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o's land (1972) 수정주의서부극의 걸작. 스포일러 있음.
차토는 인디언이다.
그는 가족과 함께 조용히 사막에 살고 있다. 어느날 백인의 마을에 나가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백인건달들이 시비를 건다.
"선생, 조용히 술 마시고 나갈 테니 날 내버려두시오" 차토가 점잖게 말해도 계속 총을 들고 시비다.
인디언은 백인의 술집에 오지 말고 꺼져라 하는 말을 한다.
차토는 재빨리 총을 꺼내 그를 쏘아 죽인다.
아마 1970년대에는, 인종차별도 극심했을 테고, 백인이 사는 곳에는 유색인종은 들어갈 수 없다는 식의
차별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차토가 백인건달을 쏘아 죽이는 장면은 작게 볼 수 없을 것이다.
당시의 차별적인 미국사회에 총을 갈긴 것이다. 소리만 요란했지, 차토의 총에 맞아 즉사하는 백인은 인간쓰레기다.
마을의 백인들은 hunting party 라도 벌이려고, 팀을 짜서 차토를 뒤쫓는다.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이후, 총을 쏘아볼 기회가 없어 안달이 났던 잭 팔란스는
총을 들고 리더가 되어 프로페셔널하게(?) 차토를 뒤쫓는다. 차토는 사막으로 달아난다.
이 영화는, 자기 집인 사막에 간 차토가 백인들을 하나 하나 죽이는 이야기다.
백인들은 사막이라는 곳의 무서움을 잘 몰랐다. 혹시 베트남전쟁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일단 사막에 들어가자 백인들은 나올 수 없다.
뭐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 뜨거운 햇빛, 부족한 물, 타는 듯한 사막, 열기 - 이 모든것들이 백인들을
쥐어짜고 채찍질하고 탈진하게 한다. 백인들은 자기들이 이 절망적으로 뜨겁고 황량한 곳에서 서서히 죽을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그러자, 그들 사이에 내분이 생긴다. 사실 대부분의 백인들이 무슨 신념이나 생각이 없다.
우왕좌왕 참가한 것뿐이다. 차토에게 가족을 살해당한 소수의 백인들이 주도권을 쥐고,
강제적으로 다른 백인들을 끌고 간다. 대다수의 못난 백인들은 심지어 자기가 왜 가야하냐 하는 이유도 없이
그냥 죽음의 땅으로 끌려간다.
당시 사회를 잘 나타내고 비판하는 내용같다.
백인들에게는 뜨거운 죽음의 땅이 차토에게는 집이다. 차토가 철저히 주도권을 쥐고 백인들을 유인하고 죽인다.
인디언들에게 이 죽음의 땅이 원래부터 집이었는가? 그것이 아니다.
인더인들도 풍요로운 땅에서 대대로 살아왔다. 그들을 이 죽음의 땅으로 내몬 것은 백인들이다.
죽음의 땅이 차토에게는 집이다 하는 사실에는, 백인들 위주의 잔혹한 침략사가 있다.
차토도 처음부터 백인들에게 냉혹하게 대할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백인들이 사막에 있는 차토의 집을 찾아내고, 차토의 가족들을 잔인하게 폭행하면서
둘의 사이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차토의 가족들은 건드리면 안된다 하고
백인들이 항의해 보지만, 소수의 극단주의자 백인들은 오히려 다른 백인들을 협박해 가면서
차토의 가족들을 폭행한다. 차토의 가족들을 폭행한 죄는, 모든 백인들이 나누어진다.
찰스 브론슨은 인디언 차토역을 맡아 훌륭한 연기를 펼친다. 원스 어폰 어 타인 인 더 웨스트에서
멕시칸을 맡았던 그는, 여기에서는 아파치 인디언을 연기한다. 찰스 브론슨의 카리스마가 이 영화 성공의
60&는 차지한다. 나머지 30%는 암울하고 절망적인 뜨거운 사막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은, 물리적인 장소로서의 사막이라기보다
고통받는 백인들의 최라는 정신적인 사막 같다. 물리적인 장소로서의 사막을 보여주지만, 사실은 그를 통해서
차별이나 학살 그리고 잔혹을 저지르는 백인들의 죄라는 정신적인 죽음의 장소를 더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인디언이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폭력은 안돼. 평화가 필요해."따위 말은 않는다.
차토는 눈 하나 깜박 않고 백인들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백인들은 공포스럽다. 마지막 하나 남은 백인이
도망가려 할 때, 차토가 어디선가 나타난다. 차토는 백인을 어디론가 몰고 간다. 그는 간신히 사막에서 빠져나왔는데, 다시 사막으로 쫓겨들어간다. 카메라는 공중에서, 그 백인이 쫓겨들어가는 장소를 비춘다.
그것은 끝도 없이 뻗은 붉은 사막이다. 그것이 그 백인이 앞으로 헤멜 장소다. 그냥 절망과 죽음만이 그에게 있을 뿐이다.
수정주의 서부극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극단적이고 암울하다.
내일을 향해 쏴라같은 영화에서도 주인공들에게는 영웅주의가 있다. 작은 거인같은 영화에서는
주인공에게 공감과 동정주의가 주어진다. 이 영화에서는 어느것도 없다.
백인들을 동정하지도 않거니와, 차토가 영웅으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차토는, 술 마시다가 시비붙자
건달을 총으로 쏘아죽인 부랑배일 뿐이다.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에서 팔스 브론슨은
멕시칸 무법자로 나온다. 하지만, 그 영화에서, 그는 주인공에다가 larger than life 스타일로 그려진다.
이 영화에서 차토는, 영웅이라든가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차토를 미화하는 것을 피한다.
어쩌면 이것이 당시 시대라고 비난하는 것이 아닐까, 이 영화는?
보진 못했지만 약간 <람보>의 원형 같은 느낌도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