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보다 덜 깊으나 더 먼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약간 스포)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이하 퓨리오사)를 왕십리 아이맥스에서 보고 왔습니다. 사실 지난 분노의 도로를 정말 재미있게 봤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인터넷 동영상을 보면서 사전 공부도 했고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분노의 도로를 하길래 이것도 정독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코믹스와는 약간 설정이 바뀐 부분이 있는 것 같네요. 전체적으로 보자면 지난번 분노의 도로가 사건을 따라간다면 퓨리오사는 퓨리오사라는 개인을 따라갑니다. 우리가 지난 1편에서 만났던 퓨리오사가 어떠한 여정을 거쳐서 거기까지 가게 되었고, 어떠한 사건을 겪으면서 그 위치까지 가게 되었는지 설명해 줍니다. 일반적인 로드무비는 끝까지 어디로 갈지 모르게 되지만, 퓨리오사는 아무래도 프리퀄인지라 정해진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프리퀄은 그 결과로 가는 여정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편인 분노의 도로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메시지나 영화업계에 주는 반향 들은 덜할지 모르지만 퓨리오사 개인의 여정 면에서는 더 멀리 나갔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네요.
정말 다행스럽게도 퓨리오사는 할리우드에서 계속 반복하는 나쁜 속편, 나쁜 시퀄의 공식을 현명하게 잘 피해 갑니다. 로저 밀러 감독은 퓨리오사에서 이상한 것을 더 넣으려는 욕심도, 전편에서의 미덕을 뺄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전편은 이렇게 만들어봤으니 이번엔 이렇게 바꿔볼까라는 모험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1편을 본 사람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장면은 무엇일까?'를 고민한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그래서 다행히 '전편에 위광에 기댔다가 망한 속편' 리스트에 오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정교하고 명확한 액션신도 건재합니다. 분노의 도로도 그렇고 퓨리오사도 그렇고 요즘 유행하는 화려하고 복잡하고 번쩍번쩍하고 카메라는 막 흔들리지만 뭐 하는지 잘 모르겠는 액션이 아니라 인과가 딱 딱 잘 짜여진 액션을 카메라를 통해 정확하고 당당하게 스크린 너머에 있는 관객들에게 보여주죠.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로저 밀러의 매드맥스 액션의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우스갯소리 중에 디자이너에게 최악의 요구사항이 "심플하면서 화려하게 고급스러우면서 무난하게 클래식하면서 모던하게 해주세요" 라던데 로저 밀러 감독은 이걸 구현해 낸 것이죠.
사실 이번 퓨리오사 개봉 전에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던 것이 영화의 제목이자 주연이었던 임페라토르 퓨리오사였습니다. 전편에서 샤를리즈 테론이 진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대표할 만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면서 엄청난 반향을 이끌었었기 때문에 신예라고 할 수 있는 안야 테일러조이가 그녀를 대체할 수 있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죠. 결과적으로 안야 테일러조이는 샤를리즈 테론을 뛰어넘진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패했느냐? 그건 아닙니다. 전 영화에서의 안야 테일러조이의 퓨리오사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결과물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안야 테일러조이 본인의 노력과 함께 전편에서 샤를리즈 테론이 쌓아 놓은 것이 적지 않은 도움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영화에서 나온 어린 시절의 퓨리오사가 안야 테일러조이의 얼굴을 CG로 리터칭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어? 그럼 샤를리즈 테론을 썼어도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살짝 들었지만 아무래도 그랬다면 젊은이의 그 팍팍팍팍 뛰어다니는 액션을 찍을 때 티가 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리시맨때 오히려 배우들의 얼굴보다 걸음걸이나 몸동작 등에서 너무 나이 든 티가 났던 생각이 들었거든요.
크리스 헴스워스는 디멘투스 역을 맡으며 확실히 토르의 망토와 망치에서 벗어난 것 같습니다. 익스트랙션때까지만 해도 왠지 토르가 총싸움을 하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진짜 토르의 향기를 1g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망토와 장발을 휘날리며 채리엇을 몰고 다니는 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특히 감탄했던 게 억양 연기가 진짜 기가 막혔습니다. 떠버리 기믹이었는데 그 불량미 넘치는 대사들을 얼굴 가리고 듣게만 했으면 저는 토르인지 전혀 몰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넷을 훑어보다 보니 퓨리오사에 대해 안 좋은 평을 내리는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클라이맥스의 액션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들을 지적하시더군요. 사실 첫 번째 탈출과 잭과의 첫 만남에서의 전투가 최고점을 찍었다면 잭과 퓨리오사가 총알 농장에서 디멘투스 패거리들에게 쫓기는 액션은 그보다 한 단계 낮았고, 마지막 퓨리오사의 추격신은 초반의 퓨리오사 어머니의 액션신보다도 밋밋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건 저도 그렇게 느낀지라 할 말이 없습니다.
특히 제대로 묘사했다면 엄청난 초대형 액션신으로 뽑혔을 것 같은 마지막 40일 황무지 전쟁을 그냥 콜라쥬로 슥~ 하고 훑은 점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네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감독은 이 영화를 퓨리오사의 이야기로 규정짓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위에서 이 영화는 사건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퓨리오사라는 개인을 따라간다고 했었죠? 퓨리오사 입장에선 디멘투스를 죽여 복수를 하는 것이 중요할 뿐 40일 황무지 전쟁은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전쟁일 뿐인 것입니다. 또한 퓨리오사의 마지막 추격은 퓨리오사 어머니의 처음의 추격과 전혀 반대 입장에서 수미쌍관을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딸을 구하기 위한 추격 vs 복수를 위한 추격으로 그 성격은 완전히 반대이죠.
최후의 결말을 둘의 대화로 처리해 버린 것에 대한 불만도 있을 것 같습니다. 화끈한 액션을 기대하셨던 분들에게 둘의 말싸움(?)은 확실히 맥빠지는 부분이었겠죠. 그나마 두 배우가 수준급의 연기를 선보여서 연기력 대결을 선보인 덕에 그나마 잘 마무리가 되었지 자칫 잘못했으면 진짜 흐지부지한 결말이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디멘투스의 최후(?)는 개인적으로 아주 맘에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궁금증이 하나 생겼는데 마지막에 디멘투스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진실일까 거짓일까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어차피 이제 자신은 죽게 될 몸이니 퓨리오사를 평생 정신적으로 괴롭히고 조롱하기 위해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떠든 것일까요? 아니면 진짜 그 역시 시대의 피해자인 것일까요? 그가 영화에서 보여준 모습들과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전자가 맞는 것 같고, 애지중지하는 곰인형이나 개들이 그를 잘 따르는 것을 보면 후자가 맞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마 조지 밀러 감독은 어느 게 정답인지 알려 주지 않을 것 같네요.
사실 처음 분노의 도로를 봤을 때만큼의 충격은 없었습니다. 사실 분노의 도로를 처음 봤을 때 제 얼굴은 차가 뒤집혀 자는 모습을 보고 벙찐 눅스 - 니콜라스 홀트와 같은 표정이었거든요. 이번 퓨리오사는 그만큼의 충격과 센세이션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전편은 물론이지만 이 작품 역시 큰 화면으로 보는 걸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굳이 아이맥스로 꼭 보라는 얘기는 아니고 충분히 영화관에 가서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는 얘기입니다. 집에서 TV로 보거나 작은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 본다면 그 감동이 훨씬 적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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