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다르크의 수난 (1928) 가장 실험적이고 감동적인 영화. 스포일러 있음.
이 영화는 아주 특이하다. 바로 영화의 대부분을 등장인물들의 얼굴 클로즈업만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등장인물들 극단적인 얼굴클로즈업이 번갈아 나오며 스토리 전개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 그리고 가치관 충돌을 다 전달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영화는 굉장히 감동적이다.
잉마르 베리만감독의 영화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있다. 제7의 봉인의 저승사자를 똑같이 닮은 등장인물이 여기서 나온다.
이 영화는 극단적인 얼굴클로즈업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영화가 드라이하고 앙상한 개념의 뼈대만 남은 그런
건조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영화가 자잘한 것은 빼버리고 본질과 철학에 집중하는
그런 영화인 것은 맞다. 하지만, 영화역사상 최고의 연기라고도 불리는 르네 잔 팔코네티는 굉장히 풍부한 얼굴표정으로 영화를 다양한 감정 드라마로 채운다. 이 영화는 본질에 파고들어 그것을 탐구하는 그런 철학적 영화이기도 하지만,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으로 드라마를 끌고 나가는 뜨거운 영화이기도 하다.
잉마르 베리만감독의 스타일을 아시는 분들은, 이 영화가 대체로 어떤 느낌일 지 짐작할 수 있다.
드레이어감독의 특징대로, 각 인물들의 배치는 정교하게 잘 계산된 정물화 속 정물같다. 이런 장면들은 인위적으로 보이기보다, 어떤 본질을 상징하기 위해 잘 배치된 상징들처럼 느껴진다.
잔다르크와 신부들 간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신부들은 잔다르크의 성스러움을 훼손시키려고
비웃기도 하고 조롱하기도 하고 욱박지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한다.
잔다르크는 신부들과 대화하다가 갑자기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서, 신부들이 내어주는 서류에 사인을 하고 만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잔다르크는 굉장히 인간적이다. 부도덕하고 잔인한 사회 속에서 위태위태하게 자기 가치관을 지켜나가려고 하는 연약한 인간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래서, 관객들이 잔다르크에 깊이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으리라.
누가 죽음을, 그것도 불에 타죽는 화형을 무표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영화 속 잔다르크의 위대함은 그리고 성스러움은, 차갑고 영웅적으로 화형을 받아들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뜨겁고 연약하고 무지하고 순결한 한 인간의 영혼이,
모든 회의, 공포, 경멸을 서서히 극복하고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 속으로 나아가는 데 있다.
아래 등장인물들의 얼굴만 보고도, 그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즉시 할 수 있다.
권위적이고 위선적이며 (속으로는 잔다르크가 자기 희생을 함으로써 신의 의지를 실현시키기를 바라는) 신부,
인간의 탐욕과 추함을 상징하는 인물, 천박하고 경박한 인물, 다른 신부들보다는 젊고 강직한
(유일하게 잔다르크를 도와주려고 하는) 신부. 이들이 정물처럼 잘 배치되어, 영화 한 편이 감정과 개념의 정물화 같다.
잔다르크를 화형에 처하는 판결을 하고, 그렇게 권위적이고 곧건해 보이던 재판관 신부는
몰래 복도로 간다. 그리고 몰래 괴로와한다. 존 어브 인터레스트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잔다르크가 화형을 당하는 순간, 영화는 갑자기 바뀐다. 굉장히 역동적이고 불안정한 화면으로 바뀐다. 카메라 하나를 어깨에 메고 뛰어다니며 실제현장을 찍는 것같은 연출이다. 잔다르크를 돕던 젊은 신부는자기 목숨을 걸고 십자가를 들고와서 잔다르크에게 건넨다. 잔다르크는 십자가만 바라보며 불길 속에서 기도를 하다가, 활활 불이 붙은 석탄이 되고 만다. 이것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끔찍하다.
이를 바라보던 프랑스민중들은 폭동을 일으킨다. 젊은 신부도 자기가 앞장서서 민중을 이끈다.
하지만 이들은 점령군인 영국군에게 학살당하고, 민중의 봉기는 실패한다. 이 장면은 굉장히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사실적이다. 앞의 얼굴클로즈업만으로 이루어진 정적인 장면과 정반대다. 관객들의 마음을 저절로 욱하게 만드는
이 프로파간다처럼 느껴지는 장면은 어떤 의도를 갖고 있으리라. 지금까지의장면이 정적이었기에.
클라이맥스의 이거운 장면은 더욱 에너제틱하게 느껴진다.
재판관신부는 영국군에게 부역하여 살아남고 잔다르크는 죽었다.
하지만 나이든 신부는 몇년이나 더 살았을까? 고작 몇년 더 살고, 그 신부는 잔다르크와 자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잔다르크가 성녀가 되어가는 것을 자기 눈으로 직접 목격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자기가 살기 위해서
잔다르크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식의 변명을 했을 것이다. 몇년 안 되는 생을 위해, 영원히 성스러운 삶과 대비되는 영원히 추악한 삶을 선택한 것이다. 민중과 함께 봉기하다가 영국군에게 살해당하는 젊은 신부도 마찬가지다. 영원히 정의로운 삶으로 기억될 것이다.
잔다르크에 대한 영화는 여러번 만들어졌지만, 1928년 만들어진 이 영화처럼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영화가 또 있을까? 인간의 본질에 대해 파고든 영화가 또 있을까?
감독 칼 드레이어의 또다른 걸작으로 뱀파이어가 있다. 놀라운 작품이다.
** 르네 잔 팔코네티도 50대에 죽은 여배우다. 하지만, 이 영화 잔다르크의 수난으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 영화사상 최고의 연기를 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어딘가에 있다는 그녀의 무덤을 지금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예술이란 인생이란 이렇게 신비롭다.
추천인 4
댓글 8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