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발리우드] 《피케이》 2차 맛살라 톡- 성상민 만화평론가와의 대담

인도영화에 한 ZOOM 톡, 맛살라 톡.
영화 《피케이》 맛살라 톡 2차로 미디어스에서 활동하는 성상민 만화평론가와의 대담으로 꾸며봤습니다.
raSpberRy(이하 라): 오늘 관객이 많이 왔었나요? 예전에 그 극장에서 홍상수 감독님의 《자유의 언덕》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는 평일이라 그런지 관객 분들이 많지는 않으시더라고요
성상민(이하 성): 사실 아트 시네마라도 광화문에 있는 시네큐브를 제외하면 적게 오는 건 일상이죠. 그게 바로 한국에 있는 대다수의 예술 영화관의 현실이죠. 그래도 서울이라 그나마 많은 겁니다.
라: 그런데 아트시네마에서 이 영화를 아예 안하는 것도 아니고 아트하우스 모모에서도 하기는 하는데 그곳에서 상영하는 버전은 편집판이거든요.
성: 그러고 보니 감독판을 상영하는 곳은 총 몇 곳인가요?
라: KU체인 두 곳에서만 틀더라고요. 그래도 《세 얼간이》 인도판 같은 경우는 아트하우스 모모를 비롯해서 지방까지 있긴 했는데. 영화사가 달라서 그런 건지. 처음에는 이 영화 《피케이》를 수입한 영화사도 이 영화를 와이드 스크린으로 가려고 했었나본데 상영관을 못 잡은 건지 극장 체인 측이 이 영화를 하면 메리트가 별로 없겠다고 생각한 건지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성: 진실은 저 너머에...
라: 그런데 2009년, 《블랙》을 개봉하던 시즌이 딱 이 때였어요. 그 영화는 스크린을 많이 잡았어요.
성: 그 영화는 흥행도 잘 되었죠.
라: 이 시즌이 메리트가 있기는 한 게 여름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이 빠지는 시기거든요. 당시 개봉했던 블록버스터급 영화는 《해운대》였는데 그 당시가 그 영화가 끝물이었던 시기였거든요.

라: 《피 케이》는 《블랙》보다 더 수입사에게 확신을 줄 수 있었던 요소가 있는데 바로 기존 발리우드 영화 권역인 북미나 오세아니아가 아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성: 대만에서 잘 되었다고 하던데
라: 대만보다 더 큰 시장이 있죠. 바로 중국입니다. 요즘 특히 중국에 인도영화들, 특히 발리우드 영화들이 많이 수입되어서 인도에서 선보이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아마도 할리우드 영화들이 중국이란 시장을 캐시카우처럼 쭉쭉 뽑아먹는 모습을 보면서 그 모델을 이 영화에 적용시켰던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 개봉할 당시 수입사는 이 영화를 와이드방식으로 풀었습니다. 한 1,500여개 스크린에서 개봉되었지요.
성: 중국 개봉할 당시 몇 위였나요?
라: 4위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할리우드 영화 같은 영화들도 높은 순위에 올랐다가 금방 빠지는 시장이 중국시장이거든요. 본토 영화들은 대박 나는 영화들은 대박이 나지만 대부분 기도 못 씁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서 《피케이》는 4위로 데뷔했지만 꽤 오랫동안 차트에 머물었습니다. (주: 2위 데뷔로 정정합니다)
그리고 북미 시장에서 《피 케이》가 미화 천만 달러를 돌파하기까지는 6주라는 시간이 걸렸는데요. 중국에서는 2주도 안 걸렸어요.
성: 《피케이》가 일본에는 개봉을 했나요?
라: 아니요. 원래 인도 측에서 비 발리우드권 시장으로 개봉을 예고했던 곳이 바로 중국 그리고 일본이었는데요. 우리나라에서 개봉을 한다고는 언급을 하지 않았어요. 아마 우리나라 영화 시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겠죠.
그런데 2005년 영화였던 《블랙》을 2009년 늦깎이로 개봉시키고 대박이 났잖아요. 지금은 인도에서 그런 구분을 하지 않지만 영화의 흥행을 몇 단계로 나눴던 적이 있어요. 아주 망한 디제스터(disaster)부터 가장 성공한 올 타임 블록버스터(all time blockbuster)까지 한 여섯 단계 정도로 말이죠.
