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시나리오>: 융을 선택한 과감함, 그래서 감내해야 하는 아쉬움
세상 모든 현상에 우연은 없다 – 칼 구스타프 융 –
분석심리학의 아버지인 융의 개념 전반을 관통하는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드림 시나리오>가 융의 사상을 뼈대로 삼았다는 점은 굉장히 과감하면서도 흥미로운 대목이었습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주인공인 폴이 불특정 다수의 꿈에 나타나는 것 역시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영화는 이 현상의 기저에 깔린 원인을 밝히지도, 밝혀내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폴이 처한 상황을 아주 무책임하게 관조하고 방치할 뿐이죠.
<드림 시나리오>는 융의 집단 무의식 개념을 아예 대사로 언급할 만큼 중요한 요소로 여기며 극의 흐름을 이끌어갑니다. 융은 집단 무의식 이론을 구축하면서 두 가지 특징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는 인간의 무의식 속에서 행동과 판단 전반을 지배하는 영적인 존재, 다른 하나는 인간에게 내재된 태생적인 공포입니다. 영화는 이 두 가지 특징을 놓치지 않고 극 전개에 적극 활용합니다. 영적인 존재는 폴을 둘러싼 초현실적인 현상의 당위성이 되고, 태생적인 공포는 사람들의 꿈에 등장하는 폭력적인 폴의 존재를 뒷받침해주기 때문이죠.
다만 융의 관점은 정신분석학계에서도 비판의 대상이 될 만큼 지나치게 관념적이면서도 추상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따라서 이에 기반한 서사 역시 다소 개연성을 잃어버리는 단점이 있죠. 그래서 저는 <드림 시나리오>가 코미디라는 장르를 택한 점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심리학 개념을 한 인물의 우스꽝스러운 사건으로 중화하는 정통 코미디는 물론 캔슬 컬쳐, SNS 바이럴 등 현대 사회의 병폐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 요소도 엿볼 수 있는 게 큰 장점이죠. 이 모든 걸 극 중심에서 생동감 넘치는 연기로 구현해내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원맨쇼 역시 일품입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게 있다면 실험적인 도전에 따르는 한계를 매끄럽게 메우지 못했다는 겁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현상과 그로 인해 기뻐하며 고통받는 인간. 이 과정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는 주인공 폴의 모습이 다소 중구난방으로 보인다는 거죠. 물론 영화 초반에 지루하고 평범한 인간이라는 설정을 줄기차게 강조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과연 폴에겐 자아라는 게 존재할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종잡을 수 없다는 겁니다. 이게 영화가 의도한 바라고 해도 모호한 현상에 갇힌 캐릭터마저 모호하다면 과연 대중이 이 영화의 매력을 제대로 캐치할 수 있을까 싶은 아쉬움은 어쩔 수 없이 남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전 이 영화가 다소 정형화되어 가는 영화계에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졌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난해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라도 장르 선택과 연출 방향만 제대로 잡는다면 소구력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이미 해외에서 어느 정도 증명했으니까요. 이제 개봉까지 3일 정도 남았는데, 익무 회원 여러분도 시간 나실 때 한번쯤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설령 내용이 마음에 와 닿지 않더라도, 니콜라스 케이지의 신들린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100분이란 러닝 타임이 아깝진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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