 사헤는 자기 목적을 다 달성한다. 긴다이치 코스케 추리소설이 비판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어쩌면, 이 사건들의 배후에 있는 것은, 경직되고 자유롭지 못한 일본의 사회계급구조가 있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명탐정이라고 하더라도, 긴다이치 코스케가 이것을 바꿀 수는 없다. 그는 이 거대한 악마적인 고착된 사회구조 속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일을 하는 것인 지도 모른다.
어쩌면, 긴다이치 코스케는 전형적인 일본인의 사고방식을 대변하는 인물일 지도 모른다.
고착된 사휘구조를 변혁시키려 하기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사고방식 말이다. 이누가미가의
고착되고 악마적인 구조를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이를 고치려 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받아들인다.
이누가미 사헤의 계급구조 상위 포식자 지위를 받아들이고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그 계급구조를 받아들인다는
전재조건 하에서, 이누가미 사헤의 "개인적인" 악마성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다.
다마요나 스케키요 등 이누가미가의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들도, 이누가미가에 남아서, 이 경직되고 모순적인 이누가미가의 구조를 적극적으로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긴다이치 코스케가 이 사건을 해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모순된 사회구조, 계급구조, 개인적인 악마성은 늘 승리한다.
긴다이치 코스케 영화가 늘 무언가 허전하고 씁쓸하게 끝나는 이유다. 사건은 해결하지만, 본질적인 것에서는 늘 패배한 채, 쓸쓸하게 떠나가는 긴다이키 코스케의 뒷모습은 참 처연하고 비극적이다.
사실 이 긴다이치 코스캐영화가 영화사에 남을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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