사실 인도영화 시장은 대개 내수시장이었습니다. 물론 인도영화가 직배되는 북미나 오세아니아쪽 같은 시장을 빼면 말이죠. 이 《블랙》이라는 영화는 인도에서 그리고 해외 개봉 수익이 평균(average)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90만 명이라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이 영화는 올 타임 블록버스터로 위치가 격상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대한 대접은 시원치 않지요. 이 이후 인도의 장사꾼들이 한 짓은 우리나라 시장을 연구하지는 않고 인도영화 수입가의 버블을 형성하는 일이었지요. 이런 상황인데 인도영화를 누가 삽니까.
영화상의 궁금증
성: 사제가 피케이의 목걸이를 받고 지불한 4만 루피는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인가요?
라: 1,000루피가 17,000원쯤 되니까... (주: 환율 계산기를 돌려본 결과 70만 원 정도가 나왔습니다) 사실 인도에서는 서민들에게 저 정도의 돈도 크긴 합니다. 이를테면 거리에서 파는 파코라라는 야채튀김도 몇 십 루피면 사 먹으니까요.
성: 피케이가 마을에서 20루피를 주고 사먹던 건 뭔가요? 당근인가요?
라: 네. 당근입니다. 커리의 대표적인 재료니까요.
성: 그리고 인도에서는 ‘네(긍정)’라는 표현이 고개를 끄떡이는 게 아니고 절레절레 흔드는 건가요?
라: 그렇죠. 이를테면 이런 상황이 있다고 봅시다. 인도에서 한 아주머니에게 “전화기 좀 써도 되요?”라고 물으면 그 아주머니는 대답대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굴은 웃음기를 머금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흔들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아주머니의 반응은 ‘응, 써도 될 것 같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입장에서 그걸 보고 있으면 엉뚱한 표정으로 ‘쟤가 뭔 짓을 하나’ 하는 표정처럼 보이니 애매하긴 하겠습니다.
성: 사제는 힌두교 사제 같은데 영화 속에서는 신을 숭배하는 게 아니고 사제를 숭배하는 것 같이 보이던데요.
라: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던 시기 중 제정 일치사회를 예로 들어보죠. 그 때 사제들의 역할이 뭐였습니까? 신도들은 아무리 빌어도 절대자의 응답을 들을 수 없는데 사제들은 응답을 듣고 마치 《피케이》에 나온 표현처럼 그분께 전화를 걸어서 ‘내가 칠공공-ㅇㅅㅇㅇ로 그분과 다이렉트콜 하는 사이야~’ 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던 거죠.
성: 하지만 요금은 니가 내고!
라: 신도들은 답답하죠. 나는 열심히 농사 잘 짓고 있었는데 비가 너무 와서 농작물을 망친 거예요. 하늘의 비는 인간이 내리는 게 아니잖아요. 또 어촌인데 남편이 풍랑을 만나서 죽은 부인이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부인은 그런 생각을 하겠죠. 풍랑은 왜 쳐서 남편을 죽인 것이며 죽은 남편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자연현상과 같은 일이 닥치다보니 우리를 굽어 살피는 어떤 존재가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이고 그 존재와 직통전화로 교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종교적인 권력 뿐 아니라 정치적인 권력도 갖게 된 것이죠.
지금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사회에 살고 있고 개인이 스마트폰을 쓸 정도로 고도로 기술화된 사회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전히 불안합니다. 갑자기 길을 잘 가다가도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을 수도 있는 것이거든요. 아직도 종교와 사제들의 힘이 강한 이유는 이런 불안감 때문이죠.
그래도 종교의 순기능이 있다면 우리가 착하게 덕을 쌓으면 절대자가 그 사람을 받아주고 그분이 계신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믿는 것. 이런 건 좋은 거지만... 헌금통에 손을 넣어봤는데 손이 쑥 들어가는 걸 보고 “아, 믿음이 얕으시군요.”이러고 헌금통을 들어보면서 “여러분 믿음이 너무 가벼우세요” 이런 모습이 지금 종교의 단면이라고 생각하면 참 안타까운 거죠.
성: 여주인공이 다니는 회사의 국장이 영화 속에 나오는 종교의 열혈 신도에게 공격을 당했다고 재미있게 표현하는데 실제로도 언론이 종교에 의해 공격받는 경우가 있는지
라: 솔직히 무섭죠. 저는 인도에서 가장 강심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치를 까거나 종교를 까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담이지만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종교 원리주의자들이 난동을 일으키기도 했죠.
영화 개봉당시에 말이 많기는 했습니다. 인도에서는 ‘파키스탄으로 꺼져라’가 욕이 될 정도로 파키스탄에 안 좋은 감정이 큰데요. 근본주의자들은 왜 이렇게 파키스탄과 파키스탄 공공기관을 미화한 것이며, 힌두교를 비판하는 것도 모자라서 영화 중간에 시바신 연기를 하는 배우가 나오지 않습니까. 신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화장실에 충분히 갈 수 있겠지만 시바신의 분장을 한 사람이 화장실에 갔다는 그 자체 그리고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우스꽝스럽게 그린 의도가 뭐냐, 불순하다 이랬다는 거죠.
성: 한국의 《자가당착》 같은 영화처럼 정부에서 뭐라고 하지 않은 게 다행이네요.
라: 그러게요 시바신이 두 동강이 나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렇게 됐으면 히라니 감독은 아랍 감독님들처럼 망명하셔야죠.
성: 영화도 실제로 인도에서 개봉했을 때 말이 많았었군요.
라: 그런데 한 편으로는 라즈쿠마르 히라니 감독이라는 사람이 《세 얼간이》같은 흥행작도 만들고 인도에서 인정받는 위치의 감독이 되니까 이 사람이 저런 논쟁적인 영화를 만들어도 다른 감독들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죠.
다른 선상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박찬욱 감독님도 《공동경비구역 JSA》같은 대중적인 작품이 성공하고 나니 복수 3부작같이 자신의 작가적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뭐라고 안하잖아요.
그러고 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좋게 생각하고 싶어요. 힘이 있는 감독이 이런 도전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하면서 좋게 보고 싶어요. 이를테면 류승완 감독 같은 메이저 감독이 《베테랑》같은 영화에서 용역이었나요?
성: 노조요. 저는 놀란 게 한국영화에서 노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건 아니지만 한국 상업영화에서 민주노총 마크가 나온 건 처음 봤어요. 심지어는 화물연대 마크가 나왔어요. 노조 이야기까지는 보여줘도 노조 마크는 보여주지 않거든요. 아니 실제로 존재하는 노조 이름 자체도 노출시키지 않는데 그걸 그대로 보여줘요.
라: 그 영화를 배급한 CJ가 재벌 기업인데도 불구하고 재벌가의 범죄를 다룬 이야기를 하고 말이죠, 그 영화들이 인도에서 《피케이》가 가지고 있는 논란의 파급력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대형 배급사의 영화에서 감독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더라고요.
카르나카타 지역에서 행해지는 마데이 스나나(Madey Snana) 의식
라: 그러고 보니 이건 다른 얘기인데 영화 속에서 종교 의식이 많이 나오죠. 세례도 받고 땅바닥도 구르고
성: 철 채찍을 하는 데는 어디인가요?
라: 저는 그 모습을 다른 인도영화에서도 본 적이 있어요. 《쉐이탄(Shaitan)》이라는 영화였는데 영화의 오프닝에 나와서 전개와는 상관이 없는 장면이긴 했는데요. 영화 속 주인공중 한 명이 그 의식을 하는 사람 앞에 다가와서 자기도 신난다고 자기 허리띠 풀어서 막 자기를 때리더라고요. 그 친구가 극중에서 좀 막나가는 캐릭터였거든요. 그런 모습을 《피케이》에서 볼 줄이야... 그 의식하는 장면이 국내 개봉판(편집판)에서는 있나 모르겠네요. (주: 자기 몸을 학대하는 의식은 Muharram이라고 해서 모슬렘 계통이라고 합니다. 사진은 생략)
성: 그리고 피케이가 각종 종교를 돌아다니면서 의식을 행하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 중에서 대형 석상에 우유를 붓는 게 있던데 그건 뭔가요?
라: 그건 힌두쪽 의식이긴 한데(주: 자이나교 의식으로 정정합니다), 우유는 ‘생명의 근원’이나 ‘순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 힌두교에선 소를 믿으니까
라: 소를 믿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여러 가지 의미가 겹쳐져서 우유로 공양을 하게 되었죠.
뿌네 인근에서 행해지는 마하마스탁 아비셰크나(Mahamastak Abhisheka) 의식
성: 나중에 비린내 나면 어떡하나... 그런데 이 영화는 인도에서 어떤 등급을 받았나요?
라: 준성인 등급인 U/A를 받았습니다.
성: 하긴 움직이는 차(!)가 나오니까요. 설마 성인용 등급인 A가 나오는 게 아닌가 했습니다.
라: 감독의 파워도 있었겠지만 사실 거기 나오는 그런 요소들이 므흣함을 추구하고자 넣었던 것은 아니고 그것도 하나의 풍자였잖아요. 이를테면 방송국 직원이 흘리고 간 것도 ‘카마수트라’잖아요. 이런 게 나올 정도면 성(性)이라는 게 아주 터부시하고 그럴 것은 아닌데...
성: 거기서 재미있는 점은 피케이가 움직이는 차에서 빼낸 것들이 경찰복이라든지 의사의 명함 같은 게 있었잖아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라: 그러네요. 그 생각을 못했네요.
성: 그리고 그 움직이는 차에서 빼낸 경찰복을 피케이가 입고 다니니까 사람들은 피케이에게 잘 보이려 하고 말이죠.
영화에 대해서
라: 성상민 평론가님은 어떻게 보셨나요?
성: 재밌게 잘 보기는 했는데 이 영화에서 진정한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은 한 시간 이후부터잖아요. 두 주인공이 유치장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부터 말이죠. 프롤로그에 할애된 시간이 너무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라: 그 부분은 저는 이렇게 봅니다. 원래 인도라는 땅이 힌두스탄 대륙이라고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도 하나였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성: 그렇죠.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순으로 분리가 되었지요.
라: 혹시 스칼렛 요한슨이 나왔던 《언더 더 스킨》이라는 영화 보셨나요? 지구라는 곳에 정착하기 위해 인간의 탈을 쓴 외계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인간은 하나의 인간의 존재일 뿐이지 아름답고 추하고, 남자고 여자고...
성: 제목 그대로 피부 위가 중요한 게 아니고 ‘피부 밑’이 중요한 건데 말이죠.
영화 《언더 더 스킨》
라: 어떻게 보면 화자를 피케이라는 외계인으로 둔 것도 인간이라는 존재들이 하나의 바운더리를 두고 어떤 나라, 어떤 민족,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떤 종교의 사람이라는 것을 구분하지 않았더라면 그걸 알고 나서부터 했던 행동을 그대로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만약 주인공 자구가 인도에만 있었더라면 파키스탄 청년인 사브라즈를 만날 일이 없었겠지요. 물론 인도-파키스탄의 관계가 우리나라와 북한의 관계와는 달라서 자유 여행은 할 수 있지만 웬만해서는 안 가죠.
여하튼 과거 분리를 겪고 전쟁을 겪었던 세대와는 달리 젊은 인도, 파키스탄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반목과 질시를 하는 의식은 조금 누그러들었을 거라 봅니다. 자구도 약간 흔들리기는 했지만 결국 사랑이 이긴 셈이죠.
성: 뒤에서 그렇게 정리를 해서 다행이지 서론이 길다는 생각이 들었었거든요.
라; 개인적으론 후반부가 좀 오그라들기는 했지만 정리를 할 필요는 있었죠.
성: 그렇게 정리를 하니까 앞부분이 왜 그렇게 길었는지 알 수가 있겠더라고요.
라: 사브라즈라는 캐릭터를 끌어들인 것은 인도와 파키스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지만 넓게 보면 그것도 결국 ‘종교’라는 이름하에 분리된 아이러니를 이야기하고자 했음이겠죠.
영화의 아쉬운 부분 및 몇 가지
성: 전 인도영화의 좀 고질적인 문제라고 보는데 어떻게든 사운드를 비우지 않고 다 채우려고 사운드 디자인을 너무 빽빽하게 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라: 전 인도영화를 많이 봐서 익숙한 건지...
성: 편집 부분도 약간 어색한 부분이 없지 않고... 아직까진 세심한 디테일적인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전 좋았던 게 주제가 한국에서도 민감하고 인도에서도 민감할 수 있는 주제인데 어떻게 보면 심각할 수 있는 주제의 이야기들을 하더라고요. 만약 수위가 조금 높았더라면 할리우드 영화인 《보랏》이나 《독재자》처럼 나갈 수도 있겠더라고요. 코미디 드라마로서 풍자를 잘 쓴 영화라고 봅니다.
라: 하긴 요즘은 풍자라고 할 만한 코미디 영화를 못 본 것 같아요
성: 북한에서 화제가 되었던 그 영화는요?
라: 버려요... 《자가당착》 같은 영화가 낫지
성: 아무튼 《피케이》는 완급을 잘 조절하면서 동시에 풍자를 잘 엮어내더군요. 저는 감독의 전작인 《세 얼간이》보다 좋게 본 이유가 그 완급 조절을 잘 했기 때문이거든요.
라: 영화를 두 번을 봤는데 두 번 다 술술 넘어가더라고요.
성: 그게 쉬운 게 아니거든요. 더구나 막판에 반전도 있잖아요. 그러면서 분위기도 숙연해지고 그런데도 영화가 잘 넘어간단 말이죠.
라: 저는 좋았던 게, 영화를 보면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지요. 종교라는 소재를 기본 바탕으로 하지만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사회화를 겪는 과정이 있고 여주인공의 남자친구 이야기도 있어요. 이런 이야기들을 잘 정돈하지 못하면 되게 어수선하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에선 그런 소재들을 아귀가 맞게 잘 구성해 놓았어요.
성: 그 남자친구 이야기는 정말 흘러가는 이야기인줄 알았거든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인도와 파키스탄 이야기를 같이 하잖아요. 그런 영화적인 리듬이 좋았고 복선의 사용이 효과적이었다고 봐요. 이 영화가 잘 되었으면 《세 얼간이》만큼 흥행할 수 있었을 텐데...
라: 저는 《피케이》가 두 군데에서밖에 상영되고 있지 않지만 관객이 천 명이라도 들었으면 좋겠어요. 시사회 관객을 제외하고 편집판이 삼만 육천 명? 《세 얼간이》의 십분의 일 정도죠. 제가 봤을 때는 수입가가 낮지는 않을 텐데... 영화사가 언제 영화를 수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작인 《세 얼간이》의 버프도 있었을 테고 만약에 대만과 중국의 흥행 이후에 수입이 진행되었더라면 웃돈이 더 붙었을걸요.
성: 와이드 개봉판은 몇 분인가요?
라: 129분이라고 합니다.
성: 줄인 장면이 어떤 부분인지는 아시나요?
라: 노래 장면 줄였다고 하고 움직이는 차 장면 조금 줄였다는 거...
성: 감독판도 15세잖아요. 그게 얼마나 핵심적인 장면인데
라: 저는 완전판으로만 영화를 봤기 때문에 도대체 뭘 자르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성: 영화의 편집판을 보신 분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라: 편집판도 재미있게 보기는 했는데 인도판을 보고나서 굳이 이걸 자를 필요가 있었나...
성: 편집을 안 해도 되는데 굳이 해서 재미가 줄었다?
라: 제가 영화를 옹호하는 입장이라 그 분 입장은 그런 것일 수도 있는데 가끔 인도영화도 긴 영화들은 그 호흡 때문에 축축 쳐지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피케이》의 경우는 153분이 허투루 보내는 시간은 없다고 보거든요.
성: 중간에 나오는 맛살라 시퀀스들도 억지스럽다는 생각은 안 들었고요.
인터내셔널 버전에 대한 이야기, 저변을 위해 수반되어야 할 것들
성: 일본 (단행본)만화 중에는 한창 해외에 진출할 때 컷도 재배치하고 효과음도 바꾸고 하고 그런 경우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만화를 수입하면 원판이 아닌 그 버전을 보여주더라고요. 《아키라》같은 만화가 대표적이고요. 아키라가 국내 소개되었을 때 팬들이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정식판으론 안 나오고 해적판으로만 나오다가 공식 라이선스 버전으로 나온다니까 말이죠. 그런데 정작 효과음이 영어로 나와 있고 넘기는 방식도 일본식 우철(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는 방식)이 아니고 좌철로 되어있고요. 그래서 팬들이 출판사에 엄청나게 항의를 했거든요.
결국은 출판사 측에서 작가(오토모 카즈히로)가 90년대 초반에 미국에 수출할 때 컷이나 효과음을 다시 그렸다고 해명했죠. 그래서 ‘인터내셔널 판’이라는 건 무조건 이렇게 되어 있다고요.
'아키라' 단행본의 인터내셔널 버전
그리고 비슷한 케이스가 하나 더 있죠. 최근에 화제를 얻고 있는 ‘고독한 미식가’요. 그 원작 만화책이 한국에 나올 때 효과음이 프랑스어로 되어 있었어요. 그 이유가 그 만화를 프랑스에 먼저 수출했고 그게 인터내셔널 판이었거든요. 그래서 이 경우도 비난이 쇄도했죠. 더구나 이 만화는 번역도 엉망이어서...
라: 안타까운 에피소드이지만 그래도 부럽네요. 맛살라 톡 같은 자리에서 늘 얘기하지만 일본의 만화나 애니메이션 팬들은 적극적이어서 좋아요. 그런 문제점들을 콕 집어서 업체 같은 곳에 비판할 수 있는 용기와 팬들의 힘 같은 거요. 예전에 제가 《세 얼간이》 편집판을 보이콧 한다고 했을 때 오히려 몇몇 인도 영화 팬들이 ‘왜 이렇게 유난을 떠냐’는 식으로 얘기 했거든요. 그렇게 니가 유난을 떨면 어느 누가 인도영화를 수입하고 싶어 하겠냐고. 그리고 대부분은 ‘인도영화를 또?’ 하면서 탄식하는 수준에 머물렀고 말이죠.
성: 수입이 안 되는 장르일수록 조금 그런 문제에 봉착하는 것 같아요.
라: 저는 소위 인도영화의 편집 문제가 나올 때마다 개인적으로 주장하는 것 중에 ‘3분 카레 이론’이라는 게 있습니다. 사실 ‘카레’는 인도의 음식인 ‘커리’를 일본인이 레토르트 식품으로 변형해서 만든 것이잖아요.
성: 인도의 영국 식민지 시절에 영국을 통해서 들어온 것을 또 일본인들이 자기 식에 맞게 변형을 한 셈이죠.
라: 인스탄트로 만들어서 대중화를 시키는 데는 성공을 했지요. 하지만 카레를 먹으면서 우리가 인도를 생각하지는 않잖아요. 그리고 실제로 인도 커리와는 맛이 다르고요. 그것은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된 것일 뿐이죠. 우리나라의 짜장면을 생각하면 되요. 중국에도 춘장 같은 소스로 볶음면 같은 걸 만드는 음식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은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새로운 음식일 뿐이죠.
이런 것처럼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게 개량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건 그냥 우리식으로 편집된 영화일 뿐이고 그걸 가지고 그 나라의 문화나 정서를 느낄 수는 없을 거예요. 오히려 인도색이 난다고 자르고 싶다고 하는 입장인데요.
인도 맛살라 영화인 《람 릴라》의 한 장면
성: 하긴 일본 영화는 ‘왜색’이야기를 하면서도 안 자르는데 말이죠.
라: 일본은 우리와 많이 알게 모르게 문화가 들어와서 거부감이 없어서 그런 건지... 그런데 사무라이나 막부시대 이런 게 나오는 영화는 수입을 잘 안하잖아요.
성: 하긴 《라스트 사무라이》같은 것도 흥행은 안 되었죠.
라: 또 다르게 생각해 봅시다. 만약에 우리나라에 '쇼 미 더 머니'나 '언프리티 랩스타'같은 흑인 음악을 다룬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지 않았다면 과연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튼》같은 영화가 정식으로 개봉할 수 있었을까요. 예전에는 이런 영화들 죄다 (2차 매체로) 직행했거든요.
성: 《8마일》정도가 정식 개봉했지요.
라: 그렇죠. 그건 에미넴이 인지도가 높은 슈퍼스타이기도 하고. 저는 지난 맛살라 톡에서 패널 분 중에 한 분이 언급하신 인종에 대한 거부감 내지 선입견이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에미넴이 주연한 영화 《8 마일》
성: 이 영화는 인도영화 특유의 문제도 없지 않지만 주제를 잘 표현했고 이야기를 갈 꿰맞추고 두 시간 반이라는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엮어 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영화 시장 상황도 얽히면서 아쉬움을 느끼게도 합니다.
라: 방금 언급했던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튼》같은 영화는 직배 영화지만 아트영화관을 끼고 가고 있습니다. 북미에서 2주 연속 1위를 했던 영화이지만 배급사에서 흑인 음악 영화 같은 마니아적인 테마를 다루고 있으니 아트레이블 쪽으로 전략을 잡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피케이》는 아니거든요. 영화사는 대중적인 영화로 가고 싶었던 것 같아서 그런지 다양성 영화로 신청을 안 했거든요. (‘감독판’이라는 명칭이 붙은 인도판은 다양성 영화로 분류되었습니다)
성: 예전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같은 영화도 예전에 한 개관에서 개봉했던 게 생각나네요.
라: 수입사인 브에나 비스타에서도 길게 걸 생각도 없어서 잠깐 걸고 말려고 걸었던 게 대박이 났던 케이스죠.
성: 그렇죠. 전단지도 갱지로 했었죠.
라: 영화사는 《세 얼간이》 제작진이 만든 대중 영화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퐁당퐁당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셨던 건가. 인도영화가 다른 비영어권 영화와 같은 선상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면 안 되는데...
성: 인도영화 수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된다면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 봐야 할 것 같네요.
raSpb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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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립)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함성)